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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Oct 18. 2023

그냥 툴툴 털어버려

아빠의 꿈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막내~"

"어 누나~ 별일 없지?"

"응~ 별일 없어. 아빠도 잘 계시고."

"어 다행이네. 근데 내가 별 일이 있어서 전화했어" 


목소리를 들으니 좋은 별 일은 아닌 거 같고 어딘가 다쳤거나 아픈 듯했다. 


"왜 무슨 일?"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좀 다쳤어." 


타고 다니던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는지 혼자서 길바닥에 넘어졌다고 했다. 어찌나 세게 넘어졌는지 왼쪽 팔꿈치 세 군데에 골절이 생겼고, 광대뼈를 조금 다쳤다고 했다.(아! 수술을 했으니 조금 다친 건 아니구나.) 동생이 전화를 했을 땐 이미 팔꿈치는 수술을 마친 상태였다. 광대뼈 상태까지 확실히 들은 후에 가족들에게 알려야겠다 싶어 다치고 5일은 지난 후에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팔꿈치 수술을 하고 열흘 뒤쯤 광대뼈 수술까지 마쳤다. 얼굴에 상처가 나면 어쩌나 싶었는데 발전하는 의술 덕에 입안으로 어찌어찌 수술을 했다고 했다. 자동차랑 박지 않았고, 왼쪽 팔이고, 얼굴에 상처가 나지 않아서 그 와중에 다행이었다. 




걱정이 많은 아버지를 둔 덕에(?!) 가족들의 안 좋은 소식은 아버지가 제일 늦게 듣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동생은 누나들에게 먼저 소식을 알린 후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이렇고 저랬노라고 얘기를 했다. 아들이 수술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그날 밤 잠자리를 설쳤다. 꿈속에선 아빠가 가장 귀여워하는 막내 손자가 다치는 꿈을 꿔 울면서 잠에서 깼다고 했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유독 많은 한 주를 보냈던 아빠는 아들의 수술 소식과 좋지 않은 꿈으로 인해 마음이 더 심란해진 듯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에 정신이 사나워졌고 그 주간 토요일 하루는 휴대폰 전원을 꺼버리고 혼자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낮잠이 들었고 꿈을 꿨다고 했다. 


"여보 머가 그렇게 힘든데.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툴툴 털어 버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아빠 꿈에 나타나 건넨 말이었다. 엄마가 하늘에서 아빠를 보다 안 되겠다 싶어서 꿈에 나온 듯했다. 엄마는 특유의 '그게 머? 그게 왜?'라는 표정으로 아빠에게 한마디를 던지고 갔다고 했다. 




무던하다 못해 무디기까지 했던 엄마는 가족들에게 늘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파르르 하는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무덤덤하게 상황들을 마주했던 것 같다. 병원에서 처음 병명을 들었을 때도 엄마는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외할머니도 혈액암으로 돌아가셨기에 엄마의 병이 그리 놀랍지가 않았던 것이다. 자가골수이식을 위해 머리카락을 다 깎고서 무균실에 들어갈 때도, 인공관절 수술을 할 때도, 폐렴으로 입원을 했을 때도 엄마는 모든 순간에서 늘 덤덤함을 보여주었다. 


그런 엄마가 지금의 나를 보면, 내 꿈에 나온다면 무슨 말을 할까? 내 하루와 내 마음 상태를 보면서 엄마는 나에게 머라고 얘기를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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