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면 예쁜 곳밖에 없다니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 '풀꽃'의 한 구절처럼 시간을 들여 애정을 가져야만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겐 세부가 그랬다. 그곳에 머무를수록 다른 게 보였으니까.
세부가 처음 해외로 방문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세부로 가는 게 결정되고, 정보를 찾아볼 때마다 조심해야 한다는 영상과 글이 나오고. 물을 무서워하고,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세부에서 즐길 거리조차 없어 보였고. 날씨와 음식 여러 가지로 걱정거리만 가득했으니까.
도착하고도 그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국적인 풍경, 해외에 나와있다는 자체에 설레다가도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비가 왔다, 해가 떴다, 다시 비가 쏟아지는 광경을 볼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설렘이 사라졌다. 비가 많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정전이 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이 끊겨서 전화나 연락이 어렵고. 잠시 나가기라도 하면 신호등이 없어 무법천지 같은 도로를 힘겹게 건너야 하고.
그 탓에 처음엔 빨리 2달이 지나길 바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레 그 마음이 바뀌었다. 이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하려는 노력과 함께. 내가 세부에 녹아들수록 '그냥 이런 게 세부구나'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자 자연스레 보이는 것 또한 달라졌다. 마치 세부가 안 좋은 곳이 아니라 내가 그런 것만 보고 있었다는 듯이.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맑은 날이 더 많다는 것. 그 덕분에 자주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저녁 먹다가 창문으로 마주하는 노을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 별이 잘 보여서 매일 밤하늘을 보는 재미를 알게 됐다는 것. 자주 끊기던 인터넷 탓에 폰 없이도 잘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는 것. 소중한 인연이 누군지 알게 됐다는 것. 연락할 때마다 그들에게 좀 더 진심으로 대하게 됐다는 것. 잘 웃고 밝은 현지인을 볼 때마다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는 것. 날씨에 맞춰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현지인들을 보며 나도 환경에 맞춰 변화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
그렇게 새로운 세부를 경험할수록 내게 세부는 '기분 좋게 머무를만한 곳'이었다. 세부를 떠날 때쯤,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 생각할 만큼.
가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 가져다주는 행운이 있는데, 세부에서 지내는 2달이 그랬다. 내게 일정을 조율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으면 나는 백 프로 세부를 떠났을 테니까. 그랬다면 세부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을 테니까.
이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해외에 있는 동안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지 않았을까. 내가 환경에 맞춰 바꿔보려는 노력 대신 계속해서 환경이 내게 맞춰지길 바랐을 테니까. 달라진 환경과 상관없이 여전히 한국에서 살던 방식을 고수해 그게 어디든 겉모습만 볼 수 있었을 테니까. 그곳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해야만 더 큰 게 보인다는 걸 몰랐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