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이기전에 나도 여자다.
멋쟁이의 계절이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뜨겁고 바람은 선선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사람뿐만 아니라 길거리 나무들마저 한껏 색을 입고 치장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모두가 새로운 계절에 맞춰 꾸미는 이 시기에 암환자인 나는 미용실에 가서 가볍게 손질을 할 수 있는 머리카락조차 없다. 예전 같았으면 쌀쌀해지는 날씨에 맞춰 새로운 옷과 화장품을 장만하려고 한창 들뜬 마음으로 월급날을 기다렸을 텐데 회사를 쉬면서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보니 월급날의 설렘은 어느덧 아득하기만 하다.
완치가 가장 중요한 지금의 나에겐 치료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고 현재의 내 몸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예뻐지고 싶다, 꾸미고 싶다’는 욕구는 눈치도 없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흔히 말하는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정성스레 하는 이유가 ‘남 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족으로 하는 거야’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스스로를 치장하고 꾸미는 것은 인간의 마음 깊이 자리 잡은 본능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가발도 없이 버킷햇만 푹 눌러쓰고 운동 삼아 집 앞을 걷던 중에 한껏 꾸미고 외출하는 내 또래를 보았다. 롱부츠에 가죽재킷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던 여자가 곁을 스쳐 지나는데 그 사람의 짙은 향수 냄새가 마스크 너머의 내 코를 자극했다. 그 향수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감 넘치게 외출하던 그 사람의 당당한 발걸음과 표정 때문인지 나는 그만 주눅이 들고 말았다. 누가 볼세라 버킷햇을 최대한 깊숙이 눌러쓰고 목이 시릴까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의 스카프를 둘러맨 나와는 너무도 다르게 있는 힘껏 멋을 부린 내 또래의 모습은 나의 자존감을 낮추기에 충분했다. 병을 진단받기 전, 나는 언제나 외출 직전 마지막으로 현관 앞에서 그날의 기분에 맞춰 유리장 안에 진열되어 있던 향수 중 하나를 골라 손목과 목덜미에 뿌리곤 했다. 향수 뿌리기는 외출하기 전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병원이 아니면 딱히 어딘가를 갈 일이 없다 보니 마지막으로 향수를 뿌린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맡은 향수 냄새로 인해 내 안의 잊고 있던 무언가가 상기된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다음날 집 근처 올리브영에 가서 화장품 코너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화장을 할 일이 없으니 딱히 새로 살 것도 없었지만 다채로운 색조 화장품들은 내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괜스레 향수 코너도 둘러보고 색조 화장품 코너에서 이 색 저 색 손등에 발색도 해보았다. 계산을 하고 나올 때는 결론적으로 항암환자도 사용할 수 있는 성분이 가장 순한 기초 보습제만 구매했지만 내년에 치료가 끝나면 정말 예쁘게 꾸미고 다니리라 다짐을 하였다.
꾸미는 것을 포기하니 편해진 것은 많다. 머리를 감고(몇 가닥 남지 않은 이 머리카락도 사실 감는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별도의 드라이나 헤어제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출근 준비마다 반복되던 오늘은 뭘 입을까, 어제는 뭘 입었더라 같은 고민도 할 필요가 없다. 잠들 때까지 늘 착용하던 귀걸이와 목걸이도 전부 빼버리고 신발이라고는 오로지 편함만을 생각한 병원용 슬리퍼와 산책 겸 외출용 운동화가 전부인 요즘의 내 패션도 금세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제 나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스스로를 치장하고 꾸밀 때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기에 치료를 마치는 내년이 아주 기대된다. 머리카락을 기르면 어떤 헤어스타일을 할지, 내 퍼스널 컬러에 맞는 화장은 어떤 게 있을지, 네일아트는 어떤 컬러로 할지 등의 수많은 자잘한 고민거리들은 아주 즐거운 상상이 된다. 나를 예쁘게 가꿀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하나씩 신경 쓰다 보면 결국 내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또 다른 불편함이 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 불편함은 결국 내겐 즐거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