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여덟, 아홉, 아홉, 아홉, 아홉, 열
네트 건너편에서 테니스 공을 던져 주는 코치님의 목소리. 왜 그는 네 번의 ‘아홉’을 외치는가. 분명 열개만 치자고 했는데. 언제부터 아홉이 네 번씩이나 나온 뒤에야 열이 되는 것이었나.
‘네 번의 아홉 다음의 열’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 것 같다. 그 시작은 초등학교 때였다. 다른 친구들보다 한 시간 일찍 학교에 나와 체육 선생님과 운동장을 돌았다. 준비 운동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높이뛰기 트레이닝을 했다. 키가 160cm가 되지도 않던 나이, 제자리에서 명치까지 오는 높이의 바를 뛰어넘는 건 쉽지 않았다. 등이 바에 닿으면서 넘어질 때마다 등엔 멍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이 등교를 할 즈음이면 마지막 시도를 했다. 마지막은 늘 성공해야 했다. 그래야만 훈련을 끝낼 수 있었다.
어떤 운동을 배운다 함은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운동은 기본 자세를 배우고 이를 어떻게 새롭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늘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 때, 경지에 오를 수 있다. NBA 최고 3점 슈터인 스테판 커리가 경기 중 코트 어디에서든지 3점을 넣을 수 있는 이유는 코트 뒤에서의 노력을 생각해봐야 한다. 커리는 경기 중 그 자리에서 한 번 슛을 넣었을 수 있지만, 그 한 번을 넣기 위해서 연습할 때는 그 자리에 수백, 수천번을 던졌을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괜히 눈 감고 자유투를 던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테니스를 치다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며 숨을 고르고 있었을 때였다. 옆 코트에서 복식을 치던 사람들도 벤치로 와서 땀을 닦으며 게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한 사람이 테니스는 각자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는 좀 급한 것 같다며. 운동은 자세를 배우는 일이고, 자세는 한 사람의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자세는 익숙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자세가 익숙해지면 더 이상 늘지 않는다. 불편함을 느껴야 하고,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같은 동작을 여러 번 연습해야 한다. 체화되면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코치님은 오늘도 ‘아홉’을 네 번 외치고서야 ‘열’을 입 밖으로 꺼낸다. 그 전까지는 무조건 ‘한 번 더’다. 운동의 마무리는 늘 좋은 자세로 끝나야 한다. 몸은 마지막 시도를 기억한다. 그래서 마지막은 늘 성공해야 한다. 이 또한 자세를 배우는 일이다. 이를 습관적 성공이라고 부르고 싶다.
끝이라는 말보다는 마무리라는 말이 좋다. ‘여기서’라는 말을 앞에 붙였을 때, 전자는 다음이 없어 보이지만 후자는 다음이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삶은 늘 과정의 연속이다. 끝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 맺음, 혹은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올 뿐이다. 그 마무리의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실패의 좌절감을, 누군가는 성공의 희열을 느낀다. 마무리하며 실패와 성공을 저울질해야 한다면, 나는 그것이 늘 성공이기를 바란다. 같은 자세를 반복하는 날이 지속되면 무료해지고 나태해진다. 그래서 중간중간 성공이 필요하다. 습관적 성공은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준다.
성공과 실패를 따져 무엇하나. 삶은 늘 이어지는데 지금 그걸 판단하여 무엇하냐고. 실패 또한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냐고. 그렇다. 하지만 성공도 습관이고 자세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성공도 해본 놈이 성공한다. 지금 이 시점, 무언가를 그만두고 싶을 때, 혹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본인이 하던 것이 실패라고 생각한다면 한 번 더 해보기를 추천한다. 가져가는 것이 크지 않더라도, 마지막은 늘 성공이어야 한다. 그래서 ‘열’은 마지막에 외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