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그녀를 기다리기 시작한 후로 노아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다. 비가 오는 날엔 그녀가 오지 않는다.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노아는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로는 그럴듯한 근거나 이유보다 더욱 사람을 강하게 설득시키는 직감 같은 것이 있노라고. 노아는 그렇게 믿었다. 비가 오는 날은 노아가 퇴근 후에 마음 놓고 마을을 산책할 수 있는 날이다. 노아는 그녀를 애타게 기다리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녀가 오지 않는다는 확신은 노아의 마음을 자유롭게 했다.
퇴근 후 노아는 우비를 뒤집어 입고 마을 도서관을 향했다. 노아의 집에서 가로수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주택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입구가 보인다. 적갈색으로 통일된 벽돌과 아이비 덩굴이 비를 머금자 색이 짙어져 때 늦은 흐린 한여름의 풍경을 연출했다. 풍경의 끝엔 짧은 오르막 위에 위치한 도서관이 보인다. 특이하게도 한옥 모양을 한 마을 도서관은 그 크기는 작지만 노아가 책을 읽기에 불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노아가 도서관에 도착하자 정문 옆에 한 사내가 고양이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목을 덮을 정도의 남자치곤 긴 머리에 버킷 모자를 쓴 사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노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노아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도서관 사서인 그는 사람이 없을 때면 늘 밖으로 나와 고양이와 놀고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다른 사서를 본 적이 없다. 이 조그만 도서관에 여러 명의 사서가 근무를 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아마도 한 명 정도는 더 있을 수도 있겠다고 노아는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노아가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사내도 미소 지으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우산을 잘 세워 고양이에게 놔둔 채 사내는 노아와 함께 도서관 로비로 들어갔다.
“저는 여기 앉아있을 테니 자유롭게 있다가 나오세요. 책 대여하고 싶으면 저한테 말씀하시고요.” 사내는 로비 의자에 앉으며 노아에게 말했다. 그는 세상 편안한 자세로 구부정하게 앉아 유리창 밖으로 고양이와 우산에 시선을 두었다. 입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노아는 간단하게 대답한 후 열람실로 들어갔다.
노아는 소설 칸을 몇 번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다녔으나 오늘따라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지 못했다. 노아는 소설 칸을 벗어나 옷 구경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책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이따금 한 권씩 꺼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한참이나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던 노아의 눈에 고양이에 관한 역사 서적이 보였다. 딱히 마음에 드는 책도 없던 터라 노아는 그 책을 집어 들고 로비로 나왔다.
“저, 이 책을 대여하고 싶어요.”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아의 책을 받았다.
“어?” 사내는 책의 제목을 확인하고는 노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고양이를 좋아해요?”
“아니요. 딱히 읽고 싶던 책도 없던 터라.” 노아는 말끝을 흐렸다.
“이거 반갑네요. 저는 책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해서 관련한 잡지는 많이 읽고 있어요. 덕분에 ‘고양이와 관련한 신기한 사실’과 같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죠. 한번 들어볼래요?” 사내의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졌다고 노아는 생각했다. 이미 노아의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이를테면 이런 거죠. 고대 이집트에 바스테트라는 여신이 있어요. 몸은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얼굴은 고양이의 얼굴을 하고 있어요. 이집트에 많은 신들이 그렇잖아요? 사람들은 고양이를 바스테트의 현현이라 믿었고 신처럼 떠받들었대요. 재미있지 않아요?”
“재미있네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궁금하지만, 그때 사람들은 정말로 그런 것을 믿었을까요?” 노아는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띠고 말했다.
“사실 이런 신화가 생긴 배경에는 당시 흉년을 대비해 곡식을 장기 저장해야 했고, 설치류를 없애기 위해 집집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꼭 필요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어요. 그때 당시 사람들에겐 ‘고양이가 귀여워요!’ 나 ‘고양이가 쥐를 잡아 줄 테니 꼭 키우세요!’ 따위의 말보다 고양이를 신성시하는 것이 훨씬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겠죠.”
“명쾌하네요.”
“그렇죠. 많은 신화가 ‘믿음’으로 접근하면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필요’로 접근하면 명쾌해져요.” 사내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한편으로 바스테트라는 신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기도 했다고 해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의 동공이 달이 차고 짐에 따라 변화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고양이를 달의 상징으로 생각한 거죠. 어두운 밤, 달이 세상을 비추듯 고양이도 주인의 은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대요.”
노아는 고개를 돌려 우산과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는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아는 집으로 돌아와 젖은 옷을 걸어두었다. 베란다 옆 거실로 걸어가 덩그러니 놓인 작은 원형 테이블에 책과 함께 차를 준비해 두고 의자에 앉아 책을 폈다. 언젠가 우체국 행사에서 직원들에게 나눠준 투박한 모양의 벽걸이 시계는 9시를 넘긴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처음 얼마간은 의욕이 생겨 책을 읽었으나 노아가 읽기엔 다소 지루한 내용의 책이었다. 이내 노아는 목차를 펴 흥미가 가는 주제의 페이지만 살펴보았다.
[15세기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 사냥이 성행했다. 대상이 되는 사람은 대부분이 여자, 그중에서도 부유한 과부 혹은 미혼 여성 등 혼자 사는 여성들이었다. 특히나 혼자 사는 여성 중 다수가 고양이를 키웠기 때문에 나중엔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이 마녀라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왜곡된 믿음은 점점 발전하여 사람들은 고양이가 그 자체로 마녀 혹은 악마라고 까지 믿게 되었고, 많은 고양이가 도망간 마녀의 집에 홀로 남아 그들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다.]
노아는 잠시 책을 덮고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외딴집, 도망간 주인, 홀로 집을 지키는 고양이와 그곳으로 향하는 광기 어린 군중, 어두운 밤과 달. 노아는 문득 도서관 사서의 말이 맴돌았다. ‘어두운 밤, 달이 세상을 비추듯 고양이도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대요.’ 노아는 홀로 집을 지키는 고양이의 슬프면서도 결의에 찬 눈이 떠올랐다. 그 눈은 보름달처럼 빛났을 것이다.
몰래 찾아온 누군가가 겨우 용기 내어 창문을 두드리듯 빗물이 조용히 창문을 두드렸다. 베란다 창문을 보니 빗물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노아는 버킷 모자를 쓴 도서관 사내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느 시대에는 신이었던 고양이가 몇 천 년 후에는 누군가를 대신해 죄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