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허영이 사라진 자리에 재능이 반짝인다 _ 6화
복권에 여러 번 당첨되거나, 무너지기 바로 직전 건물을 빠져나오거나 하는 등…, 운수가 터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하지만 지나치게 운이 좋은 것을 ‘오지게’라고 비아냥 섞인 표현을 하는 것은, 시샘이 나서 인가? 아니면 가히 좋은 것만은 아니라서인가?.
오랜만에 막냇동생과 함께 드라이브를 즐겼다. 동생은 남편과 함께 제주도 ‘대평리’라는 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한다. 왕복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운전하는 동생의 수고를 덜어주려 오늘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제주시에서 안덕면으로 가려면 ‘평화로’라 이름 지어진 고속화 도로를 40분가량 달려야 한다. 도로의 이름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교통사고가 심심치 않게 나는 곳이 많아 그에 걸맞지 않은 이름일 수도 있다. ‘주의로’나 ‘조 심으로’라고 이름 지었다면 사고가 덜 났으려나? 참 싱겁다. 한참 도로를 내달리던 중에 동생이 오래된 설화를 이야기하듯,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언니! 이곳이야! 여기! 이 근처에서 우리 신랑이 결혼 전에 차 사고가 났었잖아. 갑자기 튀어나온 뭔가를 피하기 위해 급정지를 하면서 차가 몇 바퀴를 굴렀는데, 차는 폐차할 정도로 부서졌지만 남편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어. 그러고 보면 우리 신랑은 참 운이 좋아. 군대에 있을 때에도 후진하는 덤프트럭들 사이에 끼어서 딱 죽을 상황이었는데, 공중으로 순간 뛰어올라서 살았다니까? 물론 갈비뼈가 여러 군데 부러지긴 했지만…, 정말 신기하지? 죽을뻔한 상황을 그렇게 피해 가는 것을 보면, 여간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니까! 정말.”
“아, 그런 일이 있었어? 운이 좋긴 하네. 그런데 은정아…, 진짜 운 좋은 사람은 그 죽을 뻔한 상황이 아예 없는 사람 아닐까?.”
생사를 오가는 위험한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며 그때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자는 과연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넘겨야 할 위험한 고비가 아예 없는 자가 운이 좋은 것인가? 전자는 몸이 다치고,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겪겠지만,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생길 것이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용감하게 어떤 일이든 이겨나갈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건강하게 아무 위협 없이 평화로운 삶을 살겠지만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본인이 운이 좋다는 것을 아예 인식조차 못 할 것이다. 만일 선택이 가능하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텐가?
나는 운수가 사나운 날이 종종 있다. 지난주에도 집 계단에서 발목을 접 질렀다. 추석을 맞아 제주도로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병원 응급실에 들러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해야 했다. 깁스를 한 다리로 비행기를 타려니 가장 먼 게이트가 걸린다. 항상 이런 식이다. 그래서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쓴다. 하지만 예상과 결과가 같아도, 예상을 빗나간 결과에도 언제나 슬프다. 항상 최악일 거라는 비관적인 사고관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었다. 눈먼 행운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모든 과정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허무하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하다.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불행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상상하는 것이다.”
-프랑수아즈 지루
깁스를 두른 다리로 절뚝거리는 나는 이번 추석 음식 준비에서 열외가 되었다. 나의 아픈 다리가 더 악화될까 봐 걱정했던 언니는, 나에게 전 부치기 외에는 다른 일을 부탁하지 않았다. 잔뜩 부어 오른 다리의 통증은 괴로웠지만 그 덕에 이번 추석엔 나만 편히 쉬었다. 불운이 없었으면 이런 행운도 없었을 것이다. 이토록 역설적인 관계라니….
인생의 깊이를 본 사람은 요행 따위를 믿거나 바라지 않는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단지 오늘만이 중요하다. 오늘에만 집중한다면 어제나 내일의 불행 따위를 걱정할 시간이 없다. 어차피 모든 선택은 좋거나 나쁘거나 언제나 반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