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겪으며 일어난 개인적인 변화

by 육아와 생각

코로나를 겪으면서 나에게 일어난 개인적인 변화들이 있을까? 마음속으로 할 얘기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글쓰기 목록에 올려놓고서 바로 적어내지 못했다. 변화가 있다면 글쓰기를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개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고 확실하게 느끼면서도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개인적인 변화라고 얘기하고 적어 내려가야 할지.. 솔직하게 적는 것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가능할 것 같은데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을 저울에 올려 바늘이 가리키는 눈금만큼만 얘기할 수 있을까? 내가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여도 마음은 너무나 복잡스럽고 변화무쌍하여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삶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명랑함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고 목표이지만 나는 이미 그것이 불가능한 목표 설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이 이렇구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만할 때 이미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고 안정된 글로 적어 완성할 만큼 추론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글감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농구공을 가지고 규칙적으로 튕겨내는 바운싱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은 감각을 익혀 공의 움직임과 팔의 힘 조절은 완성이 되어 안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농구공 같은 성질이 아니었고 마치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말랑말랑한 얌체공 같아서 어디로 튈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한 개인적인 삶의 변화라고 하면 아마도 환경적 위험요소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변화와 삶의 태도 변화일 텐데 무엇이라고 얘기하고 담담하게 정리해 내려가야 할까?



코로나가 다가오기 전

나는 내 마음이 버겁고 무거웠다. 그리고 어려웠다. 흐린 날이 너무 많아서 무거웠고 객관적이지 않고 설명 불가능해서 어려웠다. 감정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물 흐르듯이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변화무쌍하여 난감했다. 마음을 굳이 들여다 보고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런 노력들이 어쩌면 더 나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지 모르잖아. 뭔가 너무나 버겁고 힘든 문제를 만났을 때 나는 그것을 일단은 내려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뭐든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감당하려고 노력할 때 마음이나 몸이 고장이 나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마음은 미리 사용설명서를 읽을 수도 없었고 고장이나 다운되었을 때 명쾌한 행동요령도 잘 모르겠지만 햇빛과 운동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현재 사는 집에는 오전에 해가 잘 들지 않아 해가 드는 12시 즈음이 되면 어느샌가 기분이 좋아져 나는 웃고 있었고 가만히 앉아서 뭔 마음 파악이 안 된다며 헛되이 시간들을 날려버리기 전에 일단 엉덩이를 들어 청소를 하거나 밖을 나서면 이리저리 도망쳐 대던 마음이 돌아왔다.

코로나가 다가온 후

코로나는 나에게 꿈 뭉치를 냅다 집어던졌다. 20년도 즈음하여 나는 종종 코로나에 걸리는 꿈을 명확한 스토리와 함께 꾸게 되었다. 꿈속의 스토리가 너무나도 강렬하여서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밤새 꿈을 꾸느라고 뇌가 100퍼센트 꽉 차게 일을 한 여파로 마음을 꽉 잡고 있었다. 꿈속의 생소하고 생경한 등장인물들과 스토리의 전개를 쉽게 지울 수도 없었다. 오전 시간에 특히 괴롭고도 괴로운 일이었다. 꿈을 꾸고 안 꾸고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무거운 마음의 부담이었고 예전처럼 간단하게 꿈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괴롭게 꿈을 붙잡고 있었다. 꿈의 강렬한 스토리와 내용으로 인해 나는 에너지를 들이고 마음의 감정소비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자고 일어나면 정말이지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괴로웠다. 원치 않는 꿈을 자꾸 꿔대는 내 뇌를 누가 제발 좀 말려줬으면 좋겠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신경 정신과에 가 보아야 할까? 신경정신과를 방문하여 요즘 원치 않는 느낌의 꿈을 너무 많이 꾼다며 개인적으로 너무 괴로워서 고민을 정말 많이 하다 이렇게 신경정신과의 도움을 받고자 방문하였다고 나는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나의 꿈 문제를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한가하게 들어줄 사람도 당연히 없었다. 도움을 요청할 곳은 없었다. 유명한 연예인이 꿈에 주요 등장인물로 활약하는 것은 어쨌거나 받아들이겠는데 십몇 년 전인지도 모르는 가물가물한 기억에 tv에서만 잠깐 보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좋아해 본 적도 없는 연예인이 당장 오늘 밤 꿈에 찾아오는 현실은 조금 많이 버거웠다. 뜩이나 무거운 마음의 소유자인데 꿈 때문에 마음이 더 무거워지려고 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정신 사나운 꿈들을 왜 뇌는 주책스럽게 열심히 꾸어대는지 전혀 검증할 순 없지만 이유를 찾고 싶었다.


코로나는 일단 사람을 만날 기회와 빈도를 모두 줄여 버렸다. 내가 괜찮다고 해도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 만날 수도 없었고 상대방이 이제는 좀 만날 기회를 갖고 싶어 하면 내가 아이를 떠올리며 나는 괜찮다 치더라도 어린이집에 다니면 다른 사람에게 혹시나 피해가 되니까 미루게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지키냐 안 지키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는 위험도를 따지는 정도와 행동요령이 너무나도 달랐다. 나는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의 방역 원칙을 미리 알 수도 없었고 그것에 대한 합의를 맞춰 만남의 성사는 더더욱 불가능에 더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가족과 함께 집에 있거나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범위 안에서 최소한의 이동 및 답답할 때 한 번씩 여행을 하는 것이 우리 집의 위드 코로나 시대 생활방식이었다. 모두가 함께 거대한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해서 사람 간 분리와 단절의 필요성은 어쩔 수 없는 선택 같았다.


여기서 나는 내 꿈들에 대한 나름의 갖다 붙이기 식 설명을 적용하고 싶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자극을 받고 싶은 대뇌가 원하는 대로 사람 자극을 받지 못하자 꿈에서라도 여러 인물들을 만들어내 자극을 받고 싶은 걸까? 결국은 알 수 없는 추측이다.


공감능력이 더 깊어진 걸까?


나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공감능력이 조금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실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황과 여건이라면 뇌는 tv, 유튜브 등에 나오는 사람들에 더 집중하며 소개되는 사람들 얘기와 목소리에 더 귀가 솔깃해지는 변화를 겪었다. 노숙인의 삶을 따라 생생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채널도 나는 짠하게 마음까지 감정이입이 되어 시청하였다. 나와 실질적으로 단 1도 직접적 관계가 없는 거의 대부분의 미디어 속 모든 인물들과 나는 마음속 친구의 수준으로 공감을 하기 시작하였다. 정말 나도 나 자신이 놀라웠다. 그들이 고민을 얘기하면 마음을 써서 듣기 시작했고 그들이 장기를 보여주거나 춤을 추면 너무나 예쁘고 자랑스러웠다. 그들이 울면 곧바로 마음이 찌릿찌릿하면서 눈물이 났다. 내 눈앞에 자녀가 말 안 듣다 지 분에 못 이겨 서럽게 대성통곡하는 상황보다도 훨씬 더 마음을 깎아가며 빠져들어갔다. 왜일까? 정말 코로나가 내 삶에 가져다준 변화일까??


나는 글쓰기, 글 읽기를 시작했다.

뇌는 코로나로 인한 인간관계 자극의 불충분을 미디어에서 input을 좀 채웠으니 내 이야기를 풀 output이 필요하지 않았나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20년 넘게 거의 글쓰기를 하지 않았었다. 일기도 그 무엇도 기본 생활하는 데에는 글쓰기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고도로 생각을 정리하여 완성해 내는 글쓰기보다는 즉각 즉각 반응이 오는 인스턴트 메시지나 sns면 의사소통이 거의 충분한 것 같았다. 그러나 sns를 통한 의사소통은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고 그래서 좀 더 자세하게 적어서 마음을 표현하려고 하면 그 표현과 사용도구가 잘 못 되었는지 더 큰 오해를 불러오고 소통장애를 유발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소통과 대화의 도구로 sns와 인스턴트 메시지를 활용할 수 없게 되자 나는 목마른 사람 우물 파듯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만나지 못하니까 sns로 말하고 전달하고 그것도 잘 못 하게 되니까 글쓰기를 시도하게 되었다. 타당한 추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변화들이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찾아왔을까 생각해보면 찾아오지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브런치를 시작했다.


코로나가 2년을 넘기자 자연스럽게 가족 구성원 이외의 인간관계 소통이 거의 영에 가까워지는 현상을 경험하였다.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둘 다에서 불리함을 갖춘 관계는 그나마 갖고 있던 친밀감 이하로 곤두박질쳤고 어떠한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평생 동안 이어질 거라 생각하는 소중한 인연이나 거주를 달리하는 가족 또한 원래 가지고 있던 유대감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말도 있듯이 코로나는 사람들의 가치관, 방식, 생활, 계획, 교육, 산업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고 한다. 나의 삶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그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tv와 미디어에 나오는 일부의 표본에 가까운 사람들 말고 진짜 현실의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브런치를 하기 시작했다. 글은 그 어떤 표현방식보다 사람 마음의 깊은 곳까지 단번에 닿을 수 있는 바닷속과 같은 것이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대략적인 소개말고는 아는 바가 없지만 그 사람의 글에 풍덩하고 빠지면 다이버가 수중세계를 체험하듯 글쓴이의 마음과 정서가 단 번에 보였다. 글은 풀어놓은 마음의 실타래였고 톡 깨어놓은 계란의 노른자와 흰자의 선명한 자태였다.

글들은 아름답고 예뻤다.

독서란 것을 세상 한 번 안 하다가 한 것 같은 느낌의 나였고 그 아기의 눈에 들어온 이제 막 초점이 맞춰지고 살아 움직이는 세상 같은 글들이었다. 살아 움직이고 꿈틀댄다는 것은 즉 생명을 의미하였다. 나는 코로나의 소용돌이 속에서 브런치를 통해 꿈틀대는 생명력을 찾았고 나를 알아가고 마음을 토닥이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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