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 Apr 06. 2021

아이 두돌, 엄마 두돌.

아이의 두돌에 다시쓰는 반성문.


니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오늘의 너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왜 지나고 나면 사무치게 깨닫는 것일까.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 소중함을 곱씹고 그 사랑스러움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이 마음이 다 무슨소용일까.


너에게 사랑만 먹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좋은 엄마, 좋은 인간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너그러워지고 싶었으나 때때로 예민했고, 다 품어주고 싶었으나 종종 단호했다.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간혹 귀찮아했고, 또 문득 혼자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의 빈틈에 파고든 날카로움이 때로는 아이를 때로는 나를 찔러댔다. 우리는 그렇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그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아무는 것을 지켜보고 또다시 상처내고 아물어가며 그렇게 성장해가는 것일까. 그렇게 밖에 성장할 수 없는 것일까. 엄마의 성장은 어째서 늘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난 후에야 가능 한 것일까.


아이의 지난 사진을 본다. 매일밤 하루의 사진을 다시보곤 하지만 어느날엔 아이의 1년전 사진을 보곤한다.

'이때의 시간이 이제는 너무도 그리운 시절의 한움큼이 되어버렸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날에는 마음이 저릿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다시 12개월, 너는 두돌이구나. 나는 여전히 너의 옆에서 반성만 하고 있구나. 반성문이라도 써야 그래야 우리의 오늘이 지나간 애틋함이 아닌 사랑의 현재진행형으로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반성문을 쓰곤하는데 어째 반성문도 내성이 생기는 듯도하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이를 기르면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 내게 아이를 기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어떤 정성으로 길러졌는지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부모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를 알게 된 것. 나의 어린아이 시절을 내 아이를 통해 마주보고 내 마음 속에 내 어머니의 마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속에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이 덕지덕지 붙어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정말 자연스럽게 알아지더라는 것. 그렇기에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고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고서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말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부모로서의 어른스러움'이란 분명 존재한다.


그렇게 아이는 나를 더 사랑하게 하고, 나를 더 살게 하고, 나를 성장시켜가고 나를 더 바른 길로 서게 한다. 내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기위해 나는 조금 더 나누고 베풀게 되며 그렇게 한뼘이라도 더 선한 쪽에 서려한다. 이 것이 모두 아이가 내게 준 것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오늘도 다짐한다.

내가 매일 아이의 눈을 보며 생각하는 단 한가지.

실로 지금 내가 보는 저 초록빛의 웃음만은 잃게하지말아야지.

이토록 무해하고 무결한 저 생기있는 눈빛만은 잃어버리지 않게 지켜줘야지.

또 다시 1년 후, 그때는 내가 너를 향한 반성문이 아닌, 너의 세살을 축하하는 편지를 써야지.

 

부디 그 때 즈음엔 내 품이 너의 작은 숲이되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웠던 혼밥을 다시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