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사비는 어디를 가나 고즈넉하지만, 이곳 부여 왕릉원(구 능산리 고분군)에 들어서면 공기의 무게가 사뭇 달라집니다. 나성과 능사를 거쳐 발걸음이 닿은 이곳은, 한 시대의 마침표를 찍은 군주들이 잠들어 있는 백제의 '신성한 정원'입니다.
세계문화유산인 부여왕릉원에 들어서면 야트막한 산자락을 따라 봉긋하게 솟아오른 7기의 고분들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과거 무덤들은 오랜 시간 그저 '능산리에 있는 오래된 무덤'으로 불렸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서둘러 발굴되는 바람에 주인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잃어버렸지만, 그 유려한 곡선만큼은 백제의 우아한 미학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곳 고분들은 백제 후기 사비 시대의 전형적인 '굴식 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 橫穴式石室墳)'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무령왕릉처럼 화려한 벽돌로 쌓은 전축분과는 달리, 잘 다듬은 판석으로 반듯하게 방을 만들고 천장을 돔이나 평평한 형태로 마감한 것이 특징이죠. 규모는 작아졌을지 모르나, 그 정교한 석조 기술은 오히려 백제의 세련미가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고분군 입구에 자리한 부여왕릉원 전시관을 지나, 그 옆에 마련된 벽화고분 복제무덤(동하총)으로 향합니다. 실제 1호분인 동하총은 보존을 위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재현된 복제 무덤 안에서 백제의 찬란한 색채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복제무덤을 살펴보니 차가운 돌벽 위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신도가 펼쳐집니다.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 그리고 천장에는 연꽃과 구름무늬가 가득합니다.
고구려 벽화가 강인하고 힘차다면, 백제의 벽화는 마치 비단 위에 수를 놓은 듯 부드럽고 섬세합니다. 1400년 전의 화공도 죽은 왕의 영혼이 이 아름다운 연꽃의 정원을 지나 영원의 세계로 나아가길 바랐을 것입니다.
동하총의 주인은 정확히 알려진 바 없습니다. 다만 학계에서는 위덕왕의 무덤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하총 옆 골짜기 일대가 바로 능사가 있던 곳입니다. 살아서는 나성 곁 능사에서 아버지의 명복을 빌던 아들이, 죽어서는 그 절터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누워 영원히 아버지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위덕왕은 45년간 백제의 왕위를 지켰습니다. 신라에 대한 복수전에 여러 차례 나섰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죠. 다만 실추됐던 왕권을 어떻게든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습니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2007년 10월 충남 부여 규암면 왕흥사지에서는 사리함과 사리장엄구가 발굴됐습니다. 청동 사리함에는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사찰을 세우는데, 2매였던 사리가 장례 때 신의 조화로 3매가 되었다”는 창건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능사가 아버지를 위한 사찰이었다면, 왕흥사는 죽은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부정이 묻어난 사찰인 셈입니다. 물론 이런 사찰은 기원 사찰로 왕실의 번성을 빌고, 또 한편으로는 권위를 정립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후대 무왕과 의자왕대의 강력한 왕권은 위덕왕이 남긴 선물인 셈이죠.
왕릉원 가장 높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무덤 두 기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백제의 마지막 군주 의자왕(義慈王)과 그의 아들 부여융의 가묘입니다.
망국의 왕인 의자왕은 백제 멸망 후 당나라로 압송되어 머나먼 타국 땅 중국 낙양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유해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요.
지난 2000년, 부여군은 낙양의 북망산에서 가져온 흙을 담아 이곳에 가묘를 조성했습니다. 1400년 만에 선왕과 조상들이 묻힌 능원에서 영면에 들게 된 것입니다. 능산리의 왕릉원이 단순히 죽은 유적이 아닌 다시 왕릉원으로 기능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텅 빈 무덤 앞에 서서 서풍을 맞고 있자니, "해동증자"라 불릴 만큼 영민했던 왕이 마주해야 했던 비극적인 침묵이 가슴 깊이 파고듭니다.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저 멀리 금강이 굽어 보이고 능선마다 가을빛이 가득합니다. 백제의 왕들은 이 아름다운 땅을 지키기 위해 고뇌하고, 때로는 나성 밖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갔으며, 결국 이곳 왕릉원으로 돌아와 안식에 들었습니다.
최근 백제왕릉원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백제의 역대 왕들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숭명전이 건립된 것입니다. 오랜 세월 주인 없는 무덤들이 흩어져 있던 이곳에 드디어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기리는 중심축이 세워졌습니다. 나라가 망한 지 1400년 만에 다시 잊힌 왕들에 대한 제사가 시작된 것이죠.
단순히 과거의 유적이 아닌 지역민들이 정성껏 제를 올리고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더해지면서 이곳은 비로소 '죽은 자들의 공간'에서 '기억되는 자들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붉은 기둥과 단아한 기와를 보고 있자니, 죽음조차 삶의 연장이자 아름다운 이상향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백제인들의 마음이 오늘날 다시 되살아 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