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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Aug 30. 2022

뛰지 마세요


성수역에 내려 출구로 나가는 계단에 이르면 ‘뛰지맙시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학교를 다닐 적에도 꽤나 자주 봤던 문구였다. 하지 말라고 하면 굳이 하고 싶은 것 마냥 성수역의 그 계단을 뛰어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꾸러기 기질 때문이 아니라 약속에 늦어서였나.



초등학교 때부터 여러 운동을 했다. 우리나라 초딩들의 대표적 데이케어 프로그램인 태권도부터 주말마다 배우는 축구, 시대회 정도는 쉽게 입상을 할 수 있었던 육상, 얼떨결에 체대생 수업에 함께 참여하면서 배운 스키와 스쿠버다이빙 등. 잘 하지는 못해도 어디 가서 한마디씩은 뱉어볼 수 있는 정도다. 그 중 가장 오래한 운동은 축구다. 초등학교부터 적어도 지금까지도 매우 드물게 하고 있긴 하니 말이다.



초중고를 거치며 진짜 축구 선수 마냥 ‘포변’(포지션 변경)을 해왔다. 달리기가 빠르고 체력이 괜찮았던 초중딩 시절에는 윙포워드였다. 기숙사 호실별 축구 대회가 있었던 고등학교 때는 경기 조율을 위해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유리몸까지 통달했다. 11명 팀이 잘 꾸려지지 않는 20대에는 주로 풋살을 하며 포지션이 무의미해졌지만 주로 벤치를 담당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 포변의 역사는 어쩌면 체력과 크게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시합을 할 때 전술이랍시고 경기 중간 좌우를 오가며 윙포워드를 보던 시절은 늘 숨이 찼다. 앞으로 달리면서도 뒤에서 공이 어떻게 오는지 확인해야 했고, 수비를 할 때는 죽어라 우리 골대로 향해야 했다. 호실내 포지션별 인원 부족으로 인해 중앙 미드필더가 되었을 때부터는 주로 롱패스와 중거리 슈팅을 선호하게 되었다. 공격을 할 때도 웬만하면 상대편 페널티 박스 밖에 위치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활동 반경은 줄어든 대신 경기의 흐름과 팀원의 위치를 확인하며 컨트롤 타워, 혹은 입으로 하는 축구를 담당했다. 풋살의 경우에는 계속 뛰어야 하기 때문에 그 체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는 미약한 신체의 소유자는 골키퍼를 자청한다.



이유가 뭐가 됐든 점점 더 달리기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달리지 않는다기 보다 달리기의 모양이 달라졌다. 100m 전력 달리기도 익숙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기껏해야 조깅 정도다. 전력으로 달리면 너무 힘들뿐더러, 그렇게 달려서 뭐하냐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기조는 일에도 적용된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한계에 부딪히며까지 노력하지 않는다. 전속으로 달리지 않지만 내일도 뛰어야 하기 때문에.


이유가 뭐가 됐든 점점 더 달리기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최선’이라는 말은 때로 무책임해 보인다. 당시에는 어떠한 행동이 그러해 보였을지 몰라도 지나고 나면 아니었던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더 할 수 있고,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력을 쏟지 않는다.   결과보다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방향성이 더 중요해서.



그런데 뛰지 말라고 해도,

다시 한 번,

전력을 다해 뛰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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