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부주방장이 막말을 할 때면 몰래 식재료를 훔치기로 마음먹었다. 가능한 표 나지 않게 조금씩 검은 봉지에 싸서 밀폐 용기에 넣었다. 라커룸에 있는 가방에 넣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말끔하게 오월이 가게 할 수는 없었다.
내 집 냉장고에 붙여 놓은 사진을 볼 때마다 지그재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근사하단 말이야. 이 손 말이야,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손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우리는 훔쳐온 식재료들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밤늦게 먹는 음식이었지만 모두 맛있었다. 게와 새우와 조개와 해초들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무궁무진했다. 지그재그는 내가 만들어 준 것들은 모두 맛있다고 했다. 바다전, 바다계란찜, 바다철판볶음, 바다샐러드, 바다스파게티, 바다라면 그리고 소주. 누군가 동해의 차고 맑은 바닷물을 소주에 비유한 걸 기억해 내고는 나는 이따금 잔에 든 맑고 차가운 소주를 들여다보곤 했다.
소주 주소, 소주 주소, 주소 소주……. 지그재그가 말했다. 소주라는 명사가 외로움의 상표 같았다.
그와 소주를 마시고 있으면 달빛에 어둠이 그러하듯 밤의 쓸쓸함이 조금 온화해졌다. 더운 음식들 덕분일지도 몰랐다. 다이어트를 위해 늦은 밤에 금식하리란 다짐도 어겼고 뱃살도 쪘지만 개의치 않았다.
넌 왜 지그재그야?
궁금해서 물었지만, 말해 놓고 보니, 너는 누구니? 라고 물은 것 같았다. 시선이 마주쳤을 때 그의 흔들리는 눈빛도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니,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나 자신에게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해버렸다.
어릴 때 화가 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하면 지그재그로 걸었어. 오랫동안 지그재그로 걷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조금 나아지곤 했지.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건지 시간이 흘러도 버릇이 여전해서 말이야, 어른이 된 후론 안 그러려고 해도 더 지그재그로 걷더라구.
그와 나는 새로 소주를 부어 잔을 부딪치고는 단숨에 마셨다.
너한테 이 질문을 받으려고 내가 한밤중에 깨어 있었나 봐. 어젯밤에 잠이 안 와서 새벽에 텔레비전을 켰던 일이 있거든. 그는 말끝을 어법에 맞지 않게 함으로써 상대가 무슨 말인지 생각하게 하는 버릇도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까 그 늦은 시각에 영화를 하더라구. 불도 안 켜고 깜깜한 데서 그걸 봤지. 처음부터 안 봐서 내용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암튼 중동 지역의 내전 같은 걸 다룬 영화 같더라구. 근데 중요한 건 말이야, 멍한 머리로 한 십 분쯤 봤을까,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읊조리는 거야. ‘이제부터 지그재그로 걸어야 해. 지그재그로. 알아들었어. 총알이 등 뒤에서 날아올 때 총알을 피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그거야.’ 순간, 진짜 총알이 뒤에서 날아오는 기분이더라고. 나는 무얼 피하려고 지그재그로 걸었나 하고 말이지. 왜 피해 다녔나 하고 말이지. 나도 모르겠는 내 인생을 남들이 설명해주는 세상이야. 간단명료하게, 재수 없게. 그답지 않게 말이 길었다. 술이 좀 취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맨 처음 무얼 떠올리니.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글쎄, 아무것도. 요즘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머리가 신선하지 않아. 그냥 더 자고 싶다고 생각하며 더 자버려. 그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흔들었다. 난 요즘 자꾸 바다가 떠올라. 옅은 감색의 바다, 파도치는 바다, 갯내 나는 바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 그는 여름휴가 때 그 많은 바다를 한꺼번에 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