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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문과생 Apr 01. 2023

버거 안의 양배추

부끄러웠습니다.

옛날부터 TV 프로그램에서 꿈을 위해 상경하여 가난한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마침내 성공한 사람들이 인터뷰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쓰럽게 느끼다가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매일 컵라면만 먹으면서 생활할 정도라고? 정말로 (당시에) 6~8천 원 정도 하던 국밥 한 그릇 먹을 여유도 없어서 봉지나 컵라면을 먹을 정도였을까 하면서. 얼마나 거만하고 몰상식한 의심이었던가.


오늘 오랜만에 강남에 왔다. 친구와 전시회를 보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는데, 서로의 스케줄이 맞지 않아 나 먼저 일찍 도착해 혼자 점심식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코엑스 지하로 내려가 음식점을 찾아보았지만 최근 갈수록 폭등하는 물가 탓일까, 혼자 흔쾌히 지불하고 먹기에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가격들이었다. 순대국밥 한 그릇에 만오천 원이라니. 덮밥 한 그릇에 만이천 원이라니.


아침 6시에 기상한 로 한 끼도 먹지 않았던 터라 허기는 내게 많은 고민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역 후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던 나는 빠르게 가성비를 택했고, 맥도날드로 향해 칠천 원짜리 버거 세트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잘게 썰려 한입을 베어물 때마다 투둑 떨어지는 양배추와 손에 묻은 감자튀김의 소금과 기름을 보며 생각했다. '나보다 한참 고 잘 사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이해하지 못하겠지. 왜 만오천 원짜리 국밥 먹을 돈을 아끼며 손 더러워지는 패스트푸드를 먹는지.'


일어나지도 않은 상상 속 상황에 불쑥 기분 나쁨을 느낌과 동시에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거만하며 배부른 의심을 지금껏 해왔는지 부끄러워졌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어서도 용돈 받아 생활하는 행복한 학생 주제에, 그렇게 고된 삶을 살면서도 꿈을 좇아온 이들에게 박수 쳐주지는 못할망정 그런 터무니없는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러면서 나보다 잘 살고 있을 사람들에 대한 상상 속에서 투정에 가까운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돈은 있으나 흔쾌히 만오천 원, 만이천 원을 내고 국밥이나 덮밥으로 일상적인 한 끼 식사를 채울 만한 여유가 없었듯, 그들에게도 돈의 문제보다는 여유의 문제였을 것이다. 매일의 하루를 그 정도의 값을 지불하고 배불리 먹을 만한 심적인 여유 말이다. 그 내면의 사연은 무시한 채 그저 '돈'의 문제에만 집중해 의심했던 그때의 난 정말이지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한 반성 끝에 난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컵라면만 먹으며 살아야 할 정도로 심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을 버텨왔다면, 얼마나 그 일을 사랑했다는 것인가. 그야말로 자신을 고통스럽게까지 하는 일에 대한 맹목적 사랑으로 버텨온 것 아닌가. 언젠가 정말로 영화계에 뛰어들면 똑같이 겪게 될지도 모를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얼마나 흔들리고 붕괴될지 두렵다. 내가 과연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영화를 사랑하는지도 의심된다.


그래서 다짐했다. 오늘 나의 수치스러운 반성과 나보다 더 힘들었을 그들의 시절에 대한 존경을 잊지 않기로. 그들이 고통 속에서도 이 악물고 참았던 것처럼 나 또한 참아내리라고. 내가 몸 던져 표했던 내 일에의 사랑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지리라고. 또다시 오늘 같은 수치스러운 반성은 없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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