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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인 Jun 08. 2021

입양, 엇갈린 두 가지 시선을 마주할 때(1)

#4. 유튜브 ODG 채널 입양 인식 개선 영상 촬영 비하인드 썰



사진 : 유튜브 [ODG ‘입양 가족의 과거 사진 같이 보기] 갈무리




작년 가을쯤,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또 한 번의 연락이 왔다.


"어머니, 매번 부탁드려 죄송한데, 이번에 입양인식개선을 위한 콘텐츠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동하네 가족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저는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요. 너무 저희만 노출이 잦아서 입양 운동가처럼 보이는 건 원치 않아서요. 가족들도 이제 이만하면 충분하다고들 하시고……."


"이번엔 유튜브 채널에 올라가는 건데 제작진에서 동하네 EBS 다큐멘터리 영상을 인상 깊게 보셨어요. 코로나 때문에 입양 대기 아동들이 가정을 찾는 일이 전보다 많이 어려워져서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입양 대기 아동'


입양 과정에서 알게 된 우리 아이들과 같은 상황에 놓였지만 아직 가정을 찾지 못한 아이들.

하루하루 커가다 보면 그 가능성마저 희박해져서 보육 시설에서 만 18세까지 최소한의 교육과 보호를 받다가 자립은커녕 두어 달 생활이나 가능할까 싶은 소액의 자립비만을 받고 덩그러니 울타리 밖으로 내보내질 아이들.


모를 땐 모르고 살았지만 한번 알게 된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는 그들을 통칭하는 그 이름은 우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입양 부모들에겐 내려가지 않는 고구마처럼 가슴 한켠을 답답하게 한다.


아마도 내 팔이 두 개뿐이고 내 몸이 하나여서 미안한 그런 미안함일 것이다.

 




"그러면 남편과 의논해 볼게요."


"네! 상의하시고 연락 주세요!"


"남편이 반대하면 못하겠지만 정말 마지막 었으면 좋겠어요. 동하도 점점 크면서 비협조적이 될 거고 저도 이제 너무 민망해서요..."

(같은 말 두세 번이면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나란 사람)


이런 요청에 응하는 것이 두 아이를 키우는 일로 만족해야 하는 내 상황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남아있는 너희들을 이렇게 잊지 않고 있다고, 너희를 위해 이것이라도 한다는 핑계가 될까 싶어 또 한 번 수락을 하게 되었다.






ODG라는 유튜브 채널을 알고 있는가.


어렴풋이 알고리즘에 의해 보았던 그들의 하늘색 로고와 주로 어린이들이 나오는 콘텐츠였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알고 보니 구독자 수 200만 명이 넘는 대형 채널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 2021년 6월 8일 현재 252만 명으로 여전히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과 몇 번의 통화로 시간 조율을 마친 뒤 휴가를 내어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강남의 촬영장으로 향했다.



채널 관계자께서는 채널이 크다 보니 조회수도 높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좋은 댓글도 있지만 종종 상처가 될만한 댓글도 달릴 수 있는데 괜찮을지를 먼저 확인하셨다.


입양에 대한 대중의 솔직한 의식을 날 것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 선 비판, 혹은 공개 입양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일 지라도 앞으로 입양 가족들과 관계 기관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아이들을 모욕하는 내용의 댓글이 달린다면 삭제될 때까지 신고를 누르거나,  안되면 채널에 삭제를 요청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댓글 전투라도 하겠다 다짐하면서.




오후 한 시쯤 도착한 스튜디오는 작고 어두웠지만 우리가 촬영을 할 스테이지는 아늑하고 따뜻하게 꾸며져 있었다.


뒷 편의 문이 딸린 공간에서 대기할 때만 해도 아이들은 낯설지만 자신들을 반가워해주는 어른들과 촬영장의 분위기에 신이 나서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남편과 아이들은 대기를 하고 나는 촬영 시작 전 PD님과 함께 사전 인터뷰 및 가족사진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 밖으로 오래 걸린 사전 인터뷰에 대기가 두 시간을 넘어가면서 아이들의 에너지는 빠르게 방전되어 갔다.


촬영 의상으로 갈아입고도 한참이나 즐거워하던 동하는 갑자기 덥다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틀어 더위를 식히고 만화를 틀어주니 잠잠해졌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어 나가자고 했을 때 동하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촬영 전엔 멋지게 나오고 싶어 안경을 벗고 하겠다는 의욕까지 보이던 동하의 적극성은 가만히만 있어도 고갈되는 약한 체력에 보기 좋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잠시 바람 쐬고 당 충전을 하러 가겠다며 편의점에 들러 플렉스 하며 풀어준 기분도 촬영장에 들어오면 다시 먹구름이 끼어 모두가 당황했지만 나는 서너 시면 끝날 줄 알았던 촬영이 속절없이 길어지는 것이 야속했다.



촬영을 위해 보냈던 가족 사진들 중 일부. 우리 집 전문 포토그래퍼는 남편인데 명작들이 많다.




"만화 보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라고 졸라대는 동하를 두고 PD님은 특단의 결정을 내리셨다.



동주로 대신 촬영을 하시겠다는 것.


동주야 말로 눈 앞에서 형과 엄마만 촬영을 하는 것에 잔뜩 속이 상한 상태였던 차에 흔쾌히 "나 할래!"하고 달려와 내 무릎에 앉았다.


이게 뭔 줄 알고... 귀여운 녀석.



이 상황 속에서 당황을 했지만 그간 쌓아온 동하 엄마의 짬바(요즘 말로 ‘짬에서 오는 바이브’)로 PD님의 선택이 불러올 반전을 가만히 예측하고 있었다.


'잠깐 본 동하를 알고 이러시는 거면 PD님 진짜 천재시다.'



동주로 촬영 진행이 될 리가 없었다.


스튜디오에서 낮잠시간을 놓친 동주는 엄마 무릎에 앉자마자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니 그대로 나에게 기대어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나 카메라 앞을 벗어난 동하는 저 멀리서 조명을 받는 동주를 보고는 '내가 찍기로 했던 건데 왜 동주가 있지?'라고 생각했고 아무래도 그건 안 되겠는 모양이다.

(아니 왕좌의 게임이냐고요)


동주가 잠이 들어 어쩌나 모두가 고민할 때 동하가 뒤편에서 다시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 다시 할래요."




그리고 그 후로 촬영은 순조롭게, 빠르게 진행되었고, 업로드된 영상의 조회수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며 나와 우리 가족의 삶에도 상당히 의미 있는 경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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