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야 Oct 07. 2023

엄마가 대상포진에 걸렸다

말문 막히는 밤

카톡!


막 잠에 드려던 찰나였다. 고요한 적막 속에 울리는 알람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누운 자리에서 용수철 튕기듯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뭐지? 이 시간에 웬 카톡?


[언니ㅜ 이모 대상포진 걸렸대ㅜ]


사촌 동생의 톡이었다. 대상포진? 많이 들었는데 정확히 뭐였더라. 늦은 시간이지만 바로 전화를 걸어본다. 


뚜르르- 달칵


"어. 엄마 대상 포진 걸렸다며?"


"그래. 진짜 죽다 살아났다."


엄마 말로는 이마에 뭔가 나기 시작하더니 두통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병원 진단 결과 대상포진이었다. 하필이면 추석 연휴를 앞둔 며칠 전에 뜬금없이 대상포진에 걸린 엄마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내일 링거를 맞을 거라 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모녀와 다름없는 평범한 대화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오늘도 역시나 운을 띄운다.


엄마는 본인이 나이가 든 것 같다고 했다. 끄덕 끄떡. 무언의 긍정을 보낸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엄마 아빠를 보며 내 부모도 나이가 드는구나를 느꼈다. 예전에는 체력에 자신 있었는데(엄마는 강체질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단다. 끄덕끄덕.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여전히 본론에 들어서지 못한 채 주위만 기웃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대상포진의 이유가 스트레스 같다고 했다. 올해 엄마는 많은 일을 겪었다.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렀고 부동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체중이 많이 감소했다. 


끄덕끄덕. "맞아. 스트레스가 건강에 최악이지." 이번에는 맞장구도 곁들여 본다. 자, 그리고 대망의 본론. 구구절절 서두를 깔았으니 이제 본론에 들어설 차례다.


"그러니까 너네들이 엄마 신경 좀 덜 쓰게 해 줄 수 없을까?"




엄마랑 대화할 때마다 씩씩대는 나를 보다 못한 사촌 동생이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언니. 그냥 이모 말에 반응을 하지 마. 그래 너는 말해라 나는 흘러버릴테니. 이렇게 마음먹으면 화도 안 날걸?"


맞는 말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약발을 잘 받는다. 부들부들. 열받으면 사시나무 떨듯이 온몸을 떨어댄다. 동생 말대로 상대를 안 하면 그만인 문제를 곱씹고 또 곱씹어 보는, 그러면서 굳이 또 스트레스를 받는 몹쓸 버릇이 있다. 


단, 전제는 가족에 한해서이다. 남들은 관심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린다. 가족 일은 왜 남처럼 대할 수 없는 걸까.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라서 남보다 열을 내고 결국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다. 우리나라 정서 상 암묵적으로 외면하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비극이다. 


"그러니까 너네들이 엄마 신경 좀 덜 쓰게 해 줄 수 없을까?"


응~ 하면 그만일 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리면 될 것을. 같은 말을 해도 가족이 하면 다르게 들린다. 


"아니... 우리가 뭐 일부러 엄마 신경 쓰라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우리가 뭘 했다고... 누가 보면 뭐라도 어? 한 줄 알겠어."


엄마가 대상포진에 걸렸다. 엄마가 늙었다. 나이 든 부모를 상대로 역정을 내고 나면 항시 뒤끝이 좋지 않다. 개운하지 못하고 찝찝하다. 그런데 부모가 늙었다는 이유로 자식이 무조건 부모에게 맞추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게 맞나? 저 깊은 곳에서 의구심이 고개를 불쑥 쳐들어 올렸다. 


엄마가 젊을 때는 말 그대로 젊기 때문에 그 기력에 눌려 살았다. 물론 고분고분한 자식은 아닌지라 틈틈이 대항도 했었다. 하지만 부모와 미성년자의 주도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연히 부모 쪽으로 기우는 법이었다. 성인이 되었다. 내 의견을 더욱 강력히 피력할 수 있었다. 엄마도 아직은 쌩쌩했다. 그렇게 연 끊고 재회하고, 이 패턴을 몇 번 반복했다. 


나는 점점 인생 전성기로 접어들었고 엄마는 점점 황혼을 향해 달려갔다. 삼십 대에 가까워질수록 십 대 시절에 비해 울지 않고 떨지 않으며 내 할 말을 또박또박할 수 있었다. 준비가 되었다. 엄마는 틀렸다고 외칠 준비가 다 되었다.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고 문득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늙어버렸다. 




내가 성장한 세월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좀 더 노련하게, 도저히 반박할 수 없게끔, 무엇이 틀렸는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데. 더 이상 예전처럼 눈물부터 흘리고 보는 내가 아닌데. 이빨 빠진 호랑이의 모습은 전투력을 상실시켰다. 저렇게 늙어버린 부모를 상대해서 뭘 얻겠다고. 


그럼 내 이 마음은 어떡해야 하지. 아직도 엄마 말에 울컥 솟아오르는 이 감정은 어디로 흘러 보내야 하지. 




"아빠 늙었다고 배려한답시고 헛짓거리 하지 말고 아빠 벽에 똥 칠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실컷 애 먹여라."


아빠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네들이 엄마 신경 좀 덜 쓰게 해 줄 수 없을까?"


엄마도 말했다. 




아빠 엄마를 비교하자는 건 아니다. 두 분 다 각자의 장단점이 뚜렷한 분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대목에서만큼은 아빠 말이 맞다고 본다. 내가 자식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언젠가 부모가 된다 하더라도 나는 아빠처럼 처신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빠는 아빠 인생과 내 인생을 분리시켰고 엄마는 여전히 일심동체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인정해야 한다. 자식의 인생이 곧 내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빠라고 우리에게 바라는 점이 없을까. 내 자식이 좀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은 세상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일등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꼴등도 있는 법이다. 엄마는 (본인 기준으로) 자식이 꼴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치 우리가 엄마를 못 살게 구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엄마가 엄마 본인을 못 살게 구는 게 아닐까? 우리한테 덜 신경 쓰게 해 달라 부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든 우리를 엄마 인생에서 분리해야 했다. 그래도 물론 괴롭기야 하겠지. 애가 쓰이겠지. 하지만 그 또한 부모의 몫이 아닐까. 내 마음이 괴로우니 자식아, 제발 내 뜻대로 살아다오. 이건 아니다. 잘못됐다. 


그렇게 본인은 마지막까지 편히 눈 감으면 그만이라지만 남은 우리는? 내가 죽을 때까지 옆에서 내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엄마 생전에 본인만 만족스럽고 편안하면 장땡인가. 그럼 내 인생은 대체 누굴 위한 삶이란 말인가. 엄마를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이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 방법이 엄마를 편히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미안하지만 엄마, 계속 신경 좀 써야겠어. 




미리 말하지만 일부로는 아니다. 그렇게 할 짓이 없진 않다. 하도 오랫동안 다투다 보니 엄마가 약 올라하면 쌤통이다 생각한 적도 몇 번 있긴 하지만 그뿐이다. 일부로 엄마 속을 뒤집으려고 행동한 적은 없다. 


다만 나는 내 결대로 살아간 거고 그 결이 엄마의 결이랑은 달랐을 뿐이다.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그럼 부모가 자식 인생을 신경 쓰는 게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라는 상투적인 답변만 돌아온다. 신경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 달라고, 내 인생을 엄마 입맛에 맞추려고 하지 좀 말라고. 수백 번 말해보아도 인생 선배로서 좀 더 좋은 길을 알려주는 것, 부모 마음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자식, 여기에 외할머니까지 껴 있으면 천하의 패륜아로 그날 하루의 막을 내린다. 


나는 이런 부모가 되고 싶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만으로 패륜아 취급을 하지 않는 부모. 자식이 조언을 구하면 나름의 답변을 내놓겠지만 그전까지는 자식 가는 길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부모. 좀 엎어지고 깨지더라도 바로 달려가기보단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끔 자립심을 키워주는 부모. 


"다 너를 위한 거야!"


같은 말로 포장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위한 부모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엄마가 대상 포진에 걸렸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란다. 이리 늙고 병든 부모에게 여전히 스트레스를 줘서 되겠냐는 무언의 압박이 들어온다. 부탁조로 말하는 건 훼이크다. 자식이 성인이 된 후로는 더 이상 명령조가 먹히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엄마는 아직도 내가 십 대였을 때처럼 내 인생을 주무르고 싶어 한다. 단 한 번도 나라는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봐주지 않는다. 내 자식이 어떤 자식인가를 여전히 모른다. 울컥, 감정이 솟아오르지만 괜찮다. 


글을 쓰며 감정을 흘러 보내는 법을 오늘 또 한 번 터득했다. 엄마 덕분이다. 

이전 06화 신발장을 열어보기로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