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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락재 Oct 24. 2021

이해

서로를 헤아리는 일

2015년 봄, 우리는 제주로 떠났습니다. 꽉 막힌 빌딩숲을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던 월리는 제주의 탁 트인 풍광에 편한 숨을 내쉬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월리 혼자 까페에서 긴 시간을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월리를 데리러 간 저에게 여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지요. "손님없는 까페에 건장한 남자분이 혼자 계셔서 사실 긴장했어요"라고. 110kg까지 살이 찐 그 무렵의 월리는 어둠의 세계에 몸담은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습니다. 월리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살이 찐 연유를 말씀드렸더니, 사장님은 속에 담아두었던 당신의 사연을 들려주셨습니다. 저와 동갑인 따님이 악성 종양으로 오래 투병해왔고, 따님과 함께 제 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제주로 오셨다고 말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밤이 늦도록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까지 누구에게도 속을 털어놓은 적 없던 저였습니다. 우울하고 무거운 이야기에 부담스러워할 친구들에게도, 힘들어하시는 부모님께도 차마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인연에게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어요. 그 마음 다 알아요"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아이처럼 울고 말았습니다. 같은 아픔을 겪어본 이만이 할 수 있는 속깊은 위로였지요. 서로의 지난 날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미어지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몇 번이나 서로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지요. 우리가 겪은 일은 참으로 가혹했지만, 그 시간이 있어서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음을 말입니다.


시간이 훌쩍 흘러 어느 덧 연말이 다가왔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잔뜩 신이 나있던 2015년 12월 24일, 월리의 체온은 갑자기 40도를 웃돌기 시작했고 우리는 결국 서둘러 입원했습니다. 원인은 스테로이드 장기 복용으로 인한 감염증. 복부에 농양이 생겨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더 큰 문제가 있었지요. 월리의 관상동맥 곳곳이 막혀있어서 전신마취를 할 경우 언제라도 심정지가 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매일 부분마취로 조금씩 농양을 제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환부를 절개한 상태로 매일 수술실과 병실을 오가며 처치를 받았지요. 하지만 며칠이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입원은 점점 길어졌고, 2016년 새해를 병원에서 맞았습니다. 입원한 지 보름이 지날 무렵, 밤부터 월리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패혈증 증세를 보였습니다. 전신 경련을 일으키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지요. 뇌수술에 실명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월리를 잃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밤새 감염내과 당직의를 호출했지만,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월리가 사경을 헤매는데도 우리가 받은 것은 해열제와 얼음 뿐이었지요. 애간장이 녹아내려 1분이 하루 같았습니다. 그렇게 새벽녘이 되었을 때, 복도를 지나가는 담당과 전공의를 발견한 저는 항생제의 강도를 높여달라고 애걸복걸했습니다. 그는 감염내과와 협진이 필요하다며 난색을 보였지만, 월리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당장 제일 강한 항생제로 바꿔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약을 바꾸자마자 월리의 상태는 호전되었고, 그제서야 저도 살 것 같았습니다. 그 전공의에게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요.

다음 날 정오가 되자 감염내과 전공의가 나타났습니다. 지난 밤 상황을 설명하며 큰일날 뻔 했다고 화를 내자, 그 사람이 짜증을 내며 말했지요.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뭘 그러세요?” 생사의 기로에 서있던 우리에게 무례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던 의료진이 그 사람 하나는 아니었습니다.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하면서 종종 겪었던 일이었지요. 월리를 잃을까 두려워서 한없이 뾰족하고 날카로웠던 저는 그런 그들이 끔찍히도 미웠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도록 그들의 이름과 그들이 뱉은 말들을 곱씹었지요.


그랬던 제 마음을 조용히 움직인 일이 생겼습니다.  자정이 넘은 어느 늦은 밤이었지요. 아직 배달을 마치지 못한 택배차량이 저희 집 앞에 서있었습니다. 주인없는 차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노랫말이 어찌나 처연하게 들리던지요.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만 고단한 일은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에, 조용히 운전석에 영양제를 올려두고 돌아왔습니다.


문득 미워하던 의료진들이 떠올랐습니다. 돌아보면 제 기대가 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주인공처럼 언제라도 달려와주기를, 환자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건네는 따뜻한 의사이기를 바랐으니까요. 하지만 현실 속 그들은 과로에 지쳐 환자들의 절박함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는 평범한 직업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눈에 월리 외에 다른 이들의 사정이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지요.


넉넉한 마음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일. 아직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 풍파를 다 겪고나니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던 어느 노배우의 말은 닿지 못할 득도의 경지처럼 느껴졌지요. 그래도 노력하는 중입니다. 쉬이 미워하고 더디 이해하는 일을 무수히 반복하더라도, 언젠가는 제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다른 이를 헤아릴 줄 아는 어른이 될 수 있겠지요. '사정이 있겠지.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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