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원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고.
세부에서 친구들과 연락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어학원은 지낼 만 해? 안 답답해?"
매일 6시간 수업을 듣는 빡빡한 스케줄부터 통금 시간까지. 절제와 통제가 가득한 생활, 겉만 보면 그렇게 물을만했다. 그렇지만 난 이 삶이 한국보다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 평일엔 일에 파묻혀 살다, 주말에 잠시 여유를 즐기던 삶에서 벗어나서 수업만 들으면 다른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일의 특성상) 남에게 맞출 수밖에 없던 환경에서 이젠 나만 신경 쓰면 된다는 게. 물론 세부에 큰 기대와 욕심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어학원 생활 자체에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다시 중, 고등학교로 돌아간 느낌이라 좋았달까. 정해진 스케줄 대로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환경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까지 모든 게 그때로 돌아갔다.
맛있는 게 나오는 날이면 급식실로 달려가던 그때처럼 여기서도 맛있는 게 나오는 날 열심히 식당에 달려가고. 그날 메뉴가 별로면 매점을 가던 것처럼 여기서도 맛이 없는 날엔 밖에 있는 한식당에 가고. 수업 후 모여서 가거나 늦게 마치는 친구 자리까지 잡아놓는다던가. 일행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같이 접시를 정리하고 뜨는 거까지.
같은 반이라 친해졌던 그때처럼 같은 수업을 들은 걸 계기로 서로 친해져 같이 놀러 가고,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아 같이 놀고, 휴식 공간에서 놀다가 소등 시간이라 쫓겨나고, 각자 가진 간식을 모아 간식 파티를 열고, 조금씩 모아 생일 케이크를 사고 노래를 불러주고. 휴식 공간에 모여 떠들다가 시끄럽다 혼나고, 어학원 수영장에서 놀고, 댄스 수업에서 서로 보며 놀리기 바쁘고, 아프면 서로 걱정하며 챙겨주고.
내가 애써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소확행'을 느끼고, 아주 작은 것에도 깔깔 웃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추억을 쌓는 거까지.
모든 게 그 시절 같았다.
어쩌면 습한 날씨와 바쁜 스케줄에도 세부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던 건 다시 그 시절을 느껴서가 아니었을까. 중, 고등학교로 돌아간 그 느낌 덕분에 일상 속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까. 소박함에 담긴 행복은 그 무엇보다 깊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