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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빛 Aug 11. 2021

11. 그리고, 퇴사

용기가 없다면 쟁취할 수 없는 그것




퇴사

1. 회사에서 퇴근함.

2. 회사를 그만두고 물러남.





"이번 근무표까지만 근무하고 그만두겠습니다."

한 매장을 이끄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가 물었다.


"왜 갑자기?"

근 7년을 일한 회사를 떠나는 순간인데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나 싶었을 거다 다들.






나에게 있어서 회사는 20대를 함께 보낸 끈끈한 곳이었다.

누구보다 회사를 사랑했고 일을 즐겼다.

남들처럼 회사를 욕하고 원망하는 순간들도 분명 존재했고, 힘들 때마다 그만두고 싶단 생각이 차올랐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팀이라는 연대감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 연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어느 순간부터 나는 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퇴사 후에 뭘 해야 할지를 고민하거나 준비하는 게 아닌, 사랑하는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찾는 것.

그게 나의 퇴사 준비였다.

그렇게 남들에겐 갑작스러운 일이, 나에겐 이미 현재 진행형이었던 것.

하지만, 누구보다 사랑했던 회사였기에 쉽게 떠나질 못 했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건,

지금까지 참고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늘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내려고 했던 나였기에 팀을 이끄는 일도 해내고 싶었다.

그동안 정말 무수히 많은 일들을 보고 듣고 겪으면서도 시원하게 욕 한 번 하고 털어버리던 나는,

이젠 남아있는 용량이 없다는 걸 느꼈고 더 용량을 늘리고 싶지 않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주변의 어떤 방해 공작에도 하고 싶은 것들을 함께 해내고 더 좋은 것들을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들리는 어두워보인다는 말과 피곤함이 쌓여가는 환경 속에서 더는 긍정적일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정체성마저 흐려갔던 것 같다.

오롯이 나를 위한 내가 아닌 회사를 다니는 내가 나인 것처럼..


함께 근무하는 팀 리더와의 불화도 깊어졌다.

남아있는 팀원들을 지키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회사의 시선은 달랐고 그 시선을 나는 견디고 싶지 않았다.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내 탓이라고 쏘아대는 듯한 말과 행동들에 계속 작아졌다.




그러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팀원에게 더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고 좋은 영향을 주지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오히려 나에겐 큰 용기가 되었다.


떠날 수 있는 용기.


그렇게 나는 무책임하게 보일 내 모습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더는 내 감정이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기 위해 퇴사를 선언했다.

많은 이들이 물었다. "왜 갑자기?" "그래도 남들보단 월급 더 많이 받고 있지 않아?"......

중요하지 않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이 업계가 돈을 생각하면서 다니기엔 아쉬움이 많은 업계라는 건 너무 잘 아니까.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앞으로의 내가 조금은 덜 찢기는 삶을 살길 바라면서.

그렇게 사직서를 꾹꾹 눌러썼다.




울거나 아쉽거나 속상할 것 같았는데 가볍고 시원하다.

새로운 것들이 또 나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할 테지만 이만하면 됐다.


그동안 고생했다! 과거의 나야.

앞으로의 너를 응원해. 우리 또 즐거운 것들 하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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