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일상의 업무.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읽는 책 : 협상의 기술
고객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약 2년에 걸쳐 제안을 해온 대형 프로젝트인데, 이번 달 내로 협상을 마치겠다고 한다. 고객은 LS ELECTRIC 과 글로벌 대기업 모 업체를 최종협상자로 선정했다.
정보를 입수하고 분석했다 : 고객이 원하는 목표금액, 기존 시스템 도면과 구성품목, 경쟁사의 추정 입찰가, 우리의 강점과 약점.
내일은 내부 협의를 통해 입찰가를 결정하고, 최종 제안을 마무리할 것이다 : 가격 제안서 (commercial proposal), 과업(scope of work), 시스템 구성과 상세 사양(system configuration and product specifications), 물량 표(bill of quantities).
고객과 미팅하는 순간을 시뮬레이션해 본다. 고객은 경쟁사보다 부족한 부분을 지적할 것이고, 그 이유로 가격을 낮추려고 할 것이다. 지체상금(delay penalty), 분쟁 및 준거법(arbitration, governing law), 책임한도(limit of liability), 대금 지급(payment terms) 등의 계약조건을 더 유리하게 가져가려고도 할 것이다. 본 계약을 앞둔 자리에서 어떤 태도로 협상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기대와 긴장의 연속인 날들, 꿈에서도 사업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밤에는 기본으로 돌아가 평정심을 갖게 해줄 책을 찾는다. 이 책은 협상 전문가인 허브 코헨의 협상 노하우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계약 협상에 앞서 원칙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직업을 포함해 모든 만남과 상황을 게임이나 판타지 세계라고 생각하라. 조금 뒤로 물러나 그냥 즐겨라. 최선을 다하되 모든 게 원하는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너지지 마라. 어떤 일이든 보기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협상의 기술, 허브 코헨
경쟁에서 자신감을 북돋워 줄 책 : 서점 자기계발서 코너의 책
고객은 유리한 계약을 위해 글로벌 경쟁사와 직접적인 비교를 서슴지 않는다. 경쟁사가 견적이 더 낮다, 설계 도면과 기술 제안서를 잘 만들었다, AP(Advance Payment)를 덜 받고, 즉시 팀을 파견하여 사업에 착수하겠다고 한다. 이런 상황인데 LS ELECTRIC은 어떻게 할 거냐, 고객은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던진다.
회의 내내 협상 테이블 너머로 계속 공이 날아오고, LSE 협상단은 침착하게 하나씩 리시브한다. 고객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는 스파이커보다 리베로다.
고객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 또 판세를 바꿀 수 있는 우리만의 강점은 시간을 들여 정성껏 설득하지만, 고객과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영업의 목표가 아니다, 납득할 수 있는 솔루션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긴 하루를 보냈다. 피곤하지만 뭔가 아쉽다.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자기계발서 코너에 가서 책장에 꽂힌 책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책 제목을 하나하나 읽는 동안 기분이 전환되었다. 우리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 고객의 코멘트가 때로 아픈 것은 청춘이라서, 고객 요구에만 집착한 무리한 승리는 저주가 될 수 있고, 신경 끄기의 기술은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게 해줄 것이다. 영업 전선의 최전방에 선 영업사원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책 한 권을 구입했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거기에 네 삶이 걸려있는 것처럼.
*Love Yourself Like Your Life Depends On It, Kamal Ravikant
끝까지 달릴 힘을 얻기 위한 책 : 미생
협상은 종반으로 치닫을수록 기 싸움, 체력 싸움이다. 지치면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 어렵다. 장기 협상에서 목표를 향한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컨디션 조절을 잘 못 하게 되면, 고객의 의견을 끝까지 듣는 것도 힘들다.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고, 균형을 잘 잡아,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려면 생각보다 상당한 체력이 소모된다. 고객의 나라에서 협상이 진행될 경우, 출장 가방에 홍삼, 운동화, 그리고 이 책을 준비한다.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미생, 윤태호
미생은 고등학교 친구의 추천으로 웹툰일 때부터 읽었는데, 해외 영업을 맡고, 직장생활의 애환을 경험하며 더 공감하고 즐겨 읽게 되었다. 지금도 집에 아홉 권 전권을 가까이에 두고 회사 업무나 인간관계로 생각이 많을 때 자주 읽는다.
계약서 서명을 위한 출장에서 읽는 책 : 80일간의 세계 일주
고객사절단의 한국방문으로 공급사 평가 (supplier assessment) 완료. 고객 구매 부서에서 PO(purchase order)를 발행했다. 계약서 최종 리뷰와 서명은 고객 본사가 있는 캐나다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캐나다까지 비행시간 13시간, 시차 13시간.
아침 9시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같은 날짜의 같은 아침 9시의 토론토에 데려다 주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다. 우리가 날짜 변경선을 지나온 것일까?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 마지막 반전이 떠오른다.
“나는 12월 21일 토요일 오후 8시 45분까지 이곳 런던 혁신 클럽의 휴게실에 돌아와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지금 베어링 은행의 내 계좌에 예치되어 있는 2만 파운드는 여러분 것이 될 겁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영감을 주는 책 : 회사 사람이 쓴 책, 회사 사람이 쓰고 있는 책
계약을 마쳤다. 복귀한 일상은 다시 바쁘게 지나간다. 협상 기간의 긴장감, 계약의 성취감은 의외로 금방 잊힌다. 계약을 실패한 경우의 좌절감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출근하면 메일을 열어보고, 급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한다. 신규 사업을 발굴하고, 회의를 하고, 고객과 미팅 일정을 잡는다.
때때로 프로젝트는 살아 움직이며, 어떻게 변형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기체와 같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맞닥뜨린 실제 이슈들은 늘 예상과 달랐다. 그래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 노력하고, 일에 남다른 열정을 쏟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쓴 책은 일하는 나에게 특별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위대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고,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옆자리 A매니저는 연구소와 새로 개발된 시스템을 제안하고, B매니저는 곧 입찰이 예정된 사업을 위해 설계 엔지니어, 프로젝트 매니저와 현장 조사를 다녀왔다. C매니저는 연초에 사업을 수주하고, 또 다른 입찰을 위해 주말도 없이 제안서 작업 중이다. D매니저는 선적 전 제품검사를 위해 공장 외근 중이다.
그렇게 우리는 누구도 대신해서 쓸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업 인생의 책, 그 한 페이지를 열심히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