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타 Nov 29. 2022

지그재그와 빗금

4화

약속 시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다. 혹시 아직 자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휴대폰을 걸어 보니 폰이 꺼져 있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온다. 뭐야, 이건. 약간 짜증이 난다. 한 달에 겨우 두 번 있는 휴무일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안 되겠다 싶어 일어서려는데 공원 입구로 들어서는 한 남자가 보인다. 


나무들에 가려서 모습은 희미하지만 흰 두건이 눈에 띈다. 흰색 바탕에 한글 자음과 모음이 문양처럼 찍혀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공원에 젊은 남자가 별로 없기도 하지만 흰 두건의 남자가 지그재그라는 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남자가 아이디를 그냥 쓴 건 아닌 모양이다. 그는 지그재그로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풋, 웃음이 터지려고 해서 손으로 입을 막는다.

  조금 늦었죠. 늦잠을 잤지 뭡니까.

  아, 그러셨군요. 

  휴대폰이라도 하지 그러셨어요.

  했는데, 꺼져 있다던데요.

  아, 참. 그는 한 손으로 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내면서 다른 한 손으로 두건 쓴 머리를 긁적인다.

  

한눈에 보기에도 근육이 많아 보이는 단단한 몸에 까무잡잡한 얼굴이지만 그리 강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얼굴에 비해 좁고 납작한 이마와 작은 눈, 둥근 코와 동그란 입술로 구성된 얼굴에서 어딘지 모르게 주춤거리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몸이 물질이라면 얼굴은 관념이다. 나도 내가 이런 발견을 하게 될지 몰랐지만 지그재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저절로 그런 문장이 떠오른다.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홀짝거리면서 툭툭 끊어지는 대화를 이어 간다. 말이 끊기면 나는 앞니로 빨대를 씹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서로 별로 할 말이 그다지 없기에 말이 막히면 무척 어색하다. 둘 다 몇 년 전에 독립해서 이 동네에 산다는 것과 집이 어디어디라는 것과 서로의 하는 일 따위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비슷하다면 비슷한 면이 있기는 했다. 지그재그는 여자 대학교 앞에서 친구와 동업으로 떡볶이 집을 운영하고 있다. 겨우 열 평짜리라고 말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리지만 오백만 원으로 길거리 노점에서 시작해서 이 년 만에 월수입 사, 오백만 원이 되는 가게로 일으킨 것에 뿌듯해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은 겨우 아홉 평이에요, 그리고 방은 좁고 길쭉해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는다. 내가 외식업체에서 일한다고 하자 그의 눈에 호기심이 어리다가, 하는 일까지 말해 주자 조금 아쉽다는 표정이 어리긴 한다. 아마 매니저 정도의 직급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우린 공통점이 많군요. 나이도 똑같고 사는 동네도 같고 게다가 하는 일까지 비슷하니, 어찌됐든 외식업에 ……. 그는 말끝을 흐리며 희미하게 웃는다. 

  공교롭지요.

  그럼, 그럼.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료한 시간에 뭐 해요?

  예전엔 주로 영화를 다운받아서 봤지만 요즘은 아무것도 안 해요.

  아무것도 안 한다니, 멋지군요. 비아냥거리는 것 같지는 않다. 

  그쪽은요?

  전 말놀이를 해요. 말 따먹기라고 해야 하나. 

  말 따먹기?

  힙합, 좋아해요?

  뭐, 그런대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요.

  낱말들의 일신우일신, 이게 내 신조예요. 좀 우습죠.

  아니에요, 싱그러워요. 나무들처럼. 

  난 말입니다, 내 직감을 믿는 편인데, 빗금님 댓글을 보고 뭔가 말이 통할 거라고 느꼈어요. 게다가 아이디도 빗금과 지그재그! ……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무슨 생각했어요?

  

나는 슬쩍 상공의 구름을 보며 말하는 방식도 참 지그재그라고 생각한다.

  글쎄요, 생각이 안 나는데. 생각은 안 났지만 생각해 보고 싶은 질문이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 상황을 떠올려 봐요.

  아마도 잠에서 깨지 않고 싶다고, 더 자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난, 가끔 아침에 눈뜰 때 떠오른 걸 가지고 랩을 만들어요. 즉흥적으로. 아침의 에너지를 밀어 넣어서. 삼 분이나 오 분 정도 걸려요. 물론 길어져서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지만. 그걸 휴대폰에 메모해 둬요. 오늘은 빗금님 만난다고 그냥 나왔지만요.

  그럼, 지금 즉흥적으로 만들어 볼래요.

  

그는 오 초쯤 눈을 감았다가 뜬다.  

  ‘자다 일어나니, 일어나다 자니, 자니 윤 쇼 같은 하루가, 걷어찬 이불처럼 꿍쳐 있네.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그가 리듬을 실어 랩하는 걸 듣고 나도 모르게 장난기가 발동한다. 쿵쿵따리 쿵쿵 따. 지그재그는 푸하하 웃는다. 아침 아직 안 먹었죠. 우리 동네에 괜찮은 브런치를 하는 곳이 있어요. 걸어야 하긴 하지만. 조금, 아니 조금 많이. 그냥 하는 말도 리듬 실린 랩처럼 들린다. 가요, 그가 내 빗금 쳐진 손목을 잡아끈다.  

  

밥을 먹으면서 그는 꿈에 대해 말한다. 처음 만나서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역시 좀 야릇하다. 중학생 때부터 유일하게 하고 싶었던 게 힙합이었어요. 그래서 틈만 나면 팀들과 연습을 합니다. 되지 않더라도 아무 상관없긴 했지만. 그래도 난 힙합을 버리지 않을 거예요. 돈이 모이면 작업실을 만들어 작곡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언젠가 내 앨범을 만들 겁니다. 안 돼도 어쩔 수 없지만. 오전엔 주로 음악을 생각해요. 오전 중에 배터리를 거의 다 쓰고 방전될 듯 희미하게 깜빡이는 몸으로 밤늦게까지 일해요. 그는 아마도 말에 굶주린 것 같다. 말수가 없는 사람이 일주일 치 말을 다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는 오믈렛을 나는 샌드위치를 먹는다. 샌드위치에 든 토마토는 싱겁다. 오월의 공기보다 맛이 없다.


이전 03화 지그재그와 빗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