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4일 월요일 살살 쌀쌀한 아침
아직은 공기가 차지만 봄은 약속이나 한 듯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천은 해빙이 되어 그 위를 달리는 차들의 엔진 소리와 경쟁을 하듯 물 흐르는 소리가 씩씩하고 우렁찼다. 언제나 엄마 아빠의 찰떡같은 아이는 어린이집의 새 학기를 맞았고 씩씩하게 등원 버스를 탔다.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세가 정점으로 가는 한중간이기 때문인지 이번 주부터는 자가검사를 실시하고 등원하였다. 주말에 우리 가족은 양파를 많이 넣은 짜장라면을 먹고 손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감자떡을 맛보러 갔다. 어머님은 정성껏 담그신 빨간 깍두기도 주셨다. 그리고 용인시 외곽 오포라는 곳에 위치한 등잔박물관에 방문했다.
수원 화성의 망루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그곳은 1,2,3층이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나도 둥근 항아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신기했고 아이는 그 안에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 같았다. 그리고 조금은 그게 어색했는지 '나 여기 나갈래~'하고 소곤거린다.
주말을 지나온 내 마음이는 안녕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아이를 보내고 아파트 주변을 휘휘 돌기도 하고 조금 더 걸음을 떼어 하천 산책길을 걸어보고 산에도 들러 아직 비에 젖어 까만 나무들을 보았다. 산은 옷을 갈아입듯이 매일매일 모습이 새롭다고 한다. 비를 머금은 흙은 보드랍게 밟히고 나무는 물을 흡수해 까맣게 물들었다.
마음은 A4종잇장을 닮았다.
가끔가다가 수험표를 인쇄하여 가방에 넣는다던가 발급받은 서류 딱 한 장을 가방에 넣고 이동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반으로 접기는 싫고 운이 좋아 큰 책이 있다면 거기에 끼워 넣거나 파일 같은 얇은 홀더도 있으면 종이를 구기지 않고 보관 및 이동이 가능하다. 나는 문득 마음이 A4종잇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새하얀 종이처럼 자유롭게 무언가를 그려 넣을 수도 있고 살다 보면 이런저런 빛깔의 정서로 물들일 수도 있었다. 어떤 날은 얇디얇은 종이가 구깃구깃 구겨져 뭉치가 되어버릴 때도 있었다. 마음의 종이를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 두어선 안돼. 종이는 하얗고 얇아서 구겨지고 그려지고 물들어 버리기가 쉬워. 처음부터 소중하게 다뤄져야 하는 존재였는데 나는 너의 사용설명서를 지금까지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일요일의 남자와 막내 이모 그리고 할아버지
송해 그분은 너무나도 유명하여 그 연륜과 명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가 어느 지역 녹화장의 분위기를 가득 모아 "전국"을 외치면 청중은 모두 함께 "노래자랑"을 외치며 들려오는 경쾌한 딩동댕 소리는 일요일의 상징과 같은 소리였다. 거기에 10여 년 전에 출연했던 막내 이모는 언니들 9명을 모두 소개하는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였다. 10명이나 되는 많은 딸들을 이런저런 노동일을 하시며 생계까지 책임져 가며 건강하게 기르신 분이 할머니셨고 알코올에 의존하고 화가 많으셨던 할아버지는 그 화 때문에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셨다. 할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았을 때는 화가 나 계셨고 술을 드시고 나면 늘 난폭하게 변하셔서 할머니를 비난하는 말을 늘 반복하셨기 때문에 화난 목소리와 늘 똑같기만 한 비난의 말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할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은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기력의 저하와 함께 힘을 잃어갔고 할머니는 어린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폭력을 그럭저럭 막고 견디며 격리가 아닌 그래도 한집살이를 이어 나가셨다. 그리고 나는 돌아가시고 20년도 더 지난 지금 화나고 구겨져 있던 할아버지 마음의 종이를 헤아려 보고 있다. 할아버지는 마음이 많이 아프셨던 거구나. 시골에서 올라와 넉넉하고 여유롭지 않았던 형편과 팍팍한 생활은 가족 모두가 견뎌야 했던 운명이었고 할아버지의 윤택한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은 아마도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나는 추측한다. 그리고 좀처럼 이해받지 못했던 그리고 이해받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그 노년의 남자의 못 다 편 종이의 굴곡을 다시 펼쳐 쓰다듬어 본다.
할아버지의 하얀 종이는 왜 그렇게 구겨졌을까?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가족의 따뜻한 정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강하고 예스러운 경상도 말들로 반은 알아들을 것 같은 그리고 반은 아리송한 표현들로 주절주절 말씀해 주셨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농촌에서 소중하고 보배로운 자녀가 아닌 노동력의 의미로 밀려나 가족에게 늘 푸대접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 당시 할아버지가 겪었던 경험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해 보면 있는 그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아이의 가치를 부정당하는 일들이 많으셨을까 헤아려 봅니다. 이 땅의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주변 어른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그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아이다운 성장을 부정받고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해 고통당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누구나 마음의 하얀 도화지는 구겨지고 상처받기가 쉽습니다. 할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아이들의 도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육아 프로그램들과 육아서들 전문가들의 말씀들을 하나하나 기억하진 못하지만 떠올려 봅니다.
아이들은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어른은 아이들의 하얀 도화지를 구겨지고 상처 나지 않게 지켜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도화지는 100년의 세월 동안 썼다 지웠다 하며 간직될 소중한 보물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표현과 같은 표현입니다.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
21년도에 뒤늦게 국립 산청호국원에 모셔진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이셨고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다치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로 등록하는 것을 스스로 원치 않으셨고 젊은 나이에 전쟁에서 목숨 걸고 싸워야 했던 희생에 대한 적은 명예조차 제대로 누리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께 전해 들은 얘기들은 안타까움에 대한 것들밖에 없었고 할아버지 따라 삶을 사신 할머니의 삶 또한 할아버지 못지않은 짠한 인생이었다. 전쟁에서 다리까지 다치신 할아버지는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실 수 없었고 술에 의존하셨다. 알코올 중독은 금방 찾아왔고 남겨진 10명의 자녀양육과 고된 노동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어린 나의 눈에는 늘 화가 나 있으셔서 술로 세월을 달래시는 분이셨고 거칠고 모난 언행이 가족들과의 경계를 확실하게 그어버리고 말았다. 그때에도 할아버지는 겉으론 난폭한 공룡 인척 하는 마음이 쓰리고 아픈 어린아이였다. 정말 마음이 아픈 사람은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가슴속에 묻어 놓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들이 젊은 날의 청춘을 멍들게 하고 발목에 무거운 족쇄처럼 늘 따라다니지 않았을까 헤아려 본다. 전쟁에 대한 한탄도 상흔도 PTSD라는 증상도 지나가는 말로도 그 어떤 표현도 없으셨던 할아버지! 술로만 홀로 견디셨던 세월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우셨을까? 그나마 가족들에게 보여주셨던 난폭한 언행이 전쟁이 끝났어도 홀로 전쟁을 이어오셨던 할아버지의 초라하고 어설프기만 한 표현력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따라 힘든 생애를 사신 데칼코마니 같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등지신 후 통곡을 많이도 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 통곡의 의미를 아이를 보는 어미가 된 지금에야 다시 또 기억 주머니에서 꺼내 헤아려본다.
삐죽삐죽 솟은 빌딩이 있으면 솟은 빌딩만큼 모양이 깎여진 하늘이 있다. 나의 할머니의 삶도 그러했다.
오래도 묵어 잊힐 법도 한 예전 할아버지의 구겨진 종잇장 같은 마음은 왜 이렇게 펼쳐지지도 않은 채 나의 마음속에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을까? 할아버지가 생을 마감하시기 전까지 귀한 대접이란 걸 많이 받아보셨을까? 고통을 고통스럽다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있으셨을까?할아버지는 고통에 대해 세련되게 말하고 풀어놓는 분이 아니었고 그냥 그렇게 몸 안에 품어 울퉁불퉁하면 울퉁불퉁 한대로 모가 나면 모가 난대로 녹여내셨던 분이셨다. 그래도 어느 마음 한구석 내가 모르는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할아버지가 작은 행복을 누리셨던 양지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바래본다.
슬픔만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대 아무리 힘들고 고된 삶을 사셨다한들 마지막엔 꼭 씨익 웃으며 나는 밝고 건강한 삶을 살다 간다고 꼭 해주시오.
그대의 마음이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부디 나는 그 말이 꼭 듣고싶소.
나는 할아버지의 구겨져 있고 뭉쳐져 있던 마음 종이를 펼쳐 네모 반듯한 액자에 넣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시는 평생 꾸깃꾸깃 구겨져 있던 주름 하나하나에 측은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야겠습니다. 할아버지 사시다 가신 삶 잊지 않겠습니다!
이 땅의 할아버지 할머니 파이팅
2021년 할아버지의 유해를 모신 국립산청호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