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다시 아침이다. 거듭거듭 아침이다. 잠은 깼지만 좀 더 눈을 감고 있을 작정이었다. ‘자다 일어나니, 일어나다 자니, 자니 윤 쇼 같은 하루가, 걷어찬 이불처럼 꿍쳐 있네.’ 둘둘 감은 이불 속에서 지그재그의 랩이 삐져나왔다.
오늘도 온 세계를 공평하게 방문한 햇빛이 허공에 부연 빗금들을 긋고 있다. 바싹 마른 햇빛은 튀김 새우처럼 와삭 소리가 날 것 같다. 햇빛 아래, 나는 두 손을 오므린다. 빗살무늬가 새겨진 손 안에 온기 한 줌이 들어온다. 빗살무늬토기 속에 든 따스한 그것을 조금씩 베어 먹고 천천히 씹는다. 잇새에서 새는 소리가 귀를 타고 와삭와삭 소리가 나는 듯했다. 일용할 양식을 먹었으니 일하러 가야 한다. 햇빛도 오전에 잠시 내 방에 머물다가 자신의 일을 하러 갈 것이다.
매니저의 당부가 있어서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출근했다. 새로 식재료가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보조 팀들은 일찍 나와 홀 청소도 거들었다. 주방 청소를 하고 있는 나를 부주방장은 눈으로 힐끗 보고는 오늘 할 일들을 빠르게 읊조리고 나갔다.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라도 일찍 와 줘서 고맙다든가, 아니 그런 말을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일찍 왔네, 라고는 말해야 하지 않는가. 휴우, 원래 그런 인간이다. 말해 뭐 할까.
오전 중에 도착할 거라던 킹크랩과 게와 새우는 가장 바쁜 점심시간에 들어왔다. 동해 어시장에서 경매를 마치고 온 사장은 직원들에게 얼음이 가득 든 박스들을 옮기게 하고는 대하와 게 값이 너무 뛰었다며 투덜댄다. 셰프에게 유월부턴 메뉴 조정이 좀 필요할 거 같다고 은근히 지시한다. 원래 무표정한 셰프는 사장의 말을 꿀꺽 삼키기 일쑤다. 사장은 직원들 눈이 있어서 그런지 얼핏 눈살을 찌푸리곤 우리들에게 식재료를 알뜰하게 다뤄 달라고 하나 마나 한 말을 한다.
홍합 껍데기 차르락 차르락 비비고, 새우 껍질 까고, 조개 해감하고, 해초들 빡빡 문질러 씻는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어깨와 허리가 뻐근해온다. 큰 솥에 물을 끓이고 재료를 분량대로 계량하고, 빠르게 요리할 수 있게 세팅한다. 온종일 해산물 식재료를 손질하다 보면 앞치마와 머리카락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알 년에 겨우 한번 가볼까 말까 한 바다가 내 가까이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은 십오 개월 전 전 동해였다. 저 박스 안의 게들은 십오 개월 전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누리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