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여행으로 살아보지 뭐 [아루쿠마]

by 잠긴 생각들

제법 날씨가 쌀쌀해진 요즘이야. 태풍 전이라 온도가 더 낮아진 건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이제 가을이구나. 우리가 사랑하는 여름이 갔다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워낙 다사다난한 2020 여름이었기에 올해는 가을이 되게 반갑게 다가오는 것 같아. 신기하게도 9월이 되자마자 이렇게 선선해지네? 이제 진짜로 ‘가을아침’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해도 될 것 같아.

더 심해진 코로나 상황 때문에 카페나 식당을 가기에도 조심스러워졌지만, 하루 종일 집에서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나서 마스크로 얼굴을 폭 가리고 밤 시간에 산책을 가는 루틴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어. 아침에 일어나서 집에서 홈트를 하고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집에서 공부와 과제, 업무까지 다 하면서 지내다 보니까 바깥을 걸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산책 시간뿐이더라. 어떤 날에는 가장 멀리 나간 게 집 바로 앞에 위치한 편의점이라 스스로 충격을 받기도 해. 그렇게 활동 자체가 너무 적다 보니까 집에서 일부러 카페에 온 듯이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틀고 일을 하거나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차를 내리거나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어. 그리고 오늘 하루 잘 살아낸 선물로서 하루의 마무리로 산책을 하곤 해.



이번 주부터 날씨가 확 달라져서인지 남자친구랑 저녁 산책을 나갈 때마다 벌써 1년 가까이 지나버린 유럽여행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도는 거야. 이게 날씨 때문이라는 건 진짜 우리가 런던에 막 도착했던 시기의 날씨와 요즘의 날씨가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야. 그냥 매일을 살던 똑같은 우리 동네인데, 여행했던 공간의 기온, 냄새, 분위기가 비슷해지는 것만으로 여행지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해. 여행은 참 신기해. 다녀온 지 이미 1년이 지났고 그 시간은 다 끝나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줄만 알았는데, 그 경험이 나한테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주는 게 느껴질 때마다 새롭게 놀라워. 어쨌든 어딘가를 다녀왔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도 그곳의 일부분을 느낄 수 있는 거잖아. 평범한, 아니 답답한 일상까지 순식간에 여행으로 바꿔주다니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달까-



남자친구와 산책 중에 영국과 프랑스를 여행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여행 주제로 대화를 많이 하게 돼. 최근에 대화한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건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야. 나도 남자친구도 둘 다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왜인지 저번 교환일기에 쓴 적 있듯이 자꾸 혼자 어딘가로 훌쩍 떠나보고 싶더라고. 내가 이제껏 혼자 어딘가를 여행할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이 없던 이유는 단순히 심심할 것 같아서야. 집에서 혼자 놀거나 쉬는 걸 좋아하지만, 심지어 그럴 때에도 잠깐이라도 좋으니 누구와 대화하고 싶다고 느끼는 편이라, 혼자 여행은 엄두도 나지 않았지. 물론 지금도 여행을 막상 떠났는데 중간에 심심함이 나를 덮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어.

그래서 나와 남자친구가 내린 결론은 일단 함께 혼자 여행의 연습을 해보기로 한 거야.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일단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탈것을 타고 (아마 비행기겠지?) 여행지에 내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인사를 하고 각자의 여행을 떠나는 거야. 장소는 제주도가 좋을 것 같다고 말했어. 제주도는 한 번의 여행에 섬 전체를 둘러보기 어려운 곳이니까 테마를 정해서 각자의 여행을 즐기는 거지. 하루 중 너무 심심할 때 혹은 누군가와 이 여행의 좋음에 대해 꼭 공유하고 싶을 때 전화 통화를 하는 거야. 나 지금 이런 걸 보고 듣고 먹고 있는데 너무 행복해- 하고. 내가 먼저 이 제안을 했고, 남자친구는 그 여행을 계기로 혼자 여행하는 것에 용기가 생기면 그때는 같은 날짜에 각자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해보자고 제안했어. 둘 중 어떤 것이든 좋을 게 분명해서 벌써 기대가 돼. 뭐 이것도 코로나가 잠잠해진 후에나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예상보다 혼자 여행이 힘들고 별로일 수도 있고 서로 전화가 불가능한 상황이 생길지도, 어쩌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쯤... 하고 꿈꾸고 있어. 그날이 올 때까지 별것 없다고 느껴지는 하루도 여행처럼 소중히 보낼 거야. 그렇다고 그날이 올 때까지 버틴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 이젠 코로나 핑계 그만 대고 그냥 오늘을 오늘 하루로 온전히 살아내 볼 거야. 여행 여행 이야기했지만 그게 떠나고 싶다고 징징대려는 건 아니거든. 어차피 모두가 힘든 상황인 건 같은데 같은 상황이라면 내 하루가 어떤 하루일지는 내 마음먹기에 달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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