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향 Feb 18. 2024

"얘들아    나    뭐할까?"

이제 시작

3주 전 담낭제거 수술을 받았다. 내 몸에서 쓸개가 없어진 것이다. 수술 후 선생님이 내 몸에서 꺼낸 돌을 기념(?!)으로 주셨다. 크기가 작지도 않은 돌이 6개나 된다. 평균 길이가 7~8cm, 굵기가 2~3cm 정도 되는 쓸개 안에 자잘한 돌이 그만큼 있었다 생각하니 큰 통증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다. 


쓸개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한다면, 가장 큰 역할은 간에서 분비된 쓸개즙(담즙)을 저장하고 지방을 분해하는 것이라 한다. 소화 작용에서 위산을 중화시키고 다양한 소화 효소의 작용을 촉진시키는 역할도 한다. 쓸개즙은 간에서 십이지장으로 바로 분비되기도 하지만 쓸개에 농축되어 저장되었다가 사용된다. 쓸개에서 6-10배로 농축된 쓸개즙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분비되고, 저장된 게 모두 분비되면 간에서 직접 쓸개즙이 십이지장으로 분비된다. 상당히 작은 크기라 외과적 처치가 필요할 경우 그냥 떼어내는 경우가 많고 인제 내장 기관 중에서는 없어도 가장 괜찮은 곳이라 설명한다. 소화에 필요한 쓸개즙은 간에서 생성되어 분비되고 쓸개는 쓸개즙을 담아두는 역할만 하는 기관이기에 쓸개가 없어도 간이 멀쩡하면 일단 쓸개즙은 잘 나온다. (참고자료: https://namu.wiki/w/%EC%93%B8%EA%B0%9C)


수술 전 선생님께서 간단하게 설명을 하셨다.


"쓸개를 떼어내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 없어요. 쓸개가 하던 역할을 간이 알아서 할 거예요. 적응기간은 필요하니 얼마간은 소화가 안되거나 설사를 할 수도 있어요." 


설명을 듣고 나오는데 불현듯,  '없어도 괜찮은 기관이라면 애초에 있었던 걸까? 쓸개의 진짜 역할은 돌을 담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신이 사람을 만들 쓸개에 사명은 간을 돕는 역할도 있었지만, 그보다 큰 것이 담석을 담아두는 것이 진짜 역할이었던 것이다. 나의 쓸개는 잠재되어 있는 그 능력이 발휘가 되었고 본인의 사명을 다하고 전사를 한 것이다.  


눈썹, 입에 있는 주름, 귀의 생김새, 발톱 등 신체의 모든 부분은 각자의 존재 이유가 있다. 각질마저도 피부의 보호와 유지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모든 기관은 잘하는 것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있다. 어느 것 하나 대충 만들어진 것이 없고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것은 없다. 사람 몸에 있는 기관들이 그러한데 그 기관들의 집합 완성체인 '사람'은 어떠할까?


얼마 전 E언니가 큰 고민에 빠졌다며 단톡방에서 질문을 던졌다. 


"얘들아     나      뭐할까?" 


살면서 끝도 없이 던져지는 질문이다. '너는 나중에 커서 뭐 할래? 뭐 하고 싶니?' 어렸을 때 어른들을 통해 끝도 없이 던져진 질문을 어른이 된 우리는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나 이제 뭐 할까? 나는 뭐 하고 싶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거기에 답을 찾지 못하면 내가 마치 없어도 되는, 없어도 괜찮은 존재로 여겨진다거나 작디작은 쭈구리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엄마의 품을 떠나 자신의 세상으로 가고, 엄마에겐 그렇게 원하던 '나의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제야 '나'를 발견하게 되면서 20대 못지않은 최대의 고민을 40대에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학부에서 한문교육을 공부했던 E언니는 느닷없이 한문 공부를 다시 하고 있고, 전직 간호사였던 K언니는 백만 년 만에 병원에 이력서 냈다며 실토(?!)를 했다. 


"집 근처 병원에 공고가 떴길래 일단 원서는 냈는데 무서워"

"뭘 해야겠는데 뭘 어찌해야 할지... 취미로 그치는 삶을 멈추고 뭐든 해보고 싶어."

"돈을 벌어야 또 뭔가 뿌듯할 거 같고, "

"내가 일해서 돈 벌고 성취감도 느끼고 사회에 기여하면서 살고 싶어."

"나는 양가부모님 용돈 드리고 싶음 추가"

"조금 힘들고 바쁘게 살아도 의미 있게 살고 싶고"

"근데 아직 걱정이 많이 앞선다."

"애들 컸는데 벌이를 안 하니 난 좀 스스로 쫌 찔리는? 이런 느낌? 양심의 가책? 이런 느낌도 있어."


언니들이 해온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도 너무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그 세월만 해도 언니들에게 쌍엄지 백개를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야 자신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삶과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는 언니들에게 쌍엄지 백개를 더 얹어주고 싶다. 이제 진짜가 시작된다(내가 설레는 중).


신은 우리에게 머든 하나는 아니 그 이상 분명 주셨다고 믿는다. 단지 그것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발견되지 못하거나 발휘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10년 동안 사무직에 있으면서 그게 천직이라고 믿었던 내가 우연한 기회에 나의 잠재력이 발견되어 책을 만들고 글을 쓰고 디자인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건 장소와, 결국에는 사람들일 거예요."

"그 애한테 생기를 주는 장소가 있을 거라고요?"

"네!!" 

(마이코의 행복한 밥상 중)


각자에게 생기를 주는 곳, 그곳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려하지 않은 배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