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과 사회 환원의 연결고리
유일한 박사(1895-1971)의 생애는 단순히 성공적인 기업가의 역사를 넘어, 철저한 윤리적 신념과 인류애를 실천한 한 철학자의 삶과 궤를 같이합니다. 일제강점기 혼란의 시대를 거쳐 기업을 일구고, 그 이윤을 다시 사회에 온전히 환원한 그의 발자취는, 인간이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철학적 물음을 던져줍니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에디슨 변전소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고 미시간 대학을 졸업한 그의 초기 삶은 주도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고국에 돌아와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의 근본적인 동기는 이윤 추구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눈 뜨지 못한 불쌍한 동포에게 도움이 되고자, 또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고자 의약업을 시작했다"라고 역설했습니다. 이는 기업 활동의 목적이 단순히 자본 증식에 있지 않고, 인간의 복지와 사회 전체의 선에 기여하는 데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을 '행복'으로 보고 이를 '탁월성(아레테)의 활동'으로 규정했듯, 유일한 박사에게 기업은 개인의 부가 아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자 탁월성의 장이었던 셈입니다.
그의 경영 철학은 철저하게 '도덕적 의무'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정치 자금을 요구받았을 때 단호히 거절하고, 심지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수차례 받았음에도 "먼지 한 톨 안 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또한, 드링크제와 같은 손쉬운 수익원에 현혹되지 않고, 기업의 이윤이 사회에 기여하는 목적에 반한다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행위의 결과보다 동기와 준칙의 도덕성에 중점을 둔 칸트처럼, 유일한 박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그 준칙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업 활동임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기업의 '부조리'한 유혹(알베르 카뮈가 언급한 세계의 부조리처럼, 때로는 삶의 의미를 잃게 하는 물질적 욕망)에 저항하며, 자신의 의식과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기업을 사회적 선의 도구로 삼은 모습은 어쩌면 카뮈가 말하는 '반항하는 인간'의 실천적 형태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재산 환원'이라는 궁극적인 실천입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심지어 외동딸인 유재라 여사 또한 그의 뜻을 이어 전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이는 앤드루 카네기가 자신의 부의 90%를 사회에 환원하며 "많은 유산은 의타심과 나약함을 유발하고, 비창조적인 삶을 살게 한다"라고 말했던 '부의 복음'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카네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축적이 아닌 '분배와 환원'이라는 새로운 윤리적 패러다임을 제시했듯, 유일한 박사는 단순히 부를 나눈 것을 넘어 '부의 올바른 쓰임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에게 부는 사적인 소유물이 아닌 사회적 자원이었으며, 개인이 이를 관리하고 증진시켜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청지기 정신'의 실현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톈자빙(田家炳) 재단이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문화와 교육 증진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 정신과도 연결됩니다.
유일한 박사의 삶은 탐욕과 이기심이 난무하기 쉬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진정한 기업가 정신과 인간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고 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의 업적과 재산 환원은 단순한 미담을 넘어, 윤리적 삶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살아 있던 철학적 논설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1] 유일한 - 나무위키
* [2] 유일한의 생애와 사상(10) - 덴탈뉴스
* [3] 유일한 - 우리역사넷 - 국사편찬위원회
* [4] 유일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5] 부조리에 대하여, 시지프 신화 - 브런치
* [6] 유재라여사 - 생애와 업적 - 유한재단
* [7] 톈자빙
* [8] 앤드루 카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