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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Oct 02. 2023

진보는 보수를 이길 수 없다.

진보파 남편 VS 보수파 아내 

"너 모범생인 줄 알았는데 보기 보다 반골 기질이 있구나?"


중학교 삼 학년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틀린 문제를 모두 오답 노트에 적어오라는 숙제를 하지 않아 교무실에 불려 갔을 때였다. 내 옆에는 같이 불려 온 학급 반 아이 두 명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중간고사에 비해 가장 성적이 많이 떨어진 학생이 우리 셋이라고 하셨다. 그것도 전교 기준이라고, 어떻게 세명 모두 우리 반에 있을 수가 있냐고 경악을 금치 못하셨다.


한참을 호들갑을 떨었던 탓이었을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선생님은 나와 나머지 두 명을 번갈아 보셨다. 그러더니 나를 콕 집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근데 너는 대체 왜 여기 껴있는 거니?"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발언이지만 학창 시절 나름 공부를 했었다. 그러다 기말고사는 내신 반영이 안 된다는 정보를 들었는데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래서 열심히 하지 않았다. 사실 졸았다. 전교 10등 안에 들다가 갑자기 100등 밖으로 주욱 밀리니 담임 선생님으로서 당황스러울 만했다.


나랑 같이 불려 온 아이 두 명은 소위 노는 아이들이었다. 나름 모범생이 노는 아이들과 사이좋게 교무실에 불려 온 장면이 이례적이었나 보다. 우리 담임 선생님뿐만 아니라 오며 가며 마주치는 선생님들도 나 한번, 두 아이들 한번 그리고 물음표 하나를 머리 위로 띄우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았건만 별안간 오답 노트를 써오라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틀린 문제 하나당 열 번씩 써와. 안 해오면 엉덩이 맞을 줄 알아!"


담임선생님은 우리 3학년이 졸업할 때까지 내 엉덩이를 매주마다 때리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하셨을까?




"너 정말 지겹다..."


정확하게는 졸업하기 2주 전까지였다. 나와 아이들은 나란히 사이좋게 엉덩이를 맞았는데 어느 날 하나가 오답 노트를 다 써오더니 곧이어 남은 하나마저 의리(?)를 저버렸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나만 남아있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네가 마지막까지 개길 수가 있냐고 뒷목을 연신 잡으셨다. 그렇게 오늘도 괜스레 엉덩이를 한번 문지르며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르륵. 


앞 교문을 열며 교실로 들어오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내 얼굴을 한번 쓱 보시더니 한숨을 푹 쉬시곤 지겹다는 표정과 함께 보기보다 반골 기질이 있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당시 나는 선생님께서 내게 딱 하나만 물어봐주시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러다가 졸업 전까지 얘기도 못 꺼내보는 거 아닌가 싶던 찰나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질문이 선생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너 대체 왜 안 써오는 거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건방지고 부끄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엄마와 대단한 마찰을 겪고 있던 터라 알게 모르게 내면에 반발심이 가득한 상태였다. 


"차라리 틀린 문제 풀이를 하게 해 주세요. 열 번 적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왜 그런 시절이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거쳤던 시절 말이다. 머릿속에 늘 '왜?'라는 의문을 품던 젊음이라는 포장지를 쓰고 있던 시절. 그 의문을 부드럽고 현명하게 표출하는 젊음이 있다면 한 치 앞도 모르는 마냥 서툶이 그대로 묻어나는 젊음도 있는 법이다. 나는 후자였다. 전자가 되기 전까지 말 그대로 깨지고 엎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했었다. 


조금 변명을 덧붙이자면 유전자의 영향도 분명 있으리라. 이 대목의 유전자라 하면 모계가 아닌 부계를 의미한다. 아버지는 상경 후 어떤 회사의 사무직으로 입사해 탄탄대로를 걷다가 일용직 근로자들의 하소연에 노조를 들어 화려하게 잘리곤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그때 아빠의 상사분 말씀이 내가 널 얼마나 좋게 봤는데 멀쩡하게 보여선 왜 반골처럼 구냐였다. 엄마였으면 정년퇴직까지 굳건히 자리를 보존하여 고향으로 돌아올 일은 없었으리라. 


그랬다. 아빠는 진보 중 진보였고 엄마는 보수 중 보수였다. 전형적인 진보와 보수의 조합이라니. 이보다 더 환장할 조합이 또 있을까. 




있다. 


진보파 남편과 보수파 아내보다 더 환장할 조합은 진보파 자식과 보수파 부모이다. 본디 진보는 보수를 이길 수 없다 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일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그래도 종국에는 진보는 보수에게 패할 수밖에 없지만 과정이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수평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두 성인 남녀의 만남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생존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소리다. 그러니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자신의 성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 여기서 우리는 권리가 아닌 조건이라는 단어에 집중해 본다.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더 서글픈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가진 권리를 백 프로 다 끌어내어 주장하려면 그럴만한 조건이 필요하다. 내 생존권을 쥐고 있는 상대 앞에서는 나의 권리가 그저 이론상의 무언가, 즉 신기루에 불과해진다. 권리를 주장할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지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 그러하다. 부모와 자식은 어떤 경우에 따라 수직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아니, 사실은 날 때부터 종속된 관계를 맺는다. 생명은 모두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지만 갓 태어난 아이에게 권리가 웬 말인가. 생존이 우선이다. 


겨우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싶으면 이제 정신을 내놓아야 한다. 정신을 담보로 잡혀서 또다시 생존 싸움을 벌어야 하는 셈이다. 이는 아래의 문장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 


"너 엄마 말 안 들으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태어날 때는 먹고 자고 싸는 일차원적인 생존이었다면 성장기에는 어떤 말이든 '예예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답해야 하는 고차원적인 생존을 다룬다. 전자는 잘 먹고 잘 자면 생존했다고 표현하지만 후자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버려야만 비로소 생존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 권리를 주장하면 그날 밤 잠은 다 잤다고 봐야 했다.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는 날은 상당히 피곤한 하루가 되어버렸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현상이다. 하지만 어느 가정이든 빈번히 벌여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성장기에는 일정 부분 부모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 다만 부모라면 '왜?'라는 의문이 넘쳐나는 아이들에게 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윽박지르며 찍어 누를 게 아니라 논리적인 설명과 함께 설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부모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보수는 세상이다. 세상은 진보가 아닌 보수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사실이자 진리이다. 그러니 보수의 편에 선 이들은 더더욱 진보를 품어줄 수 있는 아량을 길러야 한다. 특히나 수직적인 관계를 띄는 보수와 진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린 진보를 억누르지 못해서 아득바득 이를 갈 필요도 없다. 결국에는 진보도 시간이 지나 때가 되면 보수로 기울기 마련이다. 


보수가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면 진보도 진보다운 덕목이 필요하다. 진보는 늘 패착을 낳는다. 바로 기존의 것을 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틀렸다고 판단하여 들이받는 악수라는 패착이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그 무언가를 일단 겪어봐야 한다. 진보는 종종 옹달샘에 두 발을 담지도 않고 이 물은 차갑다고 말하는 우를 범한다. 


다시 부모와 자식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우리는 어릴 적 그토록 싫어하던 부모의 모습을 부모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하는 경험을 한다. 만약 그때가 되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당신은 진정한 진보로서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이제는 보수에게 너는 틀렸다고 말할 때가 되었다. 당신은 더 이상 묵살당하던 진보가 아니다.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은 진정한 진보이다. 


진보는 과연 보수를 이길 수 있을까? 줄곧 그럴 수 없다고 답했지만 딱 하나 방법이 있긴 있다. 옹달샘에 직접 발을 담그고 이 물이 차갑다고 사방에 목소리를 높일만한 확성기를 준비하자. 담그지 않고 차갑다 하면 듣는 이 없을 것이고 확성기를 준비하지 않고 담그기만 한다면 동요할만한 이가 없을 것이다. 결과까지 장담할 순 없지만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할 수는 있다. 




확성기는 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도구이며 이 도구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독립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경제적 정신적 독립 없이 진보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밥벌이라는 게 별 것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단지 내 안위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의 고유한 성향을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부모에게서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 말에 힘이 실린다. 문제는 정신적 독립이다. 나는 독립하고 싶다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지만 정작 정신적인 독립을 다루는 이들은 잘 보지 못했다. 의식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내 집, 내 자동차, 내 직장.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완전히 분리했건만 정작 내 정신은 어디에 두고 왔는가. 몸은 내 집에 있건만 정신은 여전히 본가에 머물러 있다. 어릴 적 살던 집에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몸만 어른이지 정신은 애다, 애야."라는 말은 이와 같은 현상을 대변해 준다.




말은 잘하는데 그래서 너는 얼마큼 독립했는데? 하고 묻는다면 나도 현재진행형 중이다고 답하고 싶다. 우리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립을 하셨다. 그러니 나도 당신들도 조급할 것은 없다. 


우리가 진정한 진보라면 언젠가는 독립을 할 테니까. 혹은 독립은 하더라도 보수가 될 수도 있겠지. 세상 일은 모르는 일이다. 다만 여전히 진보의 길을 걷고 싶다면 독립부터 하자. 그리고 반드시 옹달샘에 발을 담그자. 오답노트 열 번 쓰고 "선생님, 그런데 제가 해봤는데요. 열 번 똑같이 적는 것보단 한번 선생님께 풀이를 해드리는 게 더 학습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편이 행하지 않고 의미 없다고 하는 편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우당탕 깨지고 엎어지는 서툰 젊음을 지나 서른에 접어들어 겨우 깨달았다. 언젠가 내가 보수가 된다면 그리고 진보 자식을 두게 된다면 진정한 보수로서 이러한 이야기들을 진보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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