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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Sep 18. 2020

모두가 잠이 든 후, 엄마의 밤.

스며들다.


아이가 잠이 든 후,
엄마의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

잠이 든 아이를 뒤로하고 살금 거실로 나와 하루 동안의 육아의 흔적들을 정리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와 정리시간을 가진 후 방으로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아이와의 하루를 짐작케 하는 전투 육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남편과 늦은 저녁을 차려먹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인덕션을 깨끗이 닦고,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두고 나면 그제야 '진짜 나의 시간'이 생긴다.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쓸까. 너무 아까워서, 1분 1초가 소중해서,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매일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잠자리에 눕는다.


습관처럼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사진첩을 확인하는 일이다.

아이의 찰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매일 부지런히 담아 두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사진 정리가 되었다. 아이를 재우며 '빨리 잠들었으면' '잠 들고나면 내 시간을 가져야지'하고 마음속으로 되뇌곤 하는데, 정작 나와서 하는 일은 아이의 사진을 보며 행복해하는 일이다. '내 새끼 이쁘다 이뻐' 하며 말 그대로 엄마미소를 짓고 있다. 이러려고 아이가 빨리 잠들기를 바란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때로는 책을 읽는다. 

시집을 선택하기도 소설을 선택하기도 육아 에세이나 전공서적을 보기도 하지만 무엇이든지 읽어 내려간다. 그 시간은 참 고요해서 내 안에 숨어있던 평화로움이 되살아난다. 소란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시 한 편을 읽고 감상에 젖어들기도 하고, 소설을 읽으며 잠시 다른 공간의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육아서를 읽으며 반성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전공서적을 읽으며 아이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어떤 책을 펼치든 모두 내게 사무치게 좋은 시간이다.

때로는 일기를 쓴다.

매일 쓰면 좋겠지만 건너뛰는 날도 많다. 하지만 일기를 쓰는 시간은 책을 읽는 시간만큼이나 고요하고 차분해지는 시간이라서 좋다.
중학교 시절부터 다이어리 썼다. 우리 집 창고에는 나의 다이어리를 모은 판도라의 상자가 존재한다. 학창 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쭉 기록해 온 나의 일상을 버릴 수가 없어서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여전히 다이어리를 쓴다. 

그리고 그 보다 깊은 시간을 가지기 위해 따로 일기장을 두었다. 매일매일을 기록하는 다이어리와 나의 깊숙한 내면을 기록해 둘 일기장.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하루를 기록하며 나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또 생각을 기록하며 나의 내면을 조각조각 나누어 들여다보고 공고히 할 수 있어서  쓰는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나에게 ‘쓰는 시간’은 위안의 시간이기도 하고, 내면을 반듯하게 세우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밤의 기운을 느끼며 일기를 쓰고 있노라면 ‘하루 종일 '엄마'로 불리다 이제야 '나'인 채로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쓰는 시간에 더욱 매료되고 만다.

때로는 남편과 때로는 혼자서 술잔을 기울인다.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혼술은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나 육아를 시작하며 혼술도 힐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혼술의 묘한 묘미를 느껴 버린 탓에 남편이 잠자리에 든 후 맥주 한 캔을 꺼내 드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술은 함께 마시는 게 더 좋다.  특별히 깊이 있는 대화가 아니어도, 잔을 부딪혀 줄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날도 분명 있더라는 것.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남편의 위로 한마디보다 육퇴 후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이 더 큰 위로를 주는 날도 있다는 감추고 싶은 진실도 있다.


때로는 아이가 잠든 시간에 누군가를 만나러 나서기도 한다. 

 한 동네에 좋은 친구가 산다면 가능한 일이다. 한 동네에 그냥 친구가 아닌 밤늦은 시간이라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만나고 싶은, 만남이 즐거운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곤이 잠이 든 아이는 남편에게 부탁하고, 오늘 밤만큼은 남편이 아닌 친구와 술 한잔을 혹은 차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밖’이 주는 자유로움이 있다. 집에서의 근심, 걱정을 잠시 잊게 해주는 ‘밖의 마법’ 말이다. 일단 집을 벗어나고 나면 잠시 잊는다. 집에서는 할 수 없었던 '내려놓음'이 밖이라면 가능해진다. 언제나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과 다시금 반복될 하루와 어김없이 시작될 육아에 대한 고민들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저 밖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금은 지금’이 된다. 그것이 ‘밖의 마법’. 일단 집을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

때로는 아이를 위한 시간으로 채우기도 한다.
다음 날 아이를 즐겁게 할 놀이를 계획해 준비하는 일은 피곤하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남편이 그런 나를 보더니 "음식점 사장님 같아. 하루 종일 고생하고 마감하고 나면 다음날 쓸 식재료 준비해두고 퇴근해야 하잖아. 되게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부인이 꼭 그런 것 같아 보여"라고 했다. 하지만 음식점 사장님도 몸은 힘들지만, 맛있게 먹어 줄 손님을 생각하며 기꺼이, 기쁘게 준비하시지 않았을까? 아침에 일어나 얼마나 놀랄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보자마자 만질까? 아니면 구경만 할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준비하는 그 시간은 마냥 고되지만은 않다.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며 고되거나 창피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의 콩깍지가 씐 엄마는 아이를 위한 일이라면 힘이 솟는다.


엄마의 시간은, 엄마의 밤은 한없이 사소하고 소박하기만 하다. 아이를 재울 때에는 아이가 잠이 들기만 하면 대단히 특별한 일이라도 할 듯, 거창한 뭐라도 할 것처럼 굴지만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맥주 한잔을 마시며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그마저도 아이와 함께 할 하루를 계획하는 데에 쓰기도 한다. 이렇듯 사소하고 소박한 엄마의 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바보 같게도 온통 '아이'로 가득 차 있다.


엄마의 일기장은 아이와 보낸 오늘 하루를 반성하거나 아이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로 가득하다. 육아에 관한 책을 읽고, 아이의 사진으로 채워진 사진첩을 보고, 맥주 한잔을 마시며 아이와의 하루를 남편과 나누며 곱씹는다. 친구를 만나서도 온통 '아이'에 대한 이야기들로 술잔을 부딪힌다. 사소하고 소박하기만 한 것이 아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아이로 물든 채 살아가고 있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아이와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아도 나는 내 아이의 색이고 내 아이의 일부이다. 아이가 내 삶에 완전하게 스며들었다는 뜻이리라. 서로의 삶에 깊숙이 스며듬에서 오는 결코 작지 않은 커다랗고 커다란 행복감이 있다. 엄마의 밤이 아이를 향해 있다고 해도 결단코 가엾지 않은 이유이다.


내일도 아이의 삶에 더 깊숙이 스며들어가야지.
나날이 촘촘히 서로에게 더 짙게 물들어가야지.

우선,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아이를 향해 환하게 어제보다 더 환하게 웃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


오늘의 엄마의 밤은 '쓰기'로 맺는다.

굿 나잇 내 아가.
굿나잇 아무나, 굿나잇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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