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집가 May 30. 2024

꿈이 없다는 거짓말

#2_용기를 북돋는 나와 꺾는 나의 치열한 싸움



사랑이 많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환상이 더해질 때 유독 심해지는 탓에 정작 가까운 사람에겐 나눠줄 마음이 적긴 하지만.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뜨겁게 불이 붙는다. 사나흘은 밤을 새워가며 거뜬히 덕질을 하고, 혼자 공연에 가 맨 앞에서 신나게 놀고 오기도 한다. 그리곤 금세 식는다. 환상 속 사람이 갑자기 실재하는 기분을 느껴서. 열렬히 사랑하다 식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다 식고, 다시 돌아가는 경험은 많지만 한 사랑만 진득하게 유지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을 나열하자면 이 글의 반 페이지정도는 너끈히 쓸 수 있지만 참겠다.


책을 좋아하고 난 뒤로는 책을 쓰는 사람에 대한 사랑도 생겼다. 닮아서 좋은 작가도, 닿을 수 없어 좋은 작가도 좋은 이유는 많다. 하지만 그들을 보고 와서는 식지 않는 게 참 신기하다. 같은 책의 북토크를 여러 번 가고, 나서는 걸 싫어하는 내가 손들고 질문을 할 정도니. 하지만 누구의 개입도 없이 혼자 현실의 벽에 갇히고 만다. 내가 나를 막아서는 일은 타인의 엄청난 재능을 본 뒤에도, 최악의 책을 보고 난 뒤에도 어김없이 일어난다. 내가 뭐라고, 내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한다고, 피곤하니 일단 오늘은 쉴까 등등 말릴 이유는 많다. 하지만 등 떠미는 이유도 많은지라 나의 일상은 용기를 꺾는 나와 용기를 북돋는 나의 나름대로 치열한 싸움이다. 하루키의 글 한편을 보고 문득 용기 내보고,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은 낯선 사람의 대화에서도 ‘오 이거 한번 써볼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글은 문학적 의미가 있다거나, 대단한 기법이 들어간 게 아니다. 그냥 하루의 끝에 무심코 쓴듯한 소소한 일상, 괜히 거슬리는 무언가를 마침내 써버린 듯한 통쾌한 글. 누구나 쓸 수 있는 편안한 이야기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내가 쓴 편안한 이야기는 아무도 관심 없을 거라며 단정했다. 내가 나의 팬이 되지 못한 건 나를 너무 잘 알아서이겠지. 환상이 없어서이겠지.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조회수에 연연하지 않는 척 하지만, 기왕 공들여 쓴 글이 소리소문 없이 (그럴 수밖에 없지만) 쌓이는 게 아쉽다.


글태기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었던 건 사실 브런치 상위 노출 이후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쓴 글을 수천 명이 보는 걸 보니 ‘이제 풀렸다’ 싶었다. 하지만 같은 노력으로 쓴 다음 글이 다시 두 자릿수로 떨어지는 걸 보니 내가 뭘 잘못했지 싶었다. 알고리즘을 탓해보기도, 괜히 소위 ‘어그로’ 끄는 제목을 지어보기도 했다. 돈에 관심 없다는 사람이 사실 가장 돈에 미쳐있다는 말처럼, 내 만족을 위해 쓴다 하면서도 남의 만족에 누구보다 귀 기울였다.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징징댄다고 읽어줄게 아님을 알기에, 나라도 나의 팬이 되어 내가 읽을 글을 마구마구 써내야지.


어제 회사에서 처음으로 여직원 모임이 있었다. 팀,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터라 걱정이 앞섰는데,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할 때 한 사람이 ‘저는 책 읽는 거 좋아하고 작가 되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하는 걸 보았다. 나는 누가 글 써보라 하면 ‘에? 나는 그런 거 관심 없어’라며 안 쓰는 척하곤 했는데, 당당한 모습이 멋졌다. 결과물로 말하고 싶어 하는 나는 책을 내기 전까진 꽁꽁 숨겨두겠지만 저도 사실 작가 되는 게 꿈이에요.



자우림의 ‘팬이야‘가 문득 생각나서 써본 글입니다. 다들 아실런지요.


https://music.youtube.com/watch?v=-A5009Oi1qw&si=5nI3ObqcFgyeKQ4q



#에세이 #일상 #꿈

작가의 이전글 에세이 투고 후 두 시간 만에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