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없어, 갈 곳이 없어.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소파 옆에는 캐리어가 하나 놓여있었는데 굳게 닫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짐이 잘 정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한테 뭐라고 했었는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건강하고 잘 지내라는 말이었겠지. 어쨌거나 아빠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우리 집 풍경에서 사라졌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이처럼, 그렇게 연기처럼 흩어졌다.
생때같은 자식 둘을 두고 집을 나서다니. 옮기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나는 울지 않았고 동생은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빠는 눈물을 흘렸을 테고 지나치는 거리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차 안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교복 차림의 아이를 바라볼 때면 이제는 중학생이 되었겠구나. 어린 시절의 나를 더듬으며 현재의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고 열에 헤어져 열일곱에 만난 아빠가 말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은 또 흐르고 흘러 어느덧 내 나이 스물여덟. 전 남자친구가 함께 키우던 고양이들을 두고 같이 살던 집을 떠났다. 오 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나와의 헤어짐보다 사 년을 키운 고양이와의 이별이 더 힘들어 보였다. 그가 시야에서 흐릿해지자마자 더는 볼 수 없었던 하지만 늘 내 등 뒤로 바짝 붙어있던 기억이 이때다 싶은 듯이 실체를 드러내며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자신을 드러냈다.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댄 기억이 비릿한 웃음을 띄우며 내게 말한다.
너도 네 엄마와 별반 다를 바가 없구나.
엄마는 주변 이들을 모두 떠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지나치게 혐오한 탓이었을까. 심연을 오래 응시하면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혐오하던 엄마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물론 아빠와 전 남자친구는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엄마와 나는 비슷하다. 아빠와 엄마, 나와 전 남자친구. 각자의 서사가 다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마지막 장면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열 살의 기억으로 돌아가버렸다. 왜인지 아빠가 나를 떠났다는 사실보다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주변인들을 떠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와닿은 기억이었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에야 이빨 빠진 호랑이지만 당시의 엄마는 이가 성하다 못해 입에 칼을 문 호랑이에 가까웠다. 이따금 동생이랑 엄마가 만약에 아빠였다면 우리는 진짜 뒤지도록 맞았을 거라고 (물론 맞을 때는 또 지독하게 맞았지만 그 타격감이 달라도 훨씬 달랐을 거라고) 얘기한다. 그때는 진짜 티브이에서나 보던 가정 폭력의 양상이지 않았을까. 아, 이미 그러했는데 자각하지 못한 건가. 적어도 병원에 실려간 적은 없으니까 일단은 아니라고 해두자.
친탁을 했단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기 때문에 내 안에 엄마처럼 호랑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릴 때는 잘 몰랐다. 나는 아빠를 닮았구나. 그래서 엄마랑 치고받고 싸우는구나. 어쩌면 이때만 해도 정말 호랑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유전적 요소는 있을지언정 발현되지 않고 영원히 땅 속에 묻힌 채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나는 엄마를 너무 오랫동안 그것도 아주 깊게 들여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내 안의 호랑이를 키우고 또 키웠던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실체를 마주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타인과의 관계에서였다. 엄마의 영향이 내가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 장애물로 작용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탓을 하자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한번 분노가 들끓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이 요동쳤다. 그도 그럴 것이 호랑이를 키우면서 던져준 먹이는 다름 아닌 증오였기 때문이다. 엄마를 증오하면 증오할수록 엄마와 똑같아졌다. 한 번씩 이성을 잃으면 엄마랑 똑같이 칼춤을 추는 미친 호랑이로 변신했다. 상처는 상처를 낳는다고, 미처 치유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는 저도 모르게 타인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아.
그러기 위해선 엄마를 이해해야 했다. 정 이해가 가지 않는 날에는 최소한 미워하지라도 않아야 했다. 엄마를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나만 더 손해인 것 같았다. 호랑이를 당장 죽일 수 없다면 더는 키우지라도 말아야지. 먹이가 없는데 제 까짓게 얼마나 버티겠어.
그렇게 나는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호랑이 사냥에 나서고 있다.
사냥을 하면 할수록 사람은 바뀌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좀 달라졌다 싶으면 귀신같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사람이다. 나만 그런가? 나는 그렇다. 아등바등 애를 쓰고 있자면 한번 씩 존재 모를 이가 속삭여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뭣하러 그리 애를 쓰냐고. 그냥 살던 대로 살면 편하지 않겠냐고.
그 목소리에 굴복해 무너진 적도 여러 번이다. 내가 그러면 그렇지. 바뀌는 건 뭐 아무나 하나. 나는 못 해. 엄마처럼 살게 될 거야.
바뀐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렇게 평생을 살다 갈지도 모를 일이다. 다 놓으면 편하다는 것도 안다. 주변 사람들은 힘들지언정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쪽이 더 수월할 테다. 하지만 이렇게 편한 길만 걸어갈 거였다면 애당초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너무 말을 듣지 않아 아빠에게 보냈단다. 열일곱에 짐이 아무렇게나 든 케리어를 끌고 아빠 쪽으로 넘어갔다. 안락한 의식주 없이 어디 너 한번 고생해 봐라. 고생 좀 하면 엄마가 제공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리라. 그리 생각한 엄마는 지금까지도 첫째 딸을 다시 품에 품지 못했다.
엄마의 생각은 반은 옳았고 반은 틀렸다. 확실히 엄마라는 자리가 비워진 소녀의 삶은 편안하지 못했다. 아빠는 몇 년 만에 만난 딸에게 전에 채워주지 못한 자리를 메꿔주고자 엄마의 몫까지 무던하게 노력했다. 두 분 다 자식이라면 끔찍하게 아끼는 분들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불행 속 행운이었다.
아들은 아빠가 딸은 엄마가 필요하다던 아빠는 내가 딸이라 자신이 미처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여겼다. 예를 들어 속옷은 어떤 걸 입어야 하고 화장품은 어떤 걸 발라야 하는지. 아빠는 여성 카테고리 앞에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엄마가 나한테 고생해봐야 한다는 뜻도 저런 거였을까. 그렇다면 엄마 말이 맞다. 산머슴아처럼 우당탕 살아갔으니까. 하지만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옷도 화장품도 아니었다. 엄마는 이를 몰랐다. 딸이 무엇을 중요히 여기는 지를 몰랐다. 그래서 내가 후회하리라 여기지 않았을까.
진짜 힘들었던 건 따로 있었지만 적어도 의식주는 아니었다고 말해두고 싶다. 아, 지금이라면 그렇게 못 한다. 그때는 꿈만 먹고살아도 살 수 있었던 시절이라 존재의 자유로움이 가장 중요했다.
육신은 그늘에서 벗어났건만 정신은 아직도 헤매는 중이다. 과거의 기억들은 여전히 내 등 뒤에 숨어서 적당한 때를 노리고 있다. 방심한 순간치고 들어오는데 그러면 나는 또 무력하게 뒤덮이고 말아버린다.
바뀐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뒤덮이면 털어내고 또 뒤덮이면 또 털어내서 평생을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며 살아간대도 흐름에 몸을 맡기진 않을 것이다. 그러고도 그늘에서 차마 다 벗어나지 못해 나와 엄마처럼 훗날 내 자식들에게 설령 원망을 듣게 된다면(그럴 기미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결혼도 하지 않을 테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미안하다고. 엄마가 고치겠다고.
너희 할머니처럼 먼 길을 에둘러 가진 않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미처 다 싸지 못한 짐을 끌고 허둥지둥 집을 나서던 그 시절의 내가 실로 듣고 싶었던 말을 온전히 전해줄 것이다. 집안의 캐리어는 여행할 때나 쓰이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