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만 알면 ‘다시’는 어렵지 않다.
'해외생활' 이야기에는 항상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전 해외에 나가서, 저를 더 잘 알게 됐어요."
해외를 꿈꾸는 시간 동안 이 말을 수도 없이 접했다. 처음 이 말을 접할 때에는 더 해외에 나가고 싶다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됐다. '당연한 거 아냐?' 하는 마음에, 어딘가 뻔한 느낌까지 들었으니까. 어느 순간 이 문장에 질려 아무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반복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지금 살아가는 방식이 내가 원하는 게 맞나?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지금껏 내가 스스로 정했다 한 일이 그냥 시간과 환경에 이끌려 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휩싸였을 때, 이 말이 먼저 떠올랐으니까.
‘나도 해외에 나가면 날 더 알게 되지 않을까?’ 반은 바람이었고, 반은 지푸라기를 잡는 마음이었다. 이 말을 믿고 싶다는 마음, ‘나 혼자 힘으로 이겨내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환경을 바꿔 새롭고 더 많은 걸 경험하고 싶은데?’ 그 모든 게 맞물려 해외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졌다. 그렇게 난 다시 해외살이를 꿈꿨다. 아니, 꿈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다.
그렇게 나온 해외,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됐을까?
"이제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100% 알아요. "
당연히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확실히 해외 생활을 통해 전보다 나를 더 이해하게 됐다 말할 수는 있다.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사실, 혼자 힘으로 살아내기 위해 나에게 더 집중하게 되는 환경,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것, 예상 밖의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등등. 하나만 해도 나를 알기에 충분헌데, 모든 요소가 합쳐지니 자연스레 나를 알 수밖에 없었달까.
세부에서 보내는 2달. 난 생각보다 먹는 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다른 사람에게 부족한 건 보이지 않으려 한다는 걸, 그 누구보다 예민하다가도 내 관심 밖은 신경 안 쓴다는 걸, 대화를 이끌어가거나 사람 모으는 걸 좋아한다는 걸, 짜인 계획을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걸, 내 생각보다 훨씬 말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러니한데, 해외 생활로 나에 대해 많이 알게 됐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어렵다. 이제는 나를 좀 안다고 말해도 되겠지? 싶으면 어김없이 새로운 내가 튀어나온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또 어떤 날은 일상을 보내다 또 다른 ‘나’를 마주한다. 때로는 지금껏 나를 잘못 알고 있었단 듯이, 혹은 지금껏 이런 건 몰랐지? 놀라게 하듯이.
그나마 다행인 건 해외 생활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법'을 배웠다는 것.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면 된다는 걸,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든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진짜 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단 걸 알게 됐으니까.
이렇게 살아간다면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상황은 견딜 수 있고, 어떤 걸 힘들어하는지 분명히 말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나씩 채워가다 보면 결국 온전히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날도 올 테니, 반드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전 해외에 나가서, 저를 알아가는 법을 알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