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노아는 우체국 내 거대한 물류창고로 향했다. 얼마 전 집배원 한 명이 뉴스에 나와 업무 강도가 너무 높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했었다. 누군가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짜놓은 연극에 아무것도 모르는 서민 배우를 등장시켰다며 강하게 비난했지만, 실제로 그랬다면 연극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각종 여론은 앞 다투어 여당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고, 그 여파로 우정사업본부에서도 집배원의 복지를 위해 이런저런 방침을 내렸다. 노아가 일하는 지역은 평소에도 일이 굉장히 적은 편이었으나 집배원 복지 증진 사업 이후 집배원 수가 늘면서 아주 여유롭게 일하게 되었다.
“옘병. 출근시간이 왜 등교시간하고 겹치는지 모르겠어. 길을 막고 서서 지들끼리 얘기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떡하라는 거야. 등교 지도 선생들이 교문 밖으로 조금만 더 나와 있어도 좋을 텐데 말이야.”
노아를 발견한 염병 아저씨가 노아를 향해 투덜거렸다.
“오셨어요? 요즘 일도 여유로운데 좀 천천히 오시지 그러셨어요.”
“어 노아 왔냐. 옘병. 더워서 작업복 입고 다니겠냐.”
“그래도 아침마다 옷 고르느라 시간 낭비 안 해서 좋아요.” 노아는 웃으며 염병 아저씨에게 말했다.
“녀석. 성격도 좋구먼. 옘병. 나이가 드니 불만을 입 밖에 내질 않으면 참을 수가 없어. 미안하다. 아침부터 기운 빠지는 소리나 하고.” 염병 아저씨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침마다 염병 소리 못 들으면 이제 좀 허전하다니까요.”
“옘병. 별소리를.” 염병 아저씨는 낄낄거리며 우편물을 챙겼다.
“까만 봉투를 보니 월요일인 걸 알겠네요.” 노아는 우편물 더미 속에서 까만 편지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그 사람이냐? 월요일마다 편지 보낸다던?”
“네 맞아요. 대단하네요. 제가 알게 된 것만 몇 개월은 된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연애편지 같지 않냐?”
“분위기는 그러네요. 낭만적인데요?”
“옘병. 요즘 같은 시대에 핸드폰으로 안 하고. 지랄이네.”
“그럴만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요?” 노아는 미소를 띤 채 우편물을 담은 가방 문을 잠그며 활기차게 인사했다. “수고하세요!”
노아는 헬멧을 쓴 채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어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노아는 가로수 사이를 오토바이로 느리게 지났다. 헬멧을 타고 옷깃에 부딪히는 바람을 느끼며 노아는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렇게 느린 속도로 약 30분을 달리면 어느새 높은 건물은 사라지고 가로수 쪽엔 듬성듬성 지어진 주택들만 남는다. 주택마다 정원이 딸려있고 낮은 담장이 세워져 있어서 그런지 허전한 느낌이 없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풍경이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서너 가구가 살법한 빌라가 하나씩 보였는데 하나같이 세련된 느낌보다는 편안한 느낌이 드는 건물들이었다. 골목의 갈림길마다 가게가 하나씩 보였으나 그중 장사에 욕심이 있어 보이는 가게는 한 군데도 없었다. 노아가 보기에 그들은 그저 가로수처럼 본인의 자리를 지키는 데에 온 관심이 있는 듯했다. 이런 풍경을 구석구석 경험해야 하는 자신의 일이 노아에겐 행복이었다.
노아는 아주 작은 마당이 딸린 하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기껏해야 허리 높이까지 밖에 안 오는 작은 문을 노아는 대문이라 불러도 될지 의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침입자로부터 주인을 지키려는 대문의 원래 의도는 간데없이 대강 구색만 맞춰놓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노아는 왠지 이 마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문은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할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이 노아가 이 마을에 반하게 된 이유였던 것이다. 노아는 대문에 달린 편지함에 검은 봉투의 편지를 집어넣었다. 노아는 고개를 들어 대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집까지 들어가는 길 좌우로 핀 작은 꽃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눈에 거슬리는 돌덩이도 없고 지저분하게 자란 잡초도 없었다. 아마도 집주인은 아주 깔끔한 성격이겠지 하고 노아는 생각했다.
“그 집 사는 양반 아는 사이야?” 정적을 깨며 노아의 등 뒤에서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 한분이 말을 걸었다.
“아니요. 모릅니다.” 노아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희한한 일이야. 전에는 젊은 총각이 한 명 살았는데, 요즘은 노인 한분만 사는 것 같대? 이사를 간 것 같지는 않고. 물어보고 싶어도 통 집에만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으니 알 수가 있나.” 푼수 아주머니는 담벼락 너머를 훔쳐보며 이야기했다.
“노인이요?”
“이 집 담벼락이 낮으니까 지나가다가 한 번씩 정원 정리하시는 걸 보거든. 전에 있던 총각도 그렇게 정원을 정리하더니 노인도 똑같이 정원을 그렇게나 열심히 정리하시더라니까?”
“그 젊은 사람은 요즘 이 집에 안 오나요?”
“글쎄. 3-4개월 전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정원 정리하던 청년을 마지막으로 봤던 것 같은데. 맞아, 그날 뭔 사정인지 죽을상을 해서는 땅만 만지고 있는데, 아니 글쎄 사람이 무슨 힘든 일이 있었는지 그새 10년은 나이 들어 보이더라니까.”
노아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편지가 온 지는 반년은 된 것이 분명했다. 노아는 혹시 젊은 사람에게 편지가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아는 그를 붙잡고 한참이나 떠들고 싶어 하는 푼수 아주머니에게서 업무를 핑계 삼아 도망쳐 나와 오토바이를 몰았다.
몇 군데나 집을 돌아다닌 후에, 노아는 언덕을 올라 지나가는 길에 토스트 노점 트럭을 방문했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까운 순서대로 편지를 전달하다 보면 점심시간 즈음에 항상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이 트럭에 도착한다. 노아는 이 트럭을 좋아했다. 메뉴는 변함없이 햄 치즈 토스트를 주문했다. 등이 훤히 뚫린 노점 좌석에 앉아 아기자기한 유리병에 담긴 우유와 함께 토스트를 먹고 있으면 매번 소풍이라도 온 기분이 들었다. 노아는 예쁜 자연경관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만약 내 손에 사진기가 있다면 이곳을 찍고 싶다고 노아는 생각했다.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노아는 일어나 뒤로 돌았다. 양손을 들어 사진을 찍는 시늉을 한 후 노아는 오토바이로 걸어갔다. 가방을 확인하니 편지가 벌써 삼분의 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오후엔 쉬엄쉬엄 일해도 되겠다. 노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퇴근 후엔 베란다에서 그녀를 기다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