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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Sep 26. 2016

쉽지만 날카로운 책 읽기 안내서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북하우스   

  

  지금까지 읽은 책 안내서(?) 중에 요즘 말로 최애하는 책이 박웅현이 쓴 [책은 도끼다]와 샤를 단치가 쓴 [왜 책을 읽는가]이다. 그중 [책은 도끼다]는 광고기획자인 저자가 책을 읽었으면 얼마나 읽었을까 싶어 만만하게 책을 펼쳤다가 제목 그대로 도끼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던 책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된다는 건 그 분야 만이 아닌 모든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소개된 다양한 책 분야는 물론이거니와 어려운 고전들도 너무나 쉽게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만의 감각으로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저자의 능력이 정말 놀라웠다. 그 책들을 그렇게 풀어낼 수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 싶은 생각에 저절로 존경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 후속인 [다시, 책은 도끼다]를 발견하곤 주저 없이 e-book으로 구매 했다.

   [책은 도끼다]의 후속작인 이 책은 지난번 책에 비해 고전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국문학과 관련 있는 나로서도 읽다가 포기한 책들이 여러 권 있었다. 분명 내가 읽었을 때는 정말 따분하고 어려운 이야기 투성이었던 고전들인데 이 책에서는 너무나 흥미롭고 신선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똑같은 책을 읽고서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개인의 독서력의 차이겠지 싶은 생각에 창피함이 가득한 책 읽기였다.


< 먹은 음식이 소화되어 에너지를 만들어야만 인간이 살 수 있듯이 독서를 통해 내용을 기억해야만 정신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  - 쇼펜하우어, [문장론]
계속 먹기만 하고 소화를 시키지 않으면 에너지가 되지 못하는 것과 똑같아요. 책 읽기를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한 문단을 읽었으면 내용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이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읽기를 끝내야지 하고 목표를 정하지 마시고, 얼마만큼 내 것으로 만들 것인지에 방점을 찍으셨으면 합니다. 소화불량 걸리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느끼고 행하는 책 읽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 1강 독서는 나만의 해석이다.

  한동안 나도 스마트폰의 책 읽기 어플에 내가 읽은 책 한 권씩 더해가는 재미에 푹 빠졌던 때가 있다. 어플을 켜면 나타나는 책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던지...... 그래서 3일에 책 한 권 읽기를 목표로 삼기도 했었다. 마침 때 맞춰 유행하던 책들이 하루에 한 권씩 책 읽기를 몇 년간 하면 된다는 류의 책들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하루에 한 권에 비하면 3일에 한 권은 너무 소박한 거 아닌가 싶어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책은 도끼다]를 읽고서는 그런 생각을 많이 벗어던졌다. 책의 권수보다는 그것을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마음 깊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책도 총 8회에 걸쳐 진행된 저자의 '인문학 강독회'를 바탕으로 했기에 1강에서는 그러한 책 읽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내가 깨달은 걸 이미 남이 먼저 알아냈다고 해서 허무해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그 체험은 다른 사람의 체험과 바꿀 수 없는 겁니다. 이미 내 몸에 체화됐죠. 쇼펜하우어는 지식을 체화시키는 것에 대해 이런 비유를 들었어요.
< 다시 말해 산의 정상일지라도 오르는 사람의 개성과 방법에 의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사색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단순히 산 정상에 도달했다는 물리적 결과만이 아니라 정상에 도달하는 동안 겪었던 체험도 포함되어 있다. >   - 쇼펜하우어, [문장론]
바로 이런 겁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을 누군가가 앞서 이미 했다, 그러니 내 생각은 소용이 없다가 아니라 내가 이런 문장을 내 삶에서 느끼고 살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가 되어야 해요.    ----- 1강 독서는 나만의 해석이다.

   이 부분은 읽으면서 '맞아, 맞아'하며 공감했던 부분. 그 이유는 내가 워낙 순응적(쉬운 말로 하면 팔랑귀라 할 수 있겠지)인 사람인지라 그동안 책을 읽으며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허무감을 느낀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몰랐던 부분,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이런 생각할 수가 하며 감탄하기 일수고, 내가 이미 알았던 것, 느끼고 있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러면 그렇지 하고 기뻐하는 아주 착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왠지 내가 느끼고 있던 것을 유명한 책의 저자도 똑같이 느꼈다는 걸 알게 되면 마치 내가 아주 잘난 것 같은 뿌듯함이 들지 않는가? 저자는 그것을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 날개가 파란 어떤 새는 내게 춤에 대해서 얘기해줄지도 모른다. >  - 곽재구 [곽재구의 포구 기행]
그렇죠. 새들이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율동이고 공연인 것 같아요.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서문에서 짤막하게 했던 이야기인데요. 중랑천변으로 난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출근하는 길은 차가 센티미터 단위로 움직이는 길이에요. 꽤 짜증이 나는 길이죠. 그 길을 짜증을 내며 가고 있었는데 문득 물새들이 보였어요. 물가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하늘로 날았다가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이게 공연인 거예요. 세종문화회관에서 보는 <백조의 호수>에는 '사람 백조'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눈앞에 진짜 새들이 춤을 추고 있더군요. 물을 치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올 때의 날갯짓과 그때 물살이 이는 모습을 천천히 봤어요.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데 교통체증이 고맙더라고요. 만약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렸다면 그 장면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곽재구 시인도 날개가 파란 어떤 새로부터 춤 동작을 본 거죠.   ----- 2강 관찰과 사유의 힘에 대하여
< 삶이란 때로 상상력의 허름한 그물보다 훨씬 파릇한 그물을 펼 때가 있다. > - 곽재구 [곽재구의 포구 기행]
드라마에서 보는 상상력의 그물, 온갖 장치를 다 만들어놓고 펼치는 그물들이 정말 말도 안 될 때가 많죠. 점 하나 붙였다고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세요. 아주 허름한 상상력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짠 상상력의 그물보다, 사실 우리 삶의 그물이 훨씬 더 촘촘하게 짜여 있다는 겁니다.  ----- 2강 관찰과 사유의 힘에 대하여

   [곽재구의 포구 기행]이라는 에세이를 읽으며 저자의 표현대로 저자가 건져 올린 문장들이다. 사실 나도 그 책을 몇 번인가 펼쳐보았었다. 워낙 좋다고 이름난 책이어서..... 그러나 뭐랄까 너무나 담백하고 조용한 책이어서 오히려 읽기가 더 어려웠다. 이런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에서 생각을 건져 올리기에는 내가 너무 띄엄띄엄한 인간이었나 보다. 저자가 소개한 내용들을 보니 이런 좋은 책을 그렇게 밖에 못 읽었던 내가 정말 바보 같다.

< 살아 있음이란 내게 햇살을 등에 얹고 흙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걷는 일입니다. >  - 곽재구 [길 귀신의 노래]
이 글을 보고 저는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사는 게 사실 뭐 대단한 게 없어요. 나이 먹는 것도 특별한 게 없고요. 삼십이 되면 달라질 것이다. 오십에는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없어요. 똑같아요. 살아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보는 것을 뿐이에요. 곽재구 시인의 표현대로 '햇살을 등에 얹고 흙냄새를 맡으며' 내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거예요. 김화영 선생의 표현으로라면 '살아 있다는 놀라움, 존재한다는 황홀함'이겠고요. 곽재구 시인의 글에는 이렇게 삶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문장들이 참 많아요. 따뜻한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내 삶도 따뜻해지는 기분도 들고 말이죠.  ----- 2강 관찰과 사유의 힘에 대하여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봄을 한 번 더 보는 것이다', '삶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이다.' 어려운 단어 하나도 쓰지 않으면서도 참으로 적확한 인생에 대한 명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욕심냄으로써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우리들 아닐까 싶다.


  또한 2강에서는 시가 여러 편 소개되는데 그것들 하나하나가 정말 가슴을 툭하고 치는 것들이었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새벽
아버지의 칼을 피해 도망치던 어머니처럼
고주망태 아버지의 잠든 틈을 타 잽싸게 칼을 숨기던 형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녀석의 그림자

돌아보면
모든 속도가 슬프다       - 김주대, [슬픈 속도 - 도둑고양이 3]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墨畵]


   이러한 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 따라서 시를 쓰고 읽기 위해서는 개념의 운용 능력보다는 실물적 상상력의 운용 능력이, 공감과 일치의 능력이 더 긴요하게 연습되어야 한다. (중략) 그런데 문학은요. 실물적 상상을 해야 하고, 정서적 공감을 하며, 거기에 내 마음을 일치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중략) 예컨대 '1958년 11월 18일 노량해전에서 왜군을 섬멸했으나, 이순신 장군은 독전하던 중 애석하게도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란 진술이 있다고 하자. (중략) 그러나 문학에 임하는 상상력은 이러한 표피적 사실 진술에 잘 만족하지 못한다. 그날 새벽 이순신의 조반상 위에는 어떤 음식이 올랐는지, 그의 심경이 어떠했을 것인지, 그날 바다 빛깔을 어땠는지, 세수는 제대로 했을 것인지, 옷차림은 어땠을 것인지, 방문을 나서는 그의 수염발이 동짓달의 바닷바람에 어떻게 쓸렸을 것인지, 휘하 병사들 하나하나는 그 심경과 얼굴 표정이 어땠을 것인지 등등까지를 궁금해한다. > -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쉽게 말해 4D 영화입니다. 시를 4D로 읽으라는 거예요. 2D로 읽지 말고 문장을 일으켜 세워서 바람도 느끼고, 물방울 튀는 것도 느끼면서 읽으라는 거죠. 그래서 시를 일으켜 세우라고 표현한 겁니다. 그리고 궁극에 '시를 읽는 것은 나의 온몸으로 시의 온몸을 등신대(等身大)로 만나는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 2강 관찰과 사유의 힘에 대하여

   '시를 일으켜 세워라'는 시인의 말을 저자는 '시는 4D 영화 보듯 읽어라.'라고 표현한다. 영상 쪽에서 일하는 사람답다. 나중에 시수업을 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그렇게 표현해줘야겠다. 2D보다 4D에 더 익숙한 아이들에게 이보다 맞는 설명은 없을 듯싶다. '4D 영화 보듯 읽는 시 수업' 생각만 해도 흥미롭다. 물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냐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어떤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생을 이렇게 직선으로 놓고 봤을 때, 9할은 기존(旣存)이랍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에요. 내가 살고 있는 당대, 내가 타고난 삶의 조건 등 대부분의 것은 기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거시적인 흐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나머지 1할인데, 그것의 9할은 기성(旣成)입니다. 이미 이루어졌어요. 저는 이제 오십 대이고, 남자로 태어났고,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이미 결혼을 해서 딸이 하나 있고, 어떤 성취들도 했죠. 이건 끝난 겁니다. 되돌릴 수 없어요. 이것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이 1할의 1할입니다. 바로 미성(未成)이죠. 미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나의 하루입니다. 이불 개고 일어나, 오늘의 강독을 열심히 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과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함께 TV도 보고 잘 자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 3강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미성의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한없이 우울감에 빠져 좌절을 느낄 때의 대부분이 기성(旣成)에 집중해있을 때인 것 같다. 왜 나는 이렇게 나이가 들었고, 여자로 태어났고, 결혼을 이렇게 밖에 못했고, 직업이 이것이며, 재산은 이것밖에 없는지... 아무리 내가 고민하고 우울해해 봤자 변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들. 그래서 더 좌절하는 것인지도... 우스개 말로 다시 태어나야 나야 해결되는 문제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않은 미성(未成)의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미성(未成)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시간, 오늘이다.

<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 노동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  -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여기 지혜가 다 들어있죠.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이게 전부 아닐까요?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아이를 위해 빵에 버터를 바르고 이부자리를 피는 것이 경이로운 일임을 잊어버린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거기 있는 건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저 노동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아휴, 또 밥 준비해야 해, 또 설거지해야 해. 이렇게 투덜대는데 사실은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죠.  ----- 3강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미성의 시간이다.


5강에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기행문 세 편을 소개하며 '어떻게 삶을 대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책들은 [스페인 기행], [영국 기행],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이다.

 
< 나는 그런 영혼이오. 세계를 만지는 촉수가 다섯 개 달린 덧없는 동물 >
우리는 지금 모두 숨을 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숨 쉬는 것에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 눈을 감고 가만히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면 코를 통해 공기가 싹 들어갔다가 내 몸에 퍼져나갈 때의 느낌, 그리고 그 숨을 다시 내쉴 때의 느낌을 알 수 있어요. 그렇게 세상과 접촉하는 나의 모든 촉수를 예민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문장입니다. 여기서 다섯 개의 촉수는 미각, 촉각, 후각, 청각, 시각의 오감입니다. 이 감각이 얼마나 예민하냐가 '얼마나 좋은 삶을 사느냐'의 핵심이라고 본 거예요.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물 한 잔을 마실 때에서 아무 생각 없이 마시는 사람과 아주 예민한 촉수로 느끼면서 먹는 사람은 그 순간 존재하는 방식이 다를 겁니다. 만약에 물을 한 잔 마시더라도 물의 온도, 물의 맛, 목 넘김의 느낌을 온전히 느낀 사람에게는 그 순간이 찬란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요?   ----- 5강 희망을 극복한 자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기행문

   책의 한 문장을 가지고 저자는 삶의 방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쳐버렸을 한 문장인데 말이다. '세계를 만지는 촉수가 다섯 개' 이것이 오감이라는 것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난 그렇게 연결시킬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것이 지금까지 하나둘씩 쌓아 온 평상시 독서량과 깊이의 차이이겠지?

   똑같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오감을 전부 사용하여 느끼며 사는 삶은 정말 풍족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될 것 같다. 행복한 삶을 위한 지침서라든지, 다이어트 지침서에서도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라는 것이다. 집안일을 할 때는 집안일에만, 먹을 때는 먹는 것에만 집중하면 마음의 허전함이 채워지기에 필요 없는 감정이라든가 음식 섭취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하면서도 밖의 일을 고민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을 해야만 잘 살고 있다고 안위하게 된다. 열심히는 살고 있을지 몰라도 좋은 삶은 아닐 텐데 말이다. 같은 삶을 살더라도 찬란한 삶을 살고 싶다.


< 영국인은 외부의 법규는 모름지기 개인 내부의 입법자에게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영국인들은 내면에 입법자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자기들만의 재판관이 있죠. 외부의 권위는 그들 내부의 재판관과 협의한 다음, 비준을 받아야만 비로소 안으로 들어와요. 좋은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 친구들이 꼭 가졌으면 하는 태도예요. 바깥의 권의, 혹은 많은 돈, 학벌에 주눅 들어 무조건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의 내부에서 검증을 해야 해요. 상호작용입니다. 'Interaction'이죠.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예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인생이니까 그런 겁니다. 세상의 모든 잘난 것들도 내 안의 입법자와 협의해서 동의가 되면 그때 받아들이는 거예요.   ----- 5강 희망을 극복한 자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기행문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문장들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워낙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이 말을 들어도 그런 것 같고, 저 말을 들어도 그런 것 같고. 도대체 내 생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사람인지라... 우선은 내 안의 입법자를 세워야 할 텐데 그것 자체가 쉽지 않다. 내가 굳건하게 주장할 나의 중심이 바로 서 있지 않으니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는 듯싶다. 그런 중심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자존감부터 키우는 것이 우선일텐데... 우리는 자신의 자존감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나 생각을 우선시하게 자라왔다. 그렇게 해야 착한 아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뭐라 생각하고 평가하느냐 신경 쓰느라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내가 좋으면 받아들이고 나아가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내 인생이니까' 말이다.


   8살이 되어 다른 친구들은 모두 취학통지서를 받았는데 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확인해보니 호적에는 내 나이가 7살로 되어 있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아빠가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그 당시만 해도 1살 정도 줄어든 건 그냥 그대로 살라는 행정편의적 발상이 팽배해있어 정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친구들은 다 새 가방 메고 가슴 왼쪽에 이름표와 손수건을 달고 국민학교에 가는데 난 할 게 없었다. 그래서 그때 그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잡았던 것이 집에 있던 어린이를 위한 동화 전집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200여 권이 훨씬 넘던 동화책 전집이 우리 집에 구비되어 있었고 난 그것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었다. 정말 다행히도 그 전집의 구성이 지금 생각해봐도 참 훌륭한 구성이었다. 우리나라 고전동화부터 시작해서 세계명작동화, 내용도 훌륭했던 창작동화까지. 그 1년 동안 그 전집의 책들을 기본적으로 2~3번, 마음에 들었던 책들은 10번 이상 읽어 내용을 줄줄 욀 정도였다. 그렇게 책 읽기를 시작해서인지 이 책의 저자처럼 나도 소설이 참 좋다. 저자도 책에 재미를 붙일 때 소설로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책들을 읽을 때보다 훨씬 몰입도가 좋다고 한다는 얘기에 아주 반가웠다. 그런 작가가 소설 읽기 전에 필수과목으로 읽어야 하는 책으로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6강에서 소개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멋지게 죽습니다. (중략) 드라마에서도 예쁜 여주인공들은 죽는 장면에서조차 화장을 다 하고 있어요. 안 지워요. 아름답게 죽습니다. 하지만 현실과 다른 모습이죠. 돈키호테에게는 어떠한 위대함도 없었어요. 우리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은 사실 패배에 가까운 모습이잖아요. (중략) 우리가 죽을 때 여주인공처럼 죽나요? 우리가 죽을 땐 주름도 있고 이도 다 빠진 모습이고 그럴 텐데요.
그러므로 필연적인 우리 삶의 패배를 이해하자는 겁니다. 나는 왜 아킬레우스처럼 살 수 없을까? 혹은 왜 그처럼 비장하게 죽을 수 없을까? 속상해할 것이 아니라 돈키호테처럼 비록 패배한다고 해도 그 패배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라고 쿤데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 6강 장막을 걷고 소설을 만나는 길

   [커튼]은 우리가 읽은 소설 바깥에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디즈니 만화나 영화에 나타나는 인생의 찬란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 말고 일상의 잡다한, 어찌 보면 구질구질한 순간을 드러내는 것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바로 이런 산문의 세계라는 것이다. 소설은 그런 삶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이야기라는 수면 밑에 철학적, 사회적, 시대적 담론을 쌓고 그 위에 이야기를 축조하며 글을 지어야 한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카프카의 소설에는 전부 같은 소재가 등장하는데 거대한 행정조직과 K라는 사람이에요. 이름조차 없어요. 알파벳 K입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소설을 구성하는 건 K라는 사람이 직면한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K의 성격은 중요치 않아요. (중략) 등장인물이 K가 됐건 M이 됐건 C가 됐건 상관없다는 거죠. 다만 그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는 거예요. (중략)
지금 우리가 그런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너무 아픈 얘기인가요. 세월호 사건을 봅시다. 그 사건의 당사자들을 보자고요. 거기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자라왔다거나, 성격이 어떻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배가 침몰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상황이 전부입니다. 카프카는 이런 걸 잡아 낸 거지요. 개인의 정체성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했습니다. 카프카 이전에는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인식했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 놓인 사람으로서의 면모로 인식합니다. ----- 6강 장막을 걷고 소설을 만나는 길  

   그래서 지금 이 시대 우리는 더욱 다른 사람 일에 공감하고 연대해야만 한다. 그 상황이 운이 좋게 오늘은 나를 비켜갈 수 있었을지 몰라도 언젠가 나를 찾아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옛날에 이런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의 재미를 포기하고 새로운 소설을 썼던 소설가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가 죽고 나서도 그의 소설은 몇 백 년 동안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있을 수 있었겠지. 나 같은 범인은 소설을 읽고서도 시대를 읽어내지 못하고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 것이야' 툴툴 대기 일수이니....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지만 나에게도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어쩔 수 없는 그 상황이 우리에게도 생기고 나면 우리의 삶 역시 완전히 바뀔 겁니다. 이런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이 [커튼]에 들어 있어요.
< 싸움의 개념 역시 모험과 비슷하다. (중략) 몸 대 몸의 싸움은 없다. 보험, 사회 보장, 상업 조합, 법원, 국세청, 경찰, 도청, 시청, 우리의 적에게는 몸이 없다. > - 밀란 쿤데라, [커튼]
어느 순간 다 우리의 적이 될 수 있는 것들이죠.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적이 될 수 있죠.   ----- 6강 장막을 걷고 소설을 만나는 길


   7강에서는 이런 [커튼] 뒤의 우리들의 삶을 보여주는 소설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한밤의 아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어떤 책들보다 우리들의 삶과 닮은 모습이 담겨 있어 내 삶만 엉망인 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받을 수 있는 책들이다.


<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
이런 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그 이야기들은 한 사람의 삶을 하나의 창으로만 보니까요. 그래서 실제의 삶보다 훨씬 근사하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집에는 창이 여러 개 달려 있습니다. 어떤 창으로는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이 보이지만, 또 어떤 창으로는 지저분하고 정리 안 된 방도 보이죠. 우리의 삶은 드라마 같지 않아요. 서두가 길었는데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현실의 우리처럼 여러 가지 창을 가지고 삽니다. 하나의 창으로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요. 그래서 더 매력 있습니다.   ----- 7강 소설이 말하는 우리들의 마술 같은 삶


우리들의 사랑은, 특히 첫눈에 빠지는 사랑은 상대방이 보여주는 순간의 어떤 모습에 매료됩니다. 그리고 접근해요. 가까워지고 마침내 결혼해서 산문의 시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 남자를 저럴 거야, 저 여자는 이럴 거야 상상합니다. 이 남자 아마 결혼기념일 같은 때에 이러이러한 이벤트를 해줄 거 같아. 이 여자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저런 우아한 모습일 거야. 이런 상상을 하죠.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런 상상은 우리들의 욕망입니다. 어떤 남자에 대해, 어떤 여자에 대해 우리가 바라고 있는 욕망이에요. 알랭 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얘기했죠. 우리는 부정확한 정보로 한 남자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고요.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의 정확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사랑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치통과 그 사람의 방귀 뀌는 습관과 그 사람이 짜증내는 모습, 이 모든 걸 다 알고는 사랑에 빠질 수 없어요. 부분적인 정보만 가지고 사랑에 빠진 뒤 나머지를 내 상상으로 채워요. 그 상상은 대부분 내 욕망이지요. 그리고 3, 4년 후 사귀다 상대가 내 맘대로 안 되면 넌 왜 내 바람대로 안 되냐고 화를 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원래 그 모양이에요. 이 또한 사랑의 기본적인 속성이죠.  ----- 7강 소설이 말하는 우리들의 마술 같은 삶


  나의 첫사랑 실패담(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지 않던 그 애)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내용과 정말 비슷한 문장 발견. 아, 참 다행이다!^^ 그렇다면 이미 나는 첫사랑에서 사랑의 기본적인 속성을 다 깨달았던 것인데, 왜 그 이후의 삶이 이 모양이냔 말이다. 너무 재미만 추구한 나머지 지저분한 뒷 배경에는 커튼을 치고 잘 차려진 거실 쪽 창만 보여주는 소설, 영화에 폭 빠져 있어서 망각하고 있었나 보다. 내 삶도 내 사랑도 그렇게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하고 뽀얀 화면으로 이어질 줄 알고... 또 전혀 뽀얗지 않은 삶에 좌절하면서 '왜 나만 그런 거야'하고 심통 내면서.... 내가 첫사랑의 깨달음을 망각하지 않고 삶의 지혜로 이어갔다면 아니 일치감치 이 책들을 읽었다면 내 삶이 조금은 안정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쓸모없는 생각들을 마구 하게 된다.


<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왜냐하면 페르미나 다사를 통해서 상상했던 모습과 일치하는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녀는 자기 사촌이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매 맞은 개 같은 분위기의 우체국 직원을 미칠 정도로 사랑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재밌죠. 컬트 소설이에요. 낭만과 사랑 이야기를 하다가 코미디가 나오고 말입니다. 결국 다사는 아리사가 운명의 사랑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성공한 의사와 결혼합니다.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정리되죠.
< 아직도 살아야 할 많은 나날들을 생각했다. >   ----- 7강 소설이 말하는 우리들의 마술 같은 삶

   첫사랑을 버리고 의사와 결혼하는 여주인공의 생각이 딱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아직도 살아야 할 많은 나날들을 생각했다' 아! 얼마나 쿨하고 사실적인 판단인 게냐. 사랑에 목숨을 바치고 집안도 버리는 영화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과 달리. 내가 결혼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이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


< 공적인 생활의 과제는 두려움을 지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부부 생활의 과제는 지겨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저도 결혼한 지 20여 년 됐는데 반복되는 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결혼생활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짜증 나는 순간 없지 않고요, 인생 만만하지 않죠. 그걸 어떻게 덜 힘들고 더 의미 있는 상황으로 바꾸느냐가 중요해요.
< 페르미나 다사를 짜증 나게 하는 것은 바로 매일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것이었다. 제시간에 내와야 할 뿐만 아니라 음식도 완벽해야 했고, 그에게 묻지 않고 그가 원하는 음식을 정확히 만들어내야만 했다. > (중략)
여자분들 공감하십니까? 제 후배가 결혼하고 가장 화가 났던 게 냉장고에 빈 물통이 있다는 사실이라더군요. 물통이 비었으면 누군가 채워야 하는데 채우는 사람은 언제나 정해져 있으니까요. 이 매력적인 소설 곳곳에는 이렇게 아주 세밀한 생활의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들어 있어요.

   맨날 물을 마셨으면 물통에 물 좀 채워놓으라고 소리 지르는 아줌마 한 명으로써 정말 이 책은 결혼하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제나 냉장고에 가득 차 있던 물, 학교 갔다 돌아오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안. 그것이 엄마의 노동의 결과라는 것은 커튼 속에 가려 보지 못하고 결혼을 하면 그 몫이 내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시작한 결혼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 한 두 달이야 캠핑 온 사람처럼 들떠 이것저것 해보는 재미에 빠진다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달라지는 게 없는 우리 집은 영화에서 보던 화사한 가정이 아니었다. 정말 우렁각시라도 있었음 하는 심정이었다. 이제는 웬만큼 적응이 되었다지만 이제는 그 지겨움을 극복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무엇을 하든 새롭지 않고 맨날맨날 똑같은 생활을 어떻게 의미 있게 받아들일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저자가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노트에 적었다는 몇 줄의 메모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늘 거기 있는 것을 주목해보아
또 하나의 삶의 즐거움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더라.
잘 익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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