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끈을 놓지 마세요.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다시 긴장의 연속이었다. 깜깜한 밤 간간히 불빛 사이로 보이는 낯선 풍경,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주고받던 대화. 어두운 밤 숙소로 향하던 그 순간, '진짜 내가 외국에 나왔구나, 이제 새로운 생활 시작이구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약 20분을 달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지만 그곳을 둘러볼 여유 따윈 없었다. 첫 해외라는 긴장감, 앞으로 두 달을 이곳에서 잘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새로운 환경 앞에 놓인 상황, 새벽 2시가 지난 늦은 밤. 그저 짐을 챙겨 숙소로 들어가는 게 나의 최선이었다.
내가 배정받은 숙소는 3인 1실. 늦은 시간 탓에 룸메이트와 인사는커녕 불조차 켤 수 없었다. 그저 커튼 뒤 희미한 빛에 의지해 필요한 짐을 꺼내고, 살금살금 이동해 씻고. 너무 피곤했던 탓에 빈 침대에 몸을 뉘을 때만 해도 바로 잠들겠다 했는데 옆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숨소리가 들려오자 오히려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 해외에 머무는 동안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면 좋겠다 했더니 해외생활 첫날밤부터 그 바람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싶었다.
스펙터클 했던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니 그저 웃겼다. 해외 나간다는 사실에 설레다, 혼자 남으니 갑자기 긴장했다가, 종이 2장에 겁먹고, 도둑이사를 하듯 숙소에 들어온 상황까지. 그 어느 하나 내 예상에 없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앞으로도 예상 밖의 일이 많이 생길 텐데, 내가 그런 상황에서도 잘 살아낼 수 있나? 하고. 그 밤 그 불안을 잠재우려는 듯, '난 잘 살아낼 거야' 다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잠에 빠져들었다.
묘한 밤을 보낸 뒤 마주한 아침,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 그 하나로 난 내가 세부에 있단 걸 실감했다. 색색깔의 건물, 중간에 위치한 수영장 그리고 제주에서나 볼 듯한 나무. 방 한편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캐리어를 놓으면 여유조차 없는 공간이 유일한 내 공간이었지만 이곳 생활이 기대됐다. 앞으로 생활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처럼 설렘으로 가득할 것 같아서.
그렇게 이제 좋은 일만 펼쳐질 것 같았지만 정작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긴장의 끈을 놓지 마세요'라는 메시지였다.
아침 먹고, 예고도 없이 시작된 레벨 테스트. 긴장된 분위기 속 어색하게 서로 멋쩍은 인사만 건네고. 현지인 카페 가서 외국 분위기도 느끼고, 음료 맛있게 먹어서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나 했는데 갑작스러운 비에 쫄딱 맞으며 숙소에 돌아오고.
내가 한국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온 곳과 다른 공간에 있다는 걸 깨닫게 했던 세부에서의 첫날. 세부 생활을 즐기면서도 긴장의 끈은 놓으면 안 되겠다 마음먹었던 날. 두 달 동안의 세부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