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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닥 Sep 27. 2020

진료시간 3분?!
어디까지 말해봤니?

슬기로운 외래 진료 보기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것은 때로는 참 지치는 일입니다. 한 시간, 혹은 그 이상... 잘 봐주신다고 동네에 소문이 난 병원일수록, 그리고 예약 없이 갑자기 방문해야 할 경우에는 참 오래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들어갔는데 환자가 많아서인지 피로해 보이는 의사 선생님, 그리고 뭔가 좀 더 이야기를 할라 치면 뒤에 기다리고 있는 다른 환자들 때문에 왠지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다 하고 나오게 되면 뒤에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혹시 이 말씀을 안 드려서 약을 다르게 지어 주시는 것은 아닐까?', '이거 꼭 물어봤어야 하는데...' 


이전 글에서 병원 진료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는 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짧은 진료 시간 3분 동안에 똑소리 나게 '하고 싶은 말 다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https://brunch.co.kr/@kodoc/2


그런데 왜, 빠른 시간 내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리고 다들 느끼시는 것처럼 환자 한분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자분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어낼 수 있다면, 이후 신체진찰에 집중하고, 환자분께 좀 더 많은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해 드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어떤 '테크닉'들이 있는지 볼까요?



1. 진료의뢰서, '자세히' 써 가지고 오기


진료의뢰서란 말 그대로, 개인의원 혹은 2차 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의뢰할 때 사용하는 양식입니다. 이 진료의뢰서가 없으면 대학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이제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진료의뢰서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혹시 보신 적이 있나요?


종종 진료의뢰서에 '고진 선처 부탁드립니다'라고만 작성되어 있는 경우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내용으로도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으시는 데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개인의원에서 어떠한 증상으로 그간 치료를 받아오셨는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는 처음부터 진료를 다시 할 수밖에 없겠죠. 그러면 당연히 의사가 물어봐야 할 내용도 많아지고, 시간이 촉박해지게 됩니다.


반면에 이렇게 의뢰서를 작성해 주시는 원장님들이 계십니다. '상기 환자는 코막힘, 콧물, 두통 등의 증상으로 급성 부비동염(축농증)을 의심하여 Augmentin(항생제의 한 종류입니다)을 5일간 사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X-ray 검사상 여전히 부비동염 의심되는 소견이 관찰되어 의뢰드립니다.' 이런 진료의뢰서를 보면 저는 환자분께 '여기 원장님이 참 친절하시고 꼼꼼하시네요~'라고 하면서 해당 원장님을 한번 더 칭찬해 드립니다. 왜냐 하면 이런 경우 저는 환자의 주된 증상, 의심했던 질병, 그리고 그간 사용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던 약물의 종류까지 한 번에 알 수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들이 줄어들 뿐 아니라 다음 치료의 결정도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좀 더 정확하게 받고 싶으시다면, 평소 치료받던 개인의원 원장님께 '제 증상과 치료 내용을 조금 자세히 의뢰서에 작성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면 좋겠습니다.




2. 증상을 미리 써 오시는 것도 좋습니다


환자분들은 의사 앞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진료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간단히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볼까요? 


"인터넷에서 보니 제 증상이 암 생겼을 때 나오는 증상이랑 비슷하던데..."
인터넷에 나오는 내용들을 보고 있다 보면, 어쩐지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코막힘'으로만 검색을 하다가도 코에 생긴 악성종양(암)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지요. 이런 내용들을 자꾸 반복해서 보다 보면 어느덧 내 코에 암이 생긴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면서 외래에 오시게 됩니다. 반면 의사들은 환자가 "인터넷에서 봤는데..."라는 말씀을 하시면 우선 거르고 듣습니다.


"옆집 아줌마도 저랑 같은 증상이었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하나의 증상으로 감별하여야 할 질환은 많게는 수십 가지에 이르기도 합니다. 앞에서 인터넷에 대해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비전문가끼리 의논하고 걱정을 키우기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빨리 병원에 오시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반면에, 본인의 증상을 종이에 미리 적어 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5일 전부터 누런 콧물이 나왔음, 재채기/두통 동반, 열은 없었음, 이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음, 동네 병원에서 약을 먹었으나 좋아지지 않았음, 의사 선생님이 축농증인 것 같다고 함' 이렇게 적어 오시면 의사는 빠르게 그 내용을 읽고, 신체 진찰을 한 이후에, 추가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치료적인 계획을 빠르게 세울 수 있습니다.




3. 진료기록과 약봉지를 가져오세요


충청도에 사시면서 그 지역 종합병원을 다니시다가, 인천으로 이사 오시면서 저희 병원으로 옮겨 오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해당 질환에 대해 지속적인 진료가 필요하시다면, '타 병원 제출용'으로 지금까지의 경과 및 검사 치료 소견을 상세히 적은 진료의뢰서, CT 등의 검사 결과, 필요하다면 수술기록지 같은 것들을 복사 신청하셔서 가져오시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을 다 복사해 주세요'라고 하시면, 정말 수백 페이지의 두툼한 책 한 권이 나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지금 진료를 받아야 하는 최근의 기록들만 복사하셔도 충분합니다. CT 같은 경우에도 오래전에 찍은 CT는 별로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일껏 복사해 왔는데 다시 찍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있습니다. 오래전에 찍은 CT 등의 경우에는 '판독 결과' 정도만 복사해 달라고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주로 소아 환자의 어머니들께서, 그동안 아이가 복용하였던 약물들의 약봉지를 모두 모아서 병원에 가져오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약봉지를 모아 오시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항생제를 사용하여야 하는 경우, 그 약봉지에 적힌 항생제의 종류들을 보고, '지금까지 이런 항생제들을 사용하였는데 효과가 없었으므로 내성균을 의심할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하여서, 처음부터 다른 약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 아무 정보가 없으면 경험적으로 약을 사용하게 되므로, 이미 개인의원에서 사용하고 효과가 없었던 약을 대학병원에서도 또 사용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치료가 지연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넉넉하게 있어서 천천히, 모든 이야기들을 여유 있게 들어드리고 진료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못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슬기롭게' 진료를 받으실 수 있는 작은 팁을 공유해 드렸습니다. 앞으로 진료를 보실 때 도움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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