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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꽃 Sep 30. 2020

어린왕자와 장미의 길들임

생 텍쥐페리 <어린왕자> 독후 에세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어릴 적 읽은 좋은 책의 기억은 나이가 들면서 더 풍요로워지기에 소중하다. <어린왕자>도 그중 하나이다. 수년 전엔 ‘다른 별에서 온 신비로운 왕자가 장미, 조종사, 여우와 이야기하는 여행 이야기’였는데 크고 보니 전혀 다른 책이 되어 있더라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물론 이 새삼스러운 놀람에도 불구하고, 생 텍쥐페리는 이미 서두의 헌사에서부터 “어른에게 이 동화를 바친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밝혀뒀었다.


프랑스의 공군 비행사이면서 작가였던 앙투안 드 생 텍쥐페리


 생 텍쥐페리는 1943년 미국에서 어린왕자를 펴냈다. 헌사에 등장하는 레옹 베르트는 생 텍쥐페리의 절친한 친구로 프랑스에서 나치의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 역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처지였는데 현장에서 고난을 겪고 있을 친구를 떠올리며 어린왕자의 헌사를 써 내려갔다. '고국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는 친구에게 위로 삼아 바쳤다'는 이 동화는 삽화까지도 직접 그가 그렸을 만큼 진정 '생 텍쥐페리 표' 손길이 듬뿍 담긴 작품이었다.


나는 이 책을 어린 시절의 그분에게 바치고 싶다.
어른들도 처음에는 모두 어린이들이었다.(그러나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어른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헌사를 다음과 같이 고쳐 쓴다.

어린 시절의 레옹 베르트에게


 사실 처음 생 텍쥐페리는 이 책을 아내 콘수엘로에게 바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콘수엘로가 거절했기에 레옹 베르트가 헌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생 텍쥐페리와 아내 콘수엘로


 아내 콘수엘로는 엘살바도르 출신의 남미 여성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파리 등에서 유학을 하고 사교계에 진출해 주목받는 유명인사이기도 했다. 한때 연인이었던 멕시코 작가 호세 바스콘셀로스는 그의 자서전에서 '독특하지만 모순으로 가득하고 마술 같은 매력을 지닌 여인'이라고 콘수엘로를 묘사했다고 한다.


 콘수엘로의 흩날리는 짧은 곱슬머리와 결이 고운 스카프는 어린왕자의 모습과 꼭 닮았다. 생 텍쥐페리는 그녀를 작품 속 '장미'로 설정하여 자신의 사랑의 철학, 더 나아가 존재에 관한 메시지를 어린왕자와 여우의 입술을 통해 전한다.



"참 아름다우시군요!"
"그렇죠? 그리고 난 해와 같은 시간에 태어났답니다...."

어린왕자는 그 꽃이 그다지 겸손하지 않다는 점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 꽃은 너무도 감동적이 아닌가! ... 이렇게 그 꽃은 태어나자마자 심술궂은 허영심으로 그를 괴롭혔다.


차가울 정도로 툴툴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장미는 어린왕자의 마음을 괴롭게 했고, 결국 어린왕자는 소행성 B612호를 떠나 우주여행을 하게 된다. 장미의 '허영심'으로 인해 어린왕자는 우주를 떠돌며 여러 소행성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7번째 별 지구에 당도한다.  


생 텍쥐페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을 지니고 있는 문학계 유명인사였고 그의 순수함은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에 반해 아내 콘수엘로는 2번의 결혼과 2번의 비극적인 남편의 죽음을 겪었던 미망인이었고 상처가 많은 여인이었다. 둘은 첫 만남부터 강하게 이끌리고 사랑에 빠졌지만 성품도 표현방식도 서로 달랐다. 아내를 사랑했으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생 텍쥐페리는 일평생 아내와 크고 잦은 다툼을 번복하면서 사랑하는 이를 존중하고 그를 보호하고, 또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어. 그 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만 했어.
그 꽃은 나에게 향기를 풍겨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 주었어. 결코 도망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 가련한 거짓말 뒤에는 애정이 숨어 있다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꽃들은 그처럼 모순된 존재들이거든!
하지만 난 너무 어려서 그를 사랑할 줄을 몰랐던 거야."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형체는 없지만 행위로써 사랑은 실존한다. 어린왕자에서 말하는 사랑의 방식은 '길들이는 것'이다.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의했다.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거든." 여우가 말했다.
 "아! 미안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본 후에 그는 다시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어린왕자는 지구에 와서 수 백 송이의 장미가 만발한 정원을 보았고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그 작은 별에선 유일한 존재였던 장미가 그토록 평범했다는 것이 못 견딜 만큼 슬펐던 것이다. 슬픔에 잠겨있던 어린왕자에게 여우가 나타났던 것은 그때였다. 사막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다가와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건 너무 잘 잊히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 "..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사랑하는 존재가 특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특별해지는 것이라고 여우는 설명하고 있다. 사랑의 어느 한 측면은 그 대상에게 생기와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지구 안에 수 백의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이 셀 수 없이 많이 있어도, 어린왕자에게 장미는 오로지 한 송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서로를 길들인다는 것은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기로 서로 약속하는 것이다.



길들인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을 마음에 들이게 되면 작은 일상마저도 추억을 회상하는 지름길이 된다. 길을 걸어도 노래를 들어도 영화를 봐도 너와 했던 것들이 생각나더라, 하는 예사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이처럼 사랑의 과정에선 모두가 사랑하는 존재에게 자발적으로 기억과 감정을 내어주며 길들여진다. 그렇게 점차 내가 아닌 상대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나아가 세상을 바라본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침투하는 것이고, 이러한 침투를 통해 알려고 하는 나의 욕망은 합일에 의해 만족을 얻는다. 융합하는 행위를 통해 나는 당신을 알고 나 자신을 알고 모든 사랑을 안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심리학의 궁극적 귀결은 사랑"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에 대해 깊은 고찰을 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형태 역시도 '다른 사람에게 스며드는 작업'이며 희생과 양보, 헌신 없이는 사랑이 완성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네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때문이야.
하지만 너는 이것을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어."



어린왕자 역시 장미를 위해 유리 뚜껑을 덮어주고, 그를 보살핀다. 사랑은 그처럼 그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더 나아가 그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보살피고 싶어지기에'

사랑과 노동은 불가분의 것이다. 자발적으로 일하면서도 기쁠 수 있는 기적을 사랑을 통해 맛본다. 일을 하며 일할 수 있음에 기쁠 수 있다는 것이 '직업으로서의 노동'으로썬 상당히 기괴한 모습처럼 보일 수 있어도 사랑의 측면에선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길들여진다는 건 눈물 흘릴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사막여우는 이야기한다. 사랑에 상처 받고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기가 선뜻 두려워진다. 그래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며 시인은 노래한 것일까. 차라리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다고 마음의 벽을 쌓는 이들도 있다. 두려움에도 사랑할 수 있는 그 방법에 대해 에리히 프롬은 '독립'이라고 이야기한다.

 한 사람이 오롯이 독립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하면 목발 없이 서서 걸을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사랑을 타인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자립할 수 있다면 설령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나의 반려 동물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는 내면을 성숙하게 도와준다. 성숙하기에 사랑하는 것도 맞으나 사랑하면서 성숙해지는 것도 맞다. 혹여 그와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기억 한편은 분명히 풍요로워질 것이며 그로 인해 기뻐할 날도 분명 찾아온다. 사막여우가 어린왕자와의 이별에 눈물을 흘렸지만 나중 되어 어린왕자의 머리칼을 닮은 밀밭을 보면서 기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사랑이 찾아오고, 그 공간을 내어달라고 할 때에 움츠리지 말고 용기를 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 텍쥐페리가 기나긴 사랑의 투쟁(그들의 애정사를 들여다보면 투쟁이란 말이 어울린다)을 버텨냈기에 사랑의 단면인 희생을 깊게 들여다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 역시 그와 같은 길을 걸어오면서 "나의 진정한 사랑은 생 텍쥐 페리밖에 없었다."라고 하며 남편이 죽고 난 뒤에도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훗날 자전적 에세이 <장미의 기억>을 통해 남편과의 추억을 기렸다.


책 <어린왕자>는 작가의 체험과 진심이 담긴 글이었기에 지금까지도 이처럼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진정으로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생 텍쥐 페리의 말이 진정 옳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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