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역사가 모여 집단의 역사를 만든다는 정의 반대편에는, 집단의 역사 속에 개인의 것을 소실당하거나 잃어버린 이들의 존재가 있다. 제45회 서울연극제의 공식 선정작인 연극 <새들의 무덤>은 역사라는 거대한 이름이 지워버린 개인의 서사를 조명하며 남다른 연극적 체험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연극은 불 밝은 무대 위로 용접 가방을 든 오루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장면은 바뀌어 폐허가 된 집터가 펼쳐지고, 그는 곧 환상처럼 모여든 새떼 속에서 어린 새 한 마리를 따라가게 된다. 새는 오루를 알 수 없는 과거의 소용돌이로 이끌며 잠시 접어 두었던 내밀한 기억 속으로 그를 초대한다. 마치 기억해야만 한다는 듯, 잊어서는 안 된다는 듯 말이다. 두 파트로 나뉜 연극은 1막에서 진도의 어촌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오루의 어린 시절을, 2막에서 봉제 공장에서 일하며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해 딸까지 얻은 오루의 청장년기를 보여준다. 거친 역사를 맨몸으로 통과하며 버텨온 개인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 전반을 훑는 상당한 스케일의 작품이다.
이 알 수 없는 여행에서 새는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로 그의 곁에 머문다. 여기서 새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의 상징인 새가 안내자이자 동반자로 등장한 이유는 명징하다. 닿을 수 없는 창공을 미끄러지듯 비행하는 새는 미지의 세계를 체험하는 신비한 존재로 여겨진다.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알 수 없는 풍경까지 접해보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동시에 <새들의 무덤>에서 새는 사자(死者)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작중 바다에 삼켜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미신을 품은 '새섬'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이가 죽음 이후 무거운 육신과 역사를 훌훌 날리고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새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낯설지만은 않다. 따라서 새는 안내자이자 전령관인 동시에, 오루를 그리고 수호하는 누군가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새들의 무덤>은 삶과 맞닿은 죽음에 대해 끈질기게 발화하고 있다. 섬에서 태어난 오루인 만큼 부모님과 수많은 이웃들을 잡아먹은 바다는 삶이 있던 그 순간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흔한 은유처럼 바다를 죽음의 상징으로 본다면, 오루의 삶은 탄생부터 죽음과 맞닿아 있던 것이다. 특히 1막의 마지막 부분, 17살이 된 오루를 중심에 두고 마을 사람들이 굿을 벌이는 대목은 이 죽음을 완전히 삶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아니, 죽음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산자들의 선택을 보여준다.
한 개인의 역사가 곧 마을의, 사회의, 국가의 역사가 됨을 보여주는 <새들의 무덤>은 반대로 역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굴러가는데 얼마나 많은 개인들의 삶이 연료로서 소모되어 왔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동시에 그것이 역사를 만들고, 때로는 만들어진 역사 속을 헤쳐나가는 개인의 운명임을 실감하게 한다. 사랑하는 자의 죽음, 자아의 죽음, 물리적인 죽음, 정의의 죽음, 윤리와 낡은 가치관의 죽음 등 수많은 종류의 끝을 맞이하면서도 인간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자연히 이러한 물음이 이어진다. 언제나 죽음을 상정해야만 하는 삶 속에서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의지를 다질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를 한탄하는 것도, 과거의 아픔으로 망가질 수밖에 없던 개인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거 위에 기억이라는 먹지를 덧대어 그 흔적을 천천히, 또 서툴게 그려나가는 태도를 취한다. 연출자의 말을 빌려, 과거를 제대로 응시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갈 힘과 작은 희망을 얻고자 하는 시도이다. 망각의 은혜를 거부하면서까지 개인이자 인간으로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연약한 발을 꿋꿋히 세우고 말겠다는 의지이다.
결국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끈덕지게 붙어 있는 기억, 그것이 쌓아 올린 거대한 저력에 있다. 역사와 완전히 유리될 수 없는 개인의 서사,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로서 발화하는 시도를 통해 연극 <새들의 무덤>은 관객에게 '당신은 어떤 기억을 안고 오늘도 나아가고 있는지'를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