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부자 이야기] 11. 간송 전형필

혼란 속 문화 보국의 실천가

by sophia p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 개인의 영달 대신 민족의 혼을 지키는 데 평생을 바친 이가 있습니다. 바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 선생입니다.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갑부였으나, 축적된 부를 개인의 향락이 아닌 꺼져가는 민족 문화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 오롯이 쏟아부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사후까지 이어진 진정한 의미의 사회 환원은 단순한 수집가의 행위를 넘어, 깊은 통찰과 숭고한 철학적 신념이 구현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06년 한성부 양반가에서 태어난 전형필 선생은 어려서부터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현실은 식민지 조선의 암울함 그 자체였습니다. 일제의 강점과 민족문화 말살 정책은 우리 얼을 뿌리째 흔들었으며, 수많은 귀중한 문화재가 국외로 유출되거나 훼손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고려청자, 조선백자는 물론 귀한 고서화와 유물들이 헐값에 팔려나가는 상황을 목도하며 그는 젊은 나이에 비범한 소명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부를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 그 부를 통해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재산을 도구 삼아 시대의 아픔을 극복하려 한 그의 '자본 철학'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송 선생의 업적은 민족 문화재의 수호와 연구 기반 마련으로 압축됩니다. 그는 1930년대부터 막대한 재산을 들여 전국을 다니며 일본인들에게 유출될 위기에 처한 국보급 문화재들을 사들였습니다. 그중에는 『훈민정음해례본』(국보 제70호), 고려청자, 신윤복의 그림, 김정희의 글씨 등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보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특히 『훈민정음해례본』은 1943년 거액을 주고 구입하여 전쟁 중에도 안전하게 보관하여 오늘날 우리 한글의 창제 원리를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재 수집은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행위를 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 민족의 자존심과 역사를 지키려는 적극적인 저항 행위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38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설립했습니다. 이는 수집된 문화재들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연구하며,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민족문화의 가치를 공유하고 후대에 전수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학예연구원들을 영입하여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게 한 것 또한 그의 선구적인 안목을 보여줍니다. 간송의 문화재 사랑은 그저 개인적인 취향이 아닌, '문화가 곧 국가의 미래'라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이는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의 중요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철학은 그의 사후에도 빛을 발합니다. 그는 생전에 모은 모든 문화재를 국가나 개인에게 귀속시키지 않고, 보화각이라는 공공기관을 통해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그의 모든 재산과 노력으로 일군 문화유산은 특정인의 소유가 아닌, 우리 민족 모두의 것이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는 고대 동양 철학에서 강조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 공적인 것을 먼저 하고 사적인 것을 뒤로한다)'의 정신이자, 개인의 물질적 욕구를 넘어 공동체의 이익과 미래 세대의 계승을 지향한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염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간송 선생은 자신의 부를 단순히 '소유'하는 것을 넘어 '수호'하고 '전수'하는 도구로 활용했으며, 그의 이러한 삶의 방식은 시대를 초월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그가 “나는 재산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모으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단순한 부자가 아닌 문화와 역사의 수호자로서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인가'를 가르쳐 준 위대한 실천가였습니다. 그의 유산은 간송미술관을 통해 지금도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민족 문화의 소중함과 개인의 책임감,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는 숭고한 정신을 계속해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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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간송미술관 공식 웹사이트 - 간송 전형필 선생 소개 페이지

- 『간송 전형필』, 이충렬 저, 김영사 (2007)

- 『한국의 미를 찾아서』, 간송미술문화재단 (정기간행물 및 학술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 간송 전형필 관련 학술 연구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간송 전형필 인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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