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shyness

아파트 공동 놀이터에서 친구 만들기

by 육아와 생각

아파트 공용 놀이터에는 성수 시간이 있고 비수 시간이 있다. 한별이는 중앙 놀이터가 작은 주방창으로 보이는 1층에 살고 있어서 어디 가지 않고 조금만 그곳을 관찰하면 놀이터의 하루 일과를 줄줄 꿸 수가 있다. 주말이 아닌 평일 오전 시간은 주고객층인 유아 및 어린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찾는 이가 드문 편이다. 낙엽이 적은 계절에는 청소 어르신 한 분이 얼마 안 되는 시간 안에 비로 싹싹 쓸고 모아서 보는 이도 기분 좋아지는 말끔한 놀이터가 된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이면 텅텅 듣던 쓰레받기 소리는 가고 강풍기 엔진으로 낙엽을 날려버리는 소리가 웽웽 한참을 돈다. 그렇게 말끔해진 놀이터에는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아가 손님들이 가끔씩 찾아오기도 하고 기관에 맡기지 않고 소신 육아를 하는 엄마와 아이의 체험터가 기도 한다.


이제는 연결되어 있지 않은 지난 삶의 흔적들

한별이는 놀이터를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을 때는 오전 시간에도 찾았다가 어린이집을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오후 4시 하원 시간에 주로 들러 논다. 역시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공간이었지만 추운 겨울을 지내고 코로나를 겪고 있는 요즘은 거의 매일 오는 주 고객층을 위주로 일정한 아이들이 들리고 놀고 떠난다. 안타깝게도 한별이가 아는 친구들이나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하원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한별이는 놀 친구들이 많이 없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잘 달려가 노는 편이다. 제부턴가 하원 버스를 내리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 정면에 펼쳐진 놀이터는 건너뛸 수 없는 거대한 유혹이었고 한별이는 가슴이 두근두근하여 그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한별이의 플랜 B

친구가 없다면 친구를 만들자. 어차피 한별이가 아는 친구들을 그 시간에 맞게 불러내거나 만날 확률을 거의 없다. 처음에 한별이는 한 번씩 만났던 친구들 이름을 부르면서 아쉬워했다. 나도 그런 아이의 마음에 부응하여 친구들 엄마 번호를 찾아가며 전화를 해보기는 했으나 놀 의향과 계획이 없는 친구들을 일부러 전화해서 불러내는 것은 미안한 일이었다.

아이는 대신에 늘 일정한 시간에 놀이터에 나와 엄마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를 운 좋게 발견하고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 아이 주변을 맴돌고 관심을 끌고자 조잘거렸다. 나는 서로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코로나 시대이기도 하고 쑥스러움을 아직 극복 못한 어른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전혀 안면이 없는 엄마 아빠를 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엄마 아빠와 즐겁게 놀고 있는 또래 친구한테 직진으로 달려가는 아이를 볼 때면 심장이 쫄깃한 느낌이 오면서 속에서 창피함과 어색함이 사각사각 올라오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일은 창피한 일이 아니지. 그 친구가 엄마 아빠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방해만 되지 않게 한별이의 행동을 조금씩 알려주면 될 거야.'

나는 이렇게 쫄깃한 심장을 달랬다.


겨울을 지나온 아파트 공용 놀이터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아이의 행동요령

한별이는 제일 먼저 또래 친구를 졸졸졸 쫓아다녔다. 그리고 또래 친구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자기와의 연관성을 끌어냈다. 친구가 킥보드를 타면 얼른 집으로 달려가 킥보드를 끌고 왔고 친구가 자전거를 타면 얼른 집 쪽으로 달려가 자전거를 끌어와 같이 타기 시작했다. 물론 엄마는 그러한 행동 패턴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샌가 거기에 맞춰 졸졸졸 달려가 자전거와 킥보드를 내주고 있었다. 여기서 엄마의 역할이 마무리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지만 거기서 끝날 리는 없다. 아이는 요즘 밸런스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자꾸만 엄마 아빠와 즐겁게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고 있는 친구의 진로를 방해해 가면서 가까이 다가가서 탔다.

"한별아 그렇게 가까이 가면 친구가 연습을 못하게 되니까 그렇게 하지 마세요."

내 말의 힘이 너무 약하다. 집에서는 펑펑 소리도 잘 지르고 단번에 '너 하지 마!'를 말할 수 있는데 밖에 나오기만 하면 잘 안 된다. 나는 가식의 가면을 쓰고 있는 육아맘일까?

우리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잘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상에도 택배차량이며 배달차량 등 수시로 차량이 다니고 특히나 어린이집 차를 타러 가는 길목은 지하주차장 출구로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 손을 잡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 남들이 없는 공간이라면 내 앞으로 달려가는 아이한테 소리를 지르고도 남았을 텐데 나는 누가 본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여 속만 끓이고 평소처럼 얼른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지금까지 늘 주의를 주고 있는 편인데도 도로변이나 횡단보도 앞 그리고 아파트 정문 출입로에서 보호자 손잡기는 아직도 잘 되지 않고 있다.


엄마 앞지르기의 버릇


한별이는 두 블럭 떨어진 어린이집에 다녔었다. 그곳은 아직 질서를 모르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오묘하게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그러나 다녀오면 힘이 한 봉다리 빠지는 그런 거리의 위치였다. 신호에 맞게 차도를 건너야 하는 작은 횡단보도가 4개! 이 녀석의 앞지르기 버릇은 그때에 시작되었다. 등원하는 아침에는 유모차를 타고 엄마의 안전 가이드라인에 따라갔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에는 유모차가 있어도 주로 아이가 걸었기 때문에 앞질러 가기를 좋아했다. 엄마는 유모차를 밀며 어느새 앞으로 나가 있는 아이에게 충분한 주의를 주지 못했다. 아이는 벌써 저 멀리 가있는 광경이 자주 펼쳐졌다.

친구에게 받은 비타민 사탕
친구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졸졸졸 친구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반복되자 한별이는 그 친구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또래 친구는 어느새 주변을 맴돌며 짹짹거리는 친구에게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간식을 나누어 주었다. 늘 놀이터를 찾는 그 친구는 엄마가 늘 간식을 챙겨주었고 우리 한별이는 집이 코앞이라는 핑계로 간식을 안 챙겨 온 엄마 덕분에 주변을 멀뚱멀뚱 보고 있어서 나누어 주신 모양이었다. 간식은 엄청나게 좋아하지만 그 앞에서 바로 '고맙습니다.'를 시켜도 못 하는 한별이.. 간식 선물을 한 쪽 주머니에 넣으면서도 얼굴에 쑥스러움이 가득한 한별이의 모습을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엄마 아빠들과 문화센터, 육아지원센터, 키즈카페, 놀이터, 새싹 정류장,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마주하기도 하고 인연이 맺어지기도 때로는 휴일에 만나 나들이도 함께 하며 공동육아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단한 인간관계의 기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나가고 스치는 인연의 엄마 아빠들과 가벼운 육아에 대한 대화나 친절한 인사와 미소 정도는 어색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외향성 한 스푼이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 밤 생각해 본다.

밸런스 바이크도 육아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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