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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Sep 13. 2020

내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나처럼 미성숙한 사람이 아이를 길러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시시때때로 훅하고 화가 치밀었다. 낮잠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잠이 깬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걸로 잘 지켜내던 오늘의 인내심은 무너져 내렸다. 잠이 충분하지 못해서 그럴 거라고 판단하고 다시 재워보려 했다. 하지만 울음은 좀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이쪽저쪽으로 구르며 안으려는 나를 밀어냈다. 이번엔 잠이 덜 깨 그런 거라며 차라리 잠을 깨우자 싶었다. 잠을 깨울 요량으로 아이를 세워 안아 말을 걸으며 달래 보려 했지만 그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해서 듣는걸 참기 힘들어하는 편이다.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내 아이의 울음소리라도 말이다.

그렇게 1시간 반을 울었다. 울다가 잠시 멈췄다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처음에야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몸은 '화'로 가득 채워졌다.  몸을 뒤틀며 생떼를 부리는 아이에게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단말인가. 아침 점심도 정성스레 챙겨 먹였고 읽어달라는 책도 다 읽어주었다. 오전 내내 우린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인 걸까. 어째서 어째서.


화가 나는 것은 비단 아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가 너무 부족한 엄마 같아서, 내 아이를 잘 케어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나의 돌봄에 아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 더 화가 났을 것이다. 게다가 나를 밀어내는 몸짓이 나를 비참하게 만든 것도 같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면 될 것을 작고 연약한 아이에게 화풀이를 해버렸다.


아이는 연약하니까 나에게 저항할 수 없으니까.
내가 미워해도 나를 미워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기에 절대 함부로 해선 안된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몸도 마음도 다치게 해선 안된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아이는 엄마가 화가 많이 났다고 직감하는 순간 울음이 잦아들었다. 아이에게도 그런 직감이 있다는 것이 이제 와 생각하면 놀랍기도 하다. 그 순간의 나는, 아이와 한 공간에 있으면 감정이 폭발할 것만 같았고, 아이를 그 자리에 두고 나와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그때의 최선이었다.


아이와 함께 있던 공간을 빠져나오자 정말 빠져나오자마자. 내가 미친 사람같이 느껴졌다. 내 아이의 우는 소리 하나를 참아내지 못해 이토록 화가 나나 싶어서 나 자신이 창피하고 미웠다. 스스로가 형편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눈물이 쏟아졌다. 이게 무슨 엄마란 말인가.


눈물을 닦고 심호흡을 하고 거실로 나왔다. 아이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방문 앞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아마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리라. 거실 소파에 털석 앉았다.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것이다. 내게 몸을 맞대고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쿨하게 아이를 마주 안아주지 못했다. 그저 그냥 둘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니 하루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느낌이었다. 그냥 이대로 하루가 끝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이 들고 싶었다. 남편이 퇴근하려면 아직 5시간이나 남았다. 그전까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아이와 있을 때 나는 가끔 낯선 사람이 된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내가 된다.


내가 이렇게 사람을 대한 적이 있었던가?

자는 아이의 작은 등을 눈에 담자 곧장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 미안해서 이런 내가 엄마인 게 미안해서. 그렇게 힘내서 엄마에게 와주었는데 고작 이런 엄마를 만난 것이 안타까워서.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꺽꺽 소리가 날까 목젖을 꾹 눌렀더니 아릿하게 아파왔다. 등을 쓸고 이마에 입을 맞추고 따뜻하고 작은 발을 살짝 잡아보았다. 아직 이렇게나 작은데, 아직 이렇게나 여린데. 어째서 나는 이토록 형편없는 걸까.

엄마의 무표정한 얼굴에 상처 입진 않았을까. 그 상처의 깊이를 살펴볼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내 아이의 상처는 결국 나의 상처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엄마에게 상처 받았어’라는 말만은 듣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했는데. 오늘을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다. 시간이 지나도 내내 오늘을 후회하고 미안해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에 오래도록 담겨 있을 오늘.

내 아이도 온전히 사랑해 내지 못하면서
내 아이 하나도 오롯이 받아내지 못하면서


내가 어떻게 ‘엄마’라고 불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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