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네번째 이야기
누군가는 그랬다. 바다를 바다로 만드는 것은 수평선일 것이라고.
서핑을 시작한 건 사실 군대 때문이었다. 입대하기 전 마지막 여행지는 발리였다. 그 전까지의 대다수의 여행은 늘 부산스러웠다. 한국인의 여행답게 매일이 일정으로 가득했다. 뭘 봐야 하고, 뭘 찍어야 하고, 뭘 먹어야만 했다. 긴 여행은 언제나 도시를 경유했다. 입대 전 마지막 여행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눈을 쉬게 할 수 있는 여행지인 발리를 선택했고, 서핑 외의 것은 최대한 하지 않기로 했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서핑을 한 경험은 지금까지도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신기하게도 제대 후에 찾은 첫번째 여행도 오로지 서핑을 위한 여행이었다.
서핑의 시작은 늘 라인업으로 향하는 일이다. 라인업은 파도를 기다리는 장소다. 파도를 타기 위해 뭍에서부터 파도를 뚫고 파도가 시작되는 라인업까지 가야한다. 파도는 사실 꽤나 힘이 세다. 육지에서 봤을 때 하얀 파도가 되며 예쁘게 깨지는 파도도 잘못하면 큰 사고를 일으킬 만큼 무서운 존재다. 지구와 달의 인력으로 발생하는 우주적 힘이 파도인데 일단 서핑을 하려면 그 힘을 역행해서 먼 바다로 나가야 한다. 처음 발리에서 서핑을 배웠을 때는 라인업으로 가는 것부터 너무나도 힘들었다. 보드에 엎드려 패들링을 하는데 파도는 밀려오지, 내가 라인업을 향해 가고 있는지, 다시 육지로 떠밀려 내려가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라인업은 또 한참 멀리 있다. 바닷물을 한껏 들이킨 후에 라인업에 도착하면 바로 파도를 탈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일단은 쉬어야 한다.
실제로 보드 위에 서서 파도를 타는 시간은 전체 시간의 일부 밖에 되지 않는다. 초보라는 점을 감안하면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파도 하나 잡아서 타는 것이니 더욱 그렇다. 결국 남은 시간의 대부분은 라인업에서의 기다림의 시간이다. 때로는 보드 위에 엎드려서, 때로는 보드에 앉아서, 또는 보드에 손을 올리고 바다에 몸을 던지고 파도를 기다린다. 시선은 수평선으로 향한다. 서핑을 지속적으로 찾는 이유는 파도를 타는 것 외에도 그 기다림의 시간이 좋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짙은 푸른색 바다의 일렁임, 작열하는 햇살, 바람 소리. 감각이 몸으로 들어온다.
글을 쓰고 있는 시점 DDP에서 진행 중인 전시 「집의 대화」에서 최욱 건축가는 부산 바닷가의 집에 대해 말했다. 바닷가의 집은 책을 읽기 좋은 공간은 아니라고. 바다의 생명이 너무나도 강해서 멍하니 바라보는 곳이지, 채움의 공간이 아닌 비움의 공간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서핑도 같은 행위이지 않을까. 라인업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밀려오는 파도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 하고, 손을 바다 깊숙이 내려 패들링을 한다. 아등바등 힘을 낭비하지 않고 바다에 몸을 맡긴다. 저항하지 않고 필요할 때에만 힘을 낸다. 그러면 어느새 라인업에 가 있다. 한참을 수평선에 시선을 떨어뜨려 놓는다. 그 순간에는 생각이 없다. 비움의 시간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파도를 골라 그 위에 올라 서서 다시 육지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