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별이는 아침에 EBS <한글 용사>를 재미있게 보고 어린이집에 갔다. 훈민이와 정음이 그리고 할아버지가 펼쳐놓는 이야기보따리는 아이에게 충분히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한글 용사가 출동해서 한글 자모를 찾아오는 장면을 보고 아이도 열심히 시옷 글자를 찾았다. 그리고 아침부터 밥과 함께 열심히 꺼내 먹은 과자는 할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이모가 사다놓으셨다는 과자
지난주 할머니의 생신이 지나서 한 번 온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출동했다. 할머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빛광과 밝을 명으로 이루어진 지명이다. 그 이름도 반짝반짝 빛나는 광명! 그리고 9911은 할머니네의 오래된 전화번호이다. 예전에 다이얼 전화기로 돌리면 99는 아주 길게 돌아갔고 11은 아주 짧게 딸깍딸깍 두 번을 했던 손맛이 아직도 감각으로 남아있다. 할머니는 2022년 3월에 87세 생신을 맞으셨다. 할머니는 숫자가 가물가물 하신지 20살을 빼시고 예순일곱이라 하셔서 다시 이십을 더하였더니 맞는 연세가 나왔다.
할머니는 처음에 절대 오지 말라고 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가 너무나 심해서 주위 가족 중에 확진이 자꾸 나오니까 오는 건 고마운데 할머니의 표현으로 애 데리고 집에 꼭 들어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못 뵌 지가 많이 오래되어서 집에서 끓인 미역국도 갖다 드릴 겸 가서 다시 연락을 드려야겠다 생각을 했다.
새로 입주하신 빌라 앞에서 세대 호출을 하였다. 할머니는 두 번이나 인터폰 대답이 없으시다. 어디에 가신 걸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보행보조차 실버카를 밀고 내려오신 할머니. 허리가 굽고 손이 닿질 않아 인터폰이 소용없다고 하신다. 할머니가 어딜 가셨나 당황하던 찰나에 엘리베이터 문에서 짜잔 하고 나오신 할머니는 새하얀 머리에 좀 더 작아지신 것 같은 외형이 조금 낯설다. 어느새 할머니는 코로나와 연로한 몸상태가 겹쳐 나갈 기회가 훨씬 줄어들자 거실이 불편한 몸을 누이는 방 역할을 하고 거실 TV와 화장실, 주방을 잇는 아주 짧은 동선만으로 생활하시는 패턴이 자리 잡으셨나 보다.
가자마자 어린이 방정을 떠는 한별이. 막대 젤리는 벌써 다 먹어버렸고 이제 빨리 생일 축하를 하고 케이크를 먹어야 한다는 최우선 과제를 엄마 아빠에게 제시한다. 할머니도 이미 이른 점심을 하셨길래 간단한 생일 축하송과 케이크 점화식이 열렸다. 할머니는 저 멀리 있는데 한별이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끄고 초를 뺀다. 좋게 말해서 매우 '자기 주도적'이고 케이크를 먹겠다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고 있다. 엄마는 '할머니 생일 축하해요.'를 아이에게 시키고 아이는 한시바삐 케이크를 먹어야 한다고했다.
"할머니를 먼저 드리고 케이크를 먹자.~~"
한별이는 진짜 열심히 케이크를 먹는다. 아주 평범한 아이의 행동이지만 내 눈에는 매우 신기하고 독특한 행동이기에 나는 한별이의 케이크 사랑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나는 심플하다.'라고 한 예술가의 옛집을 부슬비가 내리는 날 찾아갔다!
<용인가볼 만한 곳> 고즈넉한 분위기 "장욱진 고택" 용인시 공식 블로그
용인시 마북동에 위치한 한국 근현대 1세대 서양화가로 불리는 장욱진 화가의 전통스런 옛집을 방문했다. 삶과 예술이 하나로 조화된 진정성의 화가라고도 한다.예술사에 대해 그리 많이 알고 있지 않아서인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까지는 많이 들어보고 작품을 보아왔는데 용인시 블로그에 소개된 장욱진이라는 화가의 이름은 많이 낯설기만 했다. 그래서 부슬부슬 봄비가 오래도록 내려서 분위기가 서늘하고 동네 거리를 오가는 발길이 한산하기만 한 날 '한 번 가보자.'라는 실험적인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었다. 그곳은 정말 블로그의 소개처럼 도심 한 중간에 보물처럼 자리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었다.1884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고택은 130여 년의 세월을 지나와서 2022년 현재 골목 상권과 현대적 건물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해가 반짝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곳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지 못해 아쉬웠지만 오래도록 보존된 고택 덕분에 나는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소중한 화가를 알게 되었다. 세상에 유명하고 영향력 깊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작가들이 너무나 많지만 나는 오래전 작고하기까지 용인의 어느 한 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가셨다는 그분의 사진 속 미소가 오래도록 남는다. 아직까지 그의 작품을 실물로 접하지 못했지만 양주에 있는 그의 미술관에 나의 아이와 함께 찾아 아이같이 순수하고 단순한 예술세계를 펼쳤던 작품들을 보고 싶은 로망이 생겼다.
<용인가볼 만한 곳> 고즈넉한 분위기 "장욱진 고택" 용인시 공식 블로그
할머니의 삶을 박물관에 가져다 놓는다면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모든 이의 살아온 삶과 인생은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고 1인 역사박물관이 될 텐데할머니의 삶도 박물관에 간다면 어떤 전시가 될까? 할머니는 미국에 계신 여섯째 이모를 포함해 딸들이 참 많으시다. 나는 자식 하나도 매일매일 '어렵다! 어렵다!'를 마음속에 달고 사는데 거기에 비하면 할머니는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사신 건가?마음이 아프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열 자식들 건사하느라 늘 바빴던 손의 마디마디 굵어진 손가락은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위한 김치를 담그지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짓지도 않으신다. 요즘 거동이 많이 불편해 지신 할머니는 다 지어져 온 음식들을 데워서 드실 뿐이다.
나는생각해 보았다. 죽는 날까지 내 삶이 하나하나 기록되고 남겨진다고 생각하면 나는 단 하루도 혹은 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것이다. 늙으신 우리 할머니도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할머니가 또는 노년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먹는 것, 자는 것, 활동하는 것 뭐든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늙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밥 한 끼 허투루 국 말아 후루룩 해치우지 말고 나를 위해 새 밥을 짓고 구수한 국을 끓이고 노란 계란말이를 야채 다듬어 넣어 만들어 먹는다면 좋을 텐데.. 어느 미디어에서 보았던 노부부의 일상생활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아침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예쁜 그릇에 담아 먹고 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고민하고 나에게 맞는 향의 샴푸를 고르느라 신중하기까지 한 모습은 내가 늙어도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생활이다.
할머니가 하루에 한 번씩은 내려오신대요.
재작년에 신축 빌라 4층으로 이사하신 할머니.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서 좋지만 전과는 조금 다른 빌라살이에 적응을 하셨을까?
"할머니 요즘 밖에 잘 나가세요?"
"요즘 하도 시상이 안 좋아서 나갈 것도 못 나가고 하루에 한 번씩은 내려갔다 와야 허는디 내 이제부터는 또 한 번씩 한 번씩 내려가고 해야지."
따뜻한 봄이 우리 쥐띠 할머니의 마음에도 가득 찾아와 봄꽃을 틔었으면 좋겠다.
1936년생 우리 할머니의 현재 진행형 인생이 아직은 작고 예쁘게 그리고 변함없이 빛났으면..할머니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