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 한가한 시간은 책도 옆에 없는 시간이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요즘 청년들이 말하는 멍 때리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도 간혹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책을 읽다가 글자가 지렁이처럼 고물거리고 가물거려 책에 눈을 땐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나 앉았는데, 옆에 노트복이 열려 있다. 그래서 이렇게 백지를 연다.
나는 글을 쓰는 시간은 한가한 시간에 넣는다. 그것은 하다가 그만두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면 다음에 다시 쓸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면 되니까 내 생각대로 간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타인과 대화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 대화도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대화가 어떨 때는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은 하늘을 봤다가 거리를 봤다가 눈을 감았다가 하는 오후를 보내고 있다. 보내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다. 보낸다는 것은 내 의지가 들어가는 것인데, 거의 의지가 없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물이 흘러가듯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시간 속에 자신을 두는 것도 어찌 보면 괜찮다. 자연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억지로 자연을 내 몸애 새기고자 하면 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 동양화 속에 들어가 있는 뱃사공처럼 자연 속에 물상의 하나로 인간이 있는 것도 괜찮겠다. 그 인간이 나라도 좋겠다.
오늘 오후는 그렇게 흐르고 있다. 햇살도 흐르고 바람도 흐르고 시간도 흐른다. 그 흐름 속에 내 모습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다.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동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