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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심한 째까니 Nov 28. 2024

나무처럼

부부

예뻐지고 싶던 10대, 20대를 훌쩍 지나고 어려 보이고 싶은 중년이 되었다. 귀엽게 주름지던 눈가 주름은 이젠 깊어져 웃지 않아도 선명하게 꼬리를 내리고 있다. 중력을 버티지 못한 팔자주름 아래로, 머리를 한껏 젖혀야 펴지는 목주름은 나이테를 숨기지 못한 나무 같다. 세수하고 수분 크림을 잔뜩 바르다 이마도 당기고 입꼬리도 끌어올려 본다. 이리저리 밀리는 살 따라 바뀌는 표정에 픽 웃고 만다. 아, 슬프다.     


젊었을 때 쌍꺼풀 수술이라도 할걸. 후회된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피멍이 앉은 눈으로 나타나는 애들이 종종 있었다. 그 당시 제일 큰 졸업 선물은 쌍꺼풀 수술이었다. 요즘은 시기도 빨라져 중학생 아이들도 많이 한다. 큰조카도 고등학교 입학 전에 하고 싶어 했다. 처진 외꺼풀을 올리고 싶은 나는 조카의 수술에 관심이 많았다. 형부가 끝까지 반대하면 내가 보호자로 병원에 가기로 밀약까지 했다. 그 사실을 안 남편이 자기가 데리고 가겠다고 선뜻 나서서 놀랐는데 남편은 행여 내가 조카와 나란히 수술 침대에 누울까 싶어 그런 거였다.

    

연애 시절부터 줄곧 남편이 쌍꺼풀 수술을 반대하기도 하고 겁도 나서 포기했다. 그땐 수술이 잘못되는 일이 많았다. 언니가 쌍꺼풀 수술한 게 풀려서 다시 하고 온 날, 피가 덕지덕지 말라붙은 눈으로 나와 남편을 볼 때는 정말 섬뜩했다. 아는 선배 언니는 부자연스러운 쌍꺼풀로 별명이 ‘꼬막 눈’이었다. 이제 막 깐 고막 같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외꺼풀 내 눈에 안심하곤 했다. 그리고는 쌍꺼풀 테이프로 아쉬움을 달랬다.     


육아로 늘 잠이 부족해 외꺼풀이든 쌍꺼풀이든 상관없이 그저 눈꺼풀이 오래 닫혀 있기만을 갈망하던 시간이 지나니 슬며시 또 쌍꺼풀 수술이 하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엔 빵빵한 눈두덩 지방 덕분에 사나워 보인단 소리도 많이 들었다. 또 사납기도 했다. 세월은 모든 단단한 것들을 몰랑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성격만큼이나 눈두덩도 야들야들해졌으니 말이다.  

    

얼마 전 쌍꺼풀 테이프를 얻어 소심한 라인을 만들었다. 내가 예전에 쓰던 것과 달리 양면인 쌍꺼풀 테이프는 눈을 껌벅이자 눈꺼풀과 속눈썹이 한 덩이로 엉겨버렸다. 눈꺼풀 속에 파묻힌 가느다란 테이프는 거울을 보며 떼어내기 쉽지 않았다. 남편을 불렀다. 이런 걸 뭐 하러 붙였냐며 타박하면서도 남편은 눈꺼풀에 붙은 테이프를 떼려 애를 썼다. 하나를 겨우 떼고 나머지 하나를 떼는데 자꾸 남편이 눈꺼풀을 집었다. 무딘 손가락으로 찰싹 붙은 가는 테이프를 바로 떼기가 힘들었다. 남편은 핀셋을 들고 왔다. 혹시나 핀셋에 집힐까 싶은 두려운 마음에 남편의 티셔츠 양 귀퉁이를 꼭 움켜쥐었다. 따뜻한 체온과 익숙한 체취 때문이었을까? 마음이 말캉해지더니 중력을 거스르고자 했던 팽팽한 욕심이 푸스스 가라앉는다. 25년 전엔 빵빵한 내 눈두덩을 지키고자 했던 이가 있고 지금은 처진 눈을 지지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그냥 몰랑한 중년으로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남편이 시원스레 나머지 테이프를 떼어 낸다.     


세월은 안으로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 가면 좋겠습니다. (정채찬,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인플루엔셜, 2020,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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