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또다시 장마철, 지긋지긋한 혈육 같은 끈끈함. 피할 수 없어 견딘다. 빗줄기가 축축하게 옷자락을 적시고, 맨홀 사이로 차오르는 생활의 비루한 냄새. 비, 비, ……, 비, 비, 비…….
해마다 되풀이되는 장마 때면 아주 먼 옛날부터 있어온 삶에 대해서 나는 생각하였다. 삶에 원형이란 게 있다면 장마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이 눅눅해지더니 어느새 벽지가 늙어 가는 엄마의 목처럼 주름져 늘어졌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침대에 누워 오래도록 눅눅함을 바라보았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부터 지그재그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카페 그루브에도 접속하지 않는 눈치였다. 처음엔 그도 무언가를 견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연락이 되지 않은 지 열흘이 넘어가자 한편으론 스스로가 서글퍼지면서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장맛비처럼 걱정도 끊이지 않았다. 혹시 아프거나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지그재그의 집입니다. 오늘의 날씨입니다. 맨 발에 운동화를 신고 거리를 어슬렁거리세요.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 것도 괜찮겠는걸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짱짱한 햇볕에 꿍쳐 둔 침대 시트와 타월 더미들을 말리기 좋은 날입니다. 참고하시고,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삐익―.
봄에 들었던 멘트 그대로였다. 그때는 재밌었는데 지금은 울면서 웃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