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린 이는 없고 맞은 이만 있다
"제아야.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네가 힘들다. 널 도와주려는 사람들 손을 못 잡는 거야."
엄마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과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괜히 저런 말을 한다. 북 치고 장구 친다는 말이 생각나지만 입을 다물고 애꿎은 창밖만 바라봤다. 더 얘기를 섞었다간 "엄마. 그 말은 제삼자나 할 수 있는 말이지 엄마는 아니야."라고 말해버릴 것 같았다.
영어 관용어 중에 상대의 입장을 생각한다는 in one's shoes라는 표현이 있다. one의 신발을 신어보아야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알릴 수 있다는 뜻이다. 신발은 걸어온 길을 대변한다. 어떤 사람이 걸어온 길의 흔적은 그 사람의 신발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또한 우리 신발장에 신발이 한 켤레만 있는 게 아니듯이 우리의 입장도 여러 가지가 있다. 형제로서의 입장, 동료로서의 입장, 친구 혹은 연인으로서의 입장. 우리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신발을 찾아 신는다.
어느 날 이런 결심을 했다. 우리 집 신발장을 열어보자. 나는 내 두 눈으로 신발장 속을 바라보길 주저했다. 멀쩡한 신발이 한 켤레도 없으면 어떡하지? 막상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아침 현관문 앞에서 큰 갈색 문 두 짝으로 이뤄진 신발장을 열어젖힐까 말까 서성이며 고민하다 결국에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둔 신발을 주워 신곤 집을 나섰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신발을 사회생활용 신발이라 부른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자신의 입장을 다 드러내며 살아가겠는가. 나의 진짜 마음은 신발장 속에 꼭꼭 숨겨두는 편이 좋다. 문제는 신발장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으면 내 신발임에도 어떠한 상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맨 밑줄 왼쪽 구석. <딸로서의 입장> 타이틀을 달고 있는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있다. 몇 년간 신발장을 열어보지 않아 기억이 가물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자리가 맞다. 현관 모퉁이에는 <딸로서의 입장 - 사회생활용> 구두가 놓여있다. 줄곧 구두를 신어대며 살아왔는데 엄마의 저 한마디에 미루고 미뤘던 신발장을 열어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엄마가 내 입장이 되어봤어? 내 신발장 맨 밑줄 왼쪽 구석에 있는 운동화를 신어 보기나 했냐고.
누군가가 그랬다. 부모를 바꾸려 들지 마라고. 혹 부무와 과거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그저 받아들이고 인정하라고. 우리 엄마는 저런 사람이구나. 나는 저런 사람 밑에서 이렇게 컸구나.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야 앞으로의 미래가 있다고 했다.
저 말을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한참 엄마와의 관계를 고민할 때 언뜻 보았던 것 같다. 인정하라고? 엄마가 원래 저런 사람이라는 걸? 나는 지금도 이렇게 한 번씩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어떻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서슬이 퍼런 칼날도 세월이 지나면 녹이 스는 법이다. 엄마와 나도 녹이 슬었다. 서로 날을 세우기엔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렇게 자연스레 '그래. 우리 엄마는 저런 사람이었지.' 하며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착각을 했다.
언제였을까.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과거 얘기가 흘러나왔다. 싸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엄마는 이랬고 나는 이랬고 덤덤하게 서로의 과거를 짚는 시간이었다. 아 그랬구나. 엄마는 그랬구나. 제야는 그랬구나.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 엄마가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그래.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도 그때는 몰랐어. 하지만 제아야, 엄마가 과거를 털어냈듯이 너도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얽매여 있으면 네가 손해야."
나는 왜인지 저 말을 듣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마치 이 감정이 내 온몸을 뒤덮어 오는 것만 같았다. 부글부글. 들끓다 못해 속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에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왜일까? 틀린 말은 아닌데. 내가 왜 이러지? 이성적으로 답안을 찾기도 전에 내 입이 먼저 이 감정의 원인을 짚어내었다.
"엄마! 엄마가 그 말을 할 수는 없는 거지!"
당시 어떤 과거 얘기를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기억이라는 서랍 속에는 나름 굵직한 몇 가지의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중 어떤 서랍을 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파서 조퇴했는데 이런 일로 엄마 부르지 말라고 안방에서 맞았던 일, 숙모가 새 옷을 사주었는데 못 보던 옷이 생겼다고 원조교제라는 단어가 나온 일, 동생 시켜서 나에게 엄마랑 같이 살자고 말해보라 했는데 사이가 안 좋아 힘들겠다 하니 동생 버린 년이라고 말한 일, 싸움이 격해져서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갔더니 망치로 문을 내려 찍은 일,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아빠 명의냐고 해서 그렇다 하니 너네 아빠는 평생 집을 살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없는 일을 꾸며서 거짓말하며 살아가지 말라고 했던 일.
나는 그래도 엄마라고, 엄마랑 깊은 유대감은 형성하지 못하더라도 형식적으로나마 지내게 위해 서랍 속에 이야기들을 꼭꼭 숨겨놨건만. 그렇게라도 이어나가고 있던 관계였는데 어느새 저 이야기에서 가해자는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피해자만 덩그러니 볼품없는 모습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엄마가 분명 미안하다고 나한테 사과도 하는데 오히려 내 속은 더 뒤틀리기만 했다. 사과가 사과처럼 들리지 않는다. 분위기가 마치 우리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과거는 과거임. 우리 인생 파이팅! 이렇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 서랍 속 이야기들의 결말을 짓지 못했는데. 엉겁결에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혼자 키우느라 힘들어서 그랬구나. 그래서 나를 때리고 원조교제를 한다 하고 동생을 버렸다 하고 다 그런 거였구나. 아무도 강요하는 이 없는데 누군가가 그렇게 결말짓고 적당히 마무리하라는 압박을 넣는 것만 같았다.
아니. 과거를 놓을지 말지는 내가 정해. 이쯤 하면 되었다는 말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하는 거야.
#상처에 소금 뿌리기, 피해자 두 번 죽이기.
구두를 벗어던지고 신발장을 열어젖혀 맨 밑줄 왼쪽 구석의 운동화로 바꿔 신었다. 엄마, 이 운동화를 신은 내 모습이 오랜만이지? 나도 계속 구두를 신으려고 했어. 엄마와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다고. 그러기엔 나도 나이가 들었어. 먹고살기 바빠서 운동화가 신발장에 처박혀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엄마는 왜 기어코 내가 구두를 벗어던지게 만드는 거야? 말은 미안하다면서 지금 하는 행동이 2차 가해인 건 알고 있는 거야?
나는 싫어하는 게 많다. 그중 가장 싫어하고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연민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영원한 가해자도 영원한 피해자도 없다고 믿는다. 상처는 말 그대로 주고받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도 엄마한테 분명 가해자였을 때가 있었으리라. 엄마도 신발장을 열어보면 <부모로서의 입장>이라는 흙먼지 투성이인 운동화가 있을 것이다.
엄마와 나의 차이점이라면 엄마는 항상 그 운동화를 신고 나를 대한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용 신발은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어쨌거나 나는 그 운동화를 존중했다. 엄마의 힘듦, 고통, 아픔을 판단하지 않았다. 수용하지도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판단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멀쩡하게 구두를 신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그렇다고 멀쩡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과거의 상처를 가벼이 여기는 듯한 엄마의 태도가 화가 났다. 굳이 눈앞에 엉망진창으로 망가져있는 운동화를 들이대야만 내 아픔을 알아주려나.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이내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고 숨통이 확 트일 수 있었는데 이는 목적지인 할머니집에 도착한 후의 일이다. 차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이대로 밥을 먹다간 무조건 체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사촌동생, 엄마, 이모, 할머니가 한데 모였다. 외가 쪽은 다들 하나같이 목소리가 크다. 외갓집만 가면 굳이 소음을 보탤 필요는 없어 보여서 데시벨을 낮추게 된다. (최근에는 진짜 나이가 들었나; 나도 같이 어우러져서 목청을 높이곤 한다. 그럴 때면 속으로 억척스러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도 여전히 식탁 위 저녁 식사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는데 외갓집 식구들의 흥미로운 만담에 두 귀를 쫑끗였다.
"아니. 우리 옛날에 있잖아~ #$%^"
어랍쇼. 오늘은 과거 특집인가 보다. 엄마와 이모 그리고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맞은편 사촌동생을 바라보니 동생도 나와 같이 밥을 먹는 척하면서 오른쪽 귀의 신경을 한껏 곤두서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밥그릇에 고개를 숙인 채 숨도 같이 죽이며 대화를 엿들었다.
세 분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엄마는 사 남매 중 둘째 딸로 관심을 못 받았다고 한다. 첫째 딸은 첫째라서, 세 번째인 아들은 유일한 아들이라서, 막내딸은 또 막내라서. 둘째 딸인 엄마에게는 강선이라는 이름 외에 특별한 타이틀이 없었다.
분명 가볍게 시작한 옛날이야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감정이 덧입혀지고 있었다. 외갓집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와 흥분이라는 감정이 만난 소음은 곧이어 대문 밖까지 들리는 고성으로 번져나갔다. 또또, 또 시작이다.
또 싸움이 벌여졌다.
"엄마가 나한테 그랬었잖아!"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외할머니에게 울분을 토했다. 외할머니도 이에 지지 않고 뒷목을 잡고 넘어가면서 '내가 너네를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라는 레퍼토리를 악을 쓰며 질러대었다. 순간 엄마가 살짝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래도 사과라도 받았는데 엄마는 받지도 못하네.
그래도 모녀는 모녀라고. 딸이 이런 상처를 받았다는데 거기다 대고 엄마인 자신의 힘듦과 고통으로 맞받아치는 건 똑같구나. 숟가락을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엄마만 손해야."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신에 사촌동생에게 동노나 가자며 전쟁통 속에서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동생과 실컷 놀고 난 후에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냥 그 길로 집으로 달려와 우리 집 신발장을 열어젖혔다. 신발장 안의 신발들은 내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언니로서의 입장, 직원으로서의 입장, 연인으로서의 입장.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여기며 맽 밑줄 왼쪽 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운동화.
낡고 먼지투성이가 된 운동화. 내 어린 시절의 상처가 군데군데 잔뜩 묻어있는 운동화. 십 대 시절에 걸어온 길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 운동화.
"오랜만에 신발이나 한번 빨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