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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타 Nov 29. 2022

지그재그와 빗금

3화

어영부영 느슨하게,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 오래된 주택의 이층으로 이사 오고 석 달이 되어 갈 무렵, 봄이 옆집 마당에 당도했을 무렵, 나는 회복기 환자처럼 창밖을 자주 내다보았다. 살구나무, 매화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밤나무, 이름을 모르는 나무…….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이상한 파동 같은 게 느껴져 고개를 들면 한 그루의 나무가 바람에 그렁그렁 가지를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뭇가지가 흡사 나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것 같았다. 나무를 통과한 바람이 슬그머니 내 몸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나뭇잎처럼 몸을 떨었다. 나는 오랫동안 귀기울여 깻잎 같은 잎사귀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다. 

  

봄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창밖으로 옆집 마당의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모든 나무의 이름은 ‘그루’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알든 모르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독자적이다. 유일한 한 그루. 나무는 멍하니 앉아 있는 내게 응시를 주고 읊조림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안달과 초조에서 조금씩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 창가 햇빛 쪽으로 팔을 뻗어 본다. 노란빛에 물든 형광색 내 팔은 싱그럽다. ‘싱그럽다’, 고향이 없지만 오랜만에 써보는 고향의 말 같다. 창가로 가서 나무를 내다본다. 오월의 따끈한 오전, 부드러운 햇살에 감싸인 나뭇잎들은 선명한 초록으로 빛난다. 햇빛에 우러난 듯한 선명한 녹색은 나무의 본질 같다. 싱그러운 손을 그루에게 내밀어 보지만 짧아서 나무에 닿지 않는다. 내 손이 조금만 더 길어지면 녹색의 본질을 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느긋한 짧은 순간, 나는 세계의 본질을 바라보고 만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아져서 마음이 식빵 같아진다. 식빵은 느긋하고도 짧은 순간 부풀어 오른다. 나도 ‘그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공기 속에서 토마토 냄새가 난다. 도시에서도 일 년에 며칠쯤은 상쾌한 날이 있기 마련이다. 좀처럼 도시의 상공에서 보기 어려운 쾌청한 하늘엔 구름 몇 조각이 이것은 파이프에서 나온 연기가 아니란 듯이 떠 있다. 공원 벤치에 누워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산뜻한 추상어를 거느린 문장처럼 돌올하다. 지그재그를 기다리면서 나는 이 모든 것을 음미하려고 한다. 내가 조금 설레어 한다는 걸, 파이프가 아닌 구름이 상공에서 굽어보듯 내가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지그재그에 대한 설렘이라기보다 오랜만에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 자체라는 것도 구름처럼 선명하게 알고 있다.  

  

구름을 보며 지그재그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그루브에 올린 글로 유추해 보면 평범한 외모는 아닐 것 같다. 인상도 강할 거라 짐작된다. 카페 ‘그루브’는 그루브한 모든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공간이다. 그루브하다는 말은 리듬 있고 흥겨운 힙합이나 재즈 같은 음악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느낌 있다’는 뜻으로도 폭넓게 사용한다. 카페에는 음악에 대한 대화가 많았지만 이따금 그림이나 순간 포착한 사진이나 유튜브도 올라왔다. 처음 회원 가입을 할 때 간단한 기록만 남기면 준회원의 자격을 줬지만 정회원이 되려면 그루브한 것을 카페에 올려야 했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뭐든 회원들의 절반 이상이 인정해 줘야 했다. 몇 달 전 우연히 카페에 들어갔다가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어 집에 걸어 둔 바스키아 복제 그림을 사진 찍어 올려놓았다. 반응은 꽤 괜찮았다. 지그재그는 바스키아를 알았다. 그래서 댓글이 시작됐고, 서로의 아이디를 염두에 두었고,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고, 오늘 아침 벤치에 이르렀다. 아, 그러고 보니 낙서화가 바스키아가 죽은 나이가 그와 나의 나이인 스물여덟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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