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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Sep 22. 2020

아이를 잃은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

이젠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나는 자꾸 누군가가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 안에서 아이 셋을 잃고 얻은 트라우마이다.


첫 번째 아이는 신혼을 1년 정도 보내고 딱 좋은 시기에 찾아와 주었다. 피검사에 임신 수치가 나왔지만 수치가 너무 낮았고, 임신 사실을 안 후부터 피가 비쳤다. 그렇게 처음 아이를 잃었다. 두 번째 아이는 몸조리를 끝내고 6개월 만에 찾아와 주었다. 너무 늦지 않게 찾아와 줘서 고마웠는데 아이는 자라면서 머리 쪽이 성장하지 않았다. 12주에 아이를 보냈다. 그 후 1년 동안 임신을 위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용기를 내기까지 꼬박 1년이 필요했고, 임신을 시도한 지 3개월 만에 아이가 찾아왔다. 그리고 행복한 시간은 내게 딱 6개월이었다. 23주, 온전히 아이인 채로 심장이 멈추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자꾸만 소중한 누군가를 잃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위태로운 감정은 때때로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훅 하고 찾아와 나를 흐트러지게 한다. 가끔 꿈을 꾸기도 한다. 꿈에서는 누군가가 죽지는 않지만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아님 뒤바뀌거나 아니면 떨어져 다치는 꿈 따위를 꾼다.


꿈보다 무서운 것은 현실이다. 남편이 운영하는 가구점에서 함께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다. 이유는 조금 전 함께 먹은 식사가 우리의 마지막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사고를 당해 이대로 영영 보지 못한다면, 가게에 괴한이 들이닥쳐 남편을 해친다면, 이런 터무니없는 걱정 때문에 나는 그렇게도 울었다.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감정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것. 나를 관통해 버릴 정도로 강하게 휘감는다는 것이 문제다.


때로는 자고 있는 남편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잠을 이룰 수 없는 날도 있다. 내내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잘 자고 있네. 별일 없네.' 하고 수시로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남편이 내 옆에서 우리가 함께 잠든 침대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져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간혹 코를 골며 자는 날에 오히려 깊은 잠을 잤다.


그것은 세 번째 아이, 23주에 내 안에서 심장이 멈춘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분명 전날 밤에도 힘찬 태동을 보여주었고, 남편과도 그 신비로운 모습을 함께 보며 웃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잠이 든 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단잠이 들었던 날 아이의 심장이 멈추었기 때문에 나는 오래도록 스스로를 원망했다. 왜 몰랐느냐고 어째서 모를 수 있느냐고 자책하고 짓눌렀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는 그렇게도 몰랐다. 다음날 저녁에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후로부터 줄곧 잠이 든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웠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어떤 불행이 찾아 올 지 두려운 것이다.


잠이 든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는 버릇이 있다. 아이가 잠을 자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며칠 전, 여느 날처럼 아이의 등에 손을 대 보았다. 깊은 잠에 빠진 탓인지 새근새근 거리는 기색이 없어서 평소처럼 엎드린 아이의 등에 귀를 대보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그대로 멈춰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서였는지 두려워서 인지 알 수 없지만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급하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를 들어 안았다. 아이가 품에서 꿈틀 했다. 심장은 이미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나는 고요히 아이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방을 나온 후 한참을 울어야 했다. 그 짧은 순간에 느껴진 감정들이 폭풍처럼 나를 삼켰다.


아직도 그런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평온한 듯 고요한 듯 일상을 살아내지만, 가슴엔 태풍 같은 시간을 품고 산다. 낭떠러지 같은 마음을 품고 산다. 남편의 퇴근시간이 다 되었는데 전화가 오지 않을 때, 출발한다는 전화가 없는데 도착할 시간마저 한참이 지났을 때. 그때부터 온갖 생각을 다, 정말 별 생각을 다 한다. 전화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시계만 하염없이 본다. 현관 문소리만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러다 현관문을 여는 기계음이 들리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볍게 남편을 대한다.


내가 이토록 괴로운지, 아무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늘 아이에게 미안하다. 이리도 불안한 정서가, 부정적인 감정이, 위태로운 마음이 아이에게 스며들까 조마조마하다.


그 슬픔과 애통함을 그리고 서러운 응어리와 비참한 상실감을, 낭떠러지 같은 마음과 사시사철 꽃 한 송이 피지 않을 마음을, 낮도 밤도 아닌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없는 그 마음을 그날 이후로 여태 품고 산다.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2016년 새해, 2016년 가을, 2017년 겨울.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 기억의 감옥이 있다면 영영 가둬두고 싶은 다시는 꺼내보고 싶지 않은 그 시간들. 하지만 알고 있다. 아픔이 있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은 아픔을 겪기 전의 '나'도 다신 없다는 뜻이며 트라우마를 겪기 전의 '나'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라우마를 얻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면 트라우마를 이겨낸 '나'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아직도 잠든 아이의 등에 한참을 손을 얹어 숨결을 확인해야 잠을 이룰 수 있지만, 때때로 그 숨결이 느껴지지 않으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아이를 세차게 부둥켜안아야 하겠지만 아이는 내 옆에서 숨 쉬고, 살아서 웃고, 울고. 그런 아이를 나는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고 원하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


어떤 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잠시나마 다녀간 소중한 작은 생명은 엄마의 마음속에 존재하며 엄마의 행복을 기원할 것이고, 귀한 인연은 다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 말은 내게로 와 작은 씨앗이 되었고 마음에 심겼다. 시리고 시린 겨울의 마음에 눈이 녹고 따뜻한 봄기운이 스미면 언젠가 꽃을 띄울 씨앗이다. 그 소중한 말을 꼭 움켜쥐어 본다. 이미 내 마음에, 나의 온 우주에 촘촘히 박혀 반짝거리고 있다고, 그렇게 언제까지고 나를 바라봐 줄 거라고 믿으며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만난 나의 아이를 지켜내야 하므로 더 단단해져 본다.


그리곤 이제 다 괜찮다고 말해 본다.

“다 괜찮다. 정말 이젠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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