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도전은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수반한다.
혼자만의 여행에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 한 번도 유럽에 가보지 않은, 그런 내가, 미지의 공간인 유럽에서 혼자만의 여행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 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시절의 내가 이 여행을 강렬하게 의욕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두려움이 아무렇지 무용해질 정도로 한국을 떠나고 싶었고, 주변인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완전히 이방인인 땅에서 더더욱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까 고백하자면 이 여행은 절반쯤은 도피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뿌리내리고 있는 이 세계로부터, 그리고 나의 과거를 아는 모든 인간들로부터의 도피 말이다.
물론 타인에게는 배움과 같은 명분으로 여행의 이유를 이야기하곤 했지만, 나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 여행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배웠다. 이 세계는 다양한 삶의 양태가 존재했고, 내가 살아온 세계는 정말이지 더없이 좁은 세계였다. 그리고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나는 충분히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는 그런 존재였다.
나는 나쁘지 않은 대학을 다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 대학에 다닌다는 사실은 수년간 나를 미친 듯이 괴롭혔다.
좋았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입학을 하고 그 대학의 학생증을 손에 넣었을 때, 정말이지 눈물 날 정도로 좋았던 것도 같다. 그러나 대학을 다닐수록 나는 지독한 회의감에 휩싸였다. 내가 내 삶에서 진정으로 선택했던 것은 무엇인지, 내 삶에서 정말 나의 자유의지로 일궈낸 것이 한 가지라도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대학에 온 뒤로 그저 멈춰서 있는 듯한 나의 모습은 나에게 절망감을 가져다주었다. 왜 어떤 이들이 입학 시절의 영광에 머물러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때의 나에게 도피는 손쉬운 선택지였다. 학점을 꽉꽉 채워서 들으며 눈앞에 당면한 과제들을 처리하며 애써 미래의 고민들로부터 멀어졌다. 가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어질 수 없다면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외면할 수만은 없는 때가 왔다. 여행을 시작한 것은 그 시점이었다. 한국에 있으면서는 도저히 멀어질 수 없는 그 고민들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기 위해. 그러나 가장 먼 곳으로의 도피에서 나는 마침내 직면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 마지막 글이 전체 여행기와 얼마나 지대한 상관성을 지닌지 모르겠다.
다만 여행기의 끝에서나마 내가 왜 이 여행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남기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삶만이 삶은 아니라는 사실은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을 주었고, 그 삶 속에서 또 다른 삶을 모습을 발견했다는 점이 나를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다고나 할까.
끝으로 남기는 글은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 나오는 고독에 관한 짧은 글이다. 이 글로써 길었던 에세이를 갈무리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 젊은 날 마음속에 그린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을 서서히 잃어감으로써, 우리는 조금씩, 고독이 한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님을 깨달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