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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Nov 22. 2022

노인이 되고 싶다.

나는 젊음이 아닌 늙음을 갈망한다.

젊은이는 모르는 젊음의 가치

아일랜드의 문학인 조지 버나드 쇼는 그 유명한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아깝다(Youth is wasted on the young)’라는 말을 남겼다. 나이가 들어 봐야 젊음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으며 젊은이들은 아직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젊음의 귀중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젊음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우며 그 누구에게도 젊음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더 가치 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마치 인간의 본능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젊어지기 위해 노력하고 이미 나이가 들어 버린 사람들, 혹은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단 하루라도 더 자신들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다.


늙고 싶다.

모두가 젊어지고 싶어서 노력을 하는 와중에 남들과는 다르게 나는 늙음을 갈망한다. 아직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늙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을 하는 최초의 사람이 내가 되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가 듣는다면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하는 헛소리라고 생각하며 ‘역시 젊은이는 젊음의 가치를 모른다’라고 혀를 찰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창 젊은 나에게는 늙음이 절실하다.


나는 어느 날 암환자가 되어있었다. 30대 초반이라는 나이에 암환자라니.. 6차로 예정되어있던 항암치료를 절반이나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인지 종종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아직도 스스로에게 무엇이 진짜인지 되묻는다. 내 삶에 암이라는 게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고 그래서 암보험 같은 건 ‘난 젊으니까 아직 필요 없어’라고 생각해서 들지 않았었다. 난 자만했다. 병을 알게 되기 바로 몇 달 전 내가 사용하는 토스 어플은 나에게 ‘또래 30대 대비 암보험이 부족해요’라고 말했고 내 손가락이 ‘내 가입 보험 분석’까지 눌렀지만 ‘40대에 들지 뭐~’하고는 중간에 꺼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딸에게 책장 뒤에서 신호를 보내듯 어플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때의 난 암보험이 필요한 사람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나의 젊음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나의 병을 진단받고 그것이 4기쯤 되다 보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그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자 가장 되고 싶은 것의 순위가 바뀌었다. 순위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생각지도 않았던 ‘노인’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나의 1순위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나는 노인이 되고 싶다.


그동안 나는 나의 젊음을 당연시했다. 길에서 지나가는 노인들을 보면 그들의 구부정한 자세와 느린 걸음걸이에 안타까움은 느꼈지만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은 있는 것이고 그들도 한때는 젊어봤을 터이니 내가 그 옆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것에 미안함이나 연민 같은 건 느낄 필요가 없다고 사뭇 냉정하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언제 어디서라도, 설령 그것이 나의 젊음을 부러워하는 노인의 곁일지라도 나는 지금의 젊음을 만끽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했다. 나의 젊음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기에 자랑할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나열해보았을 때 감히 값조차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임은 확실했다. 나는 당연하게도 나에게 주어진 젊음을 누리면서 내가 나이가 들어 지팡이를 짚고 틀니를 끼게 되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지 지금의 나와는 한참을 무관하겠거니 생각했다.


노인이 된다는 것

지금의 난 노인이 부럽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아 졌다. 누구나 노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니 참 씁쓸하지만 내가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치료를 잘 받아서 노인이 될 때까지 건강을 유지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노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세월을 살아냈다는 것이다. 30대인 나는 40대도 되어보고 싶고 50대도 살아보고 싶다. 60대도 지나야 하고 70대도 누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80대가 될 때까지, 앞으로 60번의 크리스마스를 더 맞이하고 싶다. 60번의 1년들을 더 살아내고 싶고 비로소 노인이 되어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며 그들의 젊음이 부럽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의 나에게 노인이란 오랜 세월을 온전히 누리고 그 시간 속에 스스로를 쌓아온 그 누구보다도 부러운 대상이다. 그러니 나는 반드시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을 달성하고야 말겠다. 노인이 되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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