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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요일 Sep 03. 2022

그 사랑은 내게 재앙이다.

멈출 수 없는 재앙을 끌어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이었다. 요즘 카카오톡은 프로필을 업데이트하면 타인에게 새 사진을 봐달라며 제일 위 카테고리에 노출이 되는 기능이 있다. 그 사이에서 난 그를 발견했다.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고 모르는 여자 옆에 서있는 그 사람을 말이다.


그와 나는 만나지 못했다. 자세히는 나는 만났지만 그 사람은 나를 만나지 않았다. 우리의 시작은 뜨듯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차와 같았다. 사귀자 와같은 약속의 언어는 없었고 그저 서로를 원하기만 했다. 그래도 난 좋았다. 그의 눈에는 내가 있었고 나의 눈에는 그가 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나의 마음에 입주해 살던 그는 향기만 남긴 채 나를 떠났다.


“ 우리 잠시 그만 만나야 할 것 같아. 나로 인해 너가 망가지는 것 같아 그게 싫어. 너와는 오랜 친구로 남고 싶기에 아주 잠시 시간을 가지는 거야.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주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니야. 우린 분명 다시 만날 거야. “


할 말이 있다기에 나간 자리에는 끝맺음이 확실하지 않고 미련을 남을만한 말만 남기고 그 사람은 떠났다. 마치 우리의 헤어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드라마에 나올법한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같은 대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약속의 언어가 없었기에 우리의 헤어짐은 파도에 모래성이 무너지듯 허무했고 찝찝한 헤어짐이었다.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그의 따듯했던 입으로 서늘하게 이야기했던 내 이름 세 글자. 산뜻하게 느껴지던 향수도 차갑게 느껴지던 분위기. 항상 나를 먼저 챙기던 매너였지만 자리를 먼저 박차고 나가던 뒷모습. 하지만 나는 그조차도 사랑했다. 언젠가는 분명 만날 수 있으니까 라며 항상 되뇌었다. 그리고 분명 다시 내게 돌아와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한겨울의 눈도 녹일 만큼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비록 지금은 내 눈에 따듯한 비를 내리게 하고 있지만 분명 이마저도 닦아줄 것이라 믿었다. 언젠가는 다시 올 그를 위한 자리를 남겨놓기 위해 마음을 잠시 정리하기로 했다.


그 후 매일 흔적을 찾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근처에 두고 싶었지만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기억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사랑했던 추억을 지우고 싶었다. 거짓말이 되어버린 영원을 속삭였던 밤도, 차가워진 커피는 맛없다고 따듯한 커피를 다시 사주던 그 순간도, 깨진 유리에 베인 손을 봤을 때 바로 나가서 약을 사 오던 그 술집도 나는 지우고 싶었지만 나의 지우기 위한 그 노력들은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 그를 더 선명하게 남아버리게 했다.


얼마 없는 추억을 정리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안에 남은 작은 슬픔은 때로는 원망이 되고 그를 원망하다 보면 다시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나를 보며 자책도 많이 했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야 다시 만날 수 있는데 더 이상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친구로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다시 만날 수 있는데 자꾸만 사랑하게 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내게 있어 그를 사랑하는 건 재앙을 끌어안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사랑이라는 큰 재앙이 오는 걸 멈춰야 내 세계가 다시 편해질 텐데 그걸 알면서도 끌어안고 있었다.


형의 사랑은 내게 있어 재앙이다. 멈출 수 없는 커다란 재앙. 형

매거진의 이전글 박혀있던 가시를 정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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