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소풍 이정희 Aug 04. 2024

여름 15, 아프리카 4 - 희망봉(남아공)

희망봉에 서면 보이는 희망의 길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클리퍼 항로

 희망봉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도 케이프타운에 가까운 케이프반도의 맨 끝에 위치한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룩아웃 포인트라는 등대가 있는 전망대와 해안 산책길과  반도의 최남단인 희망봉이 다.


 실제 아프리카의 최남단은 희망봉에서 남동쪽으로 더 내려온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며, 아굴라스 곶 가운데서도 곶 자체가 아니라 곶 서쪽의 해안 절벽이 최남단이다.


 희망봉은 항해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고 아프리카의 지리 역시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시절에 '드디어 최남단에 도착했다'라고 착각해서 붙인 이름이다.


  유럽에서 출발해 장장 1만 km에 달하는 아프리카 서해안을 지나, 대륙이 끝나고 처음으로 동쪽으로 도는 곳이 희망봉이기 때문이다. 돌출된 곶인지라 저 끄트머리에서 배를 꺾으면 지금껏 오던 항로와는 다르게 바다만 펼쳐진 느낌을 준다고 한다.


 심한 폭풍우 속에서 발견했다고 하여 이곳을 ‘폭풍의 곶이라고 명명하였다가 ‘미래의 희망’을 시사하는 뜻에서 ‘희망봉’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여름, 맑은 날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이렇게 찬바람이 드센 걸 보니 가히 태풍 곶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두를 삼킬 듯이 거칠고 세찬 바람이 연신 희망봉을 휘감았다. 깎아지른 절벽을 곁으로 모래해변이 있고 거친 파도들이 포효한다.

 신대륙을 찾으려고 몇 년에 걸친 험한 뱃길에 지친 배들을 수없이 집어삼킨 물살들이다.      


 거친 대서양 바닷길에 죽어가는 동료 선원들을 지켜보며 포기해 갈 때 희미하게 보였을 저 낡고 작은 등대를 생각했다. 

 격랑의 파도에 간절함과 생명이 되었을 불빛이다.


 남극에서 불어오는지 매섭고 차가운 바람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사람들은 벽을 짚고 걸으면서도 모두 흥분한 모습이다.


 ‘암스테르담 9,635km, 런던 9,623km, 뉴욕 12,542km, 뉴델리 9,296km, 북경 12,933km---’


 선원들이 출발했을 암스테르담과 런던에서 신대륙 인도와 아메리카 대륙 도시까지 방향과 거리를 나타내는 표찰은 바람에 버티며 굳건히 그렇게 서있었다.

 이곳에 희망을 보려고 온  수많은 사람들의 손만큼 낡아 있었지만.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은 희망봉의 거친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버티며  즐기고 있었다.

 희망봉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운 모양이다. 나처럼.

 이정표 아래에서 환호와 박수를 치며 줄을 서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기둥을 꼭 잡고 살아온 날들을 자축하며.


 1871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짧은 항로가 생기자 희망봉 항로는 시장성을 잃고 오랫동안 한산하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세계인들이 희망의 상징으로 찾는 곳으로.

경향신문. 24. 3. 11

  그러다가 2019년부터 수에즈 운하의 통행세가 대폭 인상되고  홍해 입구 아덴 만의 해적들에게 선박이 나포될 우려가 많아졌다.

 최근에는 후티반군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민간인들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아덴만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작년부터 수에즈운하 항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해상 운송로로 불리고 있다.

 그래서 선원과 선박의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1600년대처럼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가는 배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역사 속의 희망봉 항로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경제성에 밀려 찾는 배들이 별로 없었지만 이제 다시 선박과 선원들의 생명을 보장하는 희망의 항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희망봉의  의미의 이름을 생각해 본다. 

 선원들에게는 폭풍의 곶이라 불리며 불안과 공포가 되었고, 선주들에게는 부를 창출하는 희망의 곶이라 불리며 미래가 되었다.

 또 유럽에게는 식민지 개척의 희망봉이 되기도 하고 아프리카에게는 침략과 약탈의 절망봉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해적들을 피해 선원들과 선박의 안전을 위해 가까운 수에즈운하가 아닌 희망봉 항로가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검은 구름이 걷히고 바람이 잦아든다. 폭풍의 희망봉이 아니라 평온한 희망봉이 되었다.


 언덕 아래 넓은 평원과 바다 전경의 케이프타운 국립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쪽빛 바다와 아찔한 절벽들, 바람에 잘 자라는 식물들로 아름답게 가꾸어진 해안 산책길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멋진 파노라마 장관이 펼쳐진다.


 멀리 인도양과 대서양의 경계가 어디인지 아득하다. 바다가 모이는 것인지 갈라지는 것인지,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부터 하늘인지 분간할 수 없는 풍광이 펼쳐진다.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고 새로워지는 것 같다.


 오랜 세월 저 넓은 바다의 바람과 파도를 받아낸 기암절벽을 바라본다.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켜내어 저리 아름다워진 것인가!


 아프리카 대륙 맨 끝 희망봉은  바다의 경계가  만나고 합쳐지고 그리고 헤어지곳이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작일 수 있다


 '우리들의 인생인연도 마찬가지이다. 각자 마음속 의미, 그곳이 바로 희망봉이다!'

  


가끔 숨이 막히고

생각이 흩어질 때는

희망봉이 그립다   

  

바람은 버티어 나아가게 하고

등대는 희망이 되어 인생은 살만하다고 하고

낡은 이정표는 미래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연다

     

희망은 찾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 14, 고래보러 아프리카 가자 3 - 남아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